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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GSMA “빅테크 ‘망무임승차’ 비합리적…불균형 바로잡는 정책 필요”

권하영 기자

존 구스티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최고규제책임자(CRO)가 7일 오후 웨스틴조선 서울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디지털데일리]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전세계 트래픽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빅테크들이 정작 그에 대한 비용을 망 사업자들과 소비자들만 내게 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일이다. 이들 게이트키퍼(Gate Keeper)가 만드는 시장 불균형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다.”

존 구스티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최고규제책임자(CRO)는 7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 호텔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강조했다. GSMA는 이날부터 이틀간 이곳에서 글로벌 이동통신 컨퍼런스인 ‘모바일360 아시아태평양(M360 APAC)’을 진행한다.

GSMA가 대표하는 글로벌 통신업계는 초기 인터넷 시장과 달리 거대 빅테크가 발생시키는 트래픽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며 이들 또한 네트워크 투자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샌드바인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메타·넷플릭스 등 주요 빅테크 6곳이 유발한 트래픽 비중은 전체의 64%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트래픽 양은 23%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스티 CRO는 “이런 상태로 가면 네트워크 고도화에 대한 필요는 계속 커질 텐데 그럼 그 투자비용이 어디에서 나올 수 있겠나”라며 “문제의 핵심은 네트워크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고 있는 빅테크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업체들은 4~5개 정도의 소수인데, 우리는 이런 업체들을 대상으로 (과도한) 트래픽을 야기하지 않도록 제한을 두거나 망 사업자들에 어느 정도 투자에 관한 기여를 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빅테크들의 생각은 다르다. 구글·메타·넷플릭스 등 주요 콘텐츠제공사업자(CP)들은 이러한 공정 분담 요구에 대해 ▲망 투자는 인터넷제공사업자(ISP)의 전적인 책임이며 ▲망 투자 분담은 결국 자신들의 서비스 요금 인상 또는 콘텐츠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한국과 유럽 등에서 추진하는 공정 기여 법제화는 사적 협상의 영역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라고도 한다.

구스티 CRO는 그러나 “빅테크 자신들이 소비자들에게 도달하기 위한 투자를 안하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비즈니스모델’로 보인다”며 빅테크의 무책임함을 비꼬아 꼬집었다. 그는 “예컨대 신문사들의 비즈니스모델만 봐도, 광고주들이 돈을 내고 신문에 광고를 하는 것인데, (빅테크들은) 신문사와 소비자만 모든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부 빅테크들이 망 투자 분담을 해야 할 경우 콘텐츠 가격을 올리거나 투자를 줄일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에 대해서도 “단지 소비자들을 겁주기 위함”이라고 선그었다. 그는 “통신사들은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요금을 올리는 게 쉽지 않지만, 빅테크는 사실 지금도 수익성이 굉장히 좋다”며 “그들이 소비자 가격을 반드시 올릴 거라고 전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구스티 CRO는 빅테크들의 망 무임승차에 대한 각국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도 시사했다. 그는 “(망 투자 분담에 대한 논의가) 사적 협상의 영역이라고 빅테크들은 말하지만, 결국 (협상이 안되면 소송을 할 수밖에 없으니) 법원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빅테크들은 글로벌 규모로 성장해 유럽에선 이미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시장 불균형에 대해선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여러 나라에서 공정 기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정책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유럽은 물론 브라질과 인도 등이 이 사안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책 입안자들 입장에서 ‘연결성’이 국가 미래를 좌우하게 될 텐데, 이처럼 트래픽 폭증이 예고되는 상황에선 모두가 혜택을 얻는 디지털 경제 성장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은 특히 관련 움직임에 적극적이다. 유럽연합(EU)의 행정부 역할인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최근 ‘빅테크의 망 공정 기여’ 필요성에 관한 공개설문을 마치고 연내 가칭 ‘기가비트연결법(Gigabit Connectivity Act)’을 제정할 방침이다. 기존 ISP뿐만 아니라, 대형 CP들도 기금 출연이나 망이용대가 지불 등을 통해 광대역 통신망 제공에 기여하라는 게 이 법안의 골자다.

한국도 비슷한 분위기다. 우리 국회에는 이미 ‘국내 전기통신망을 이용할 경우 망이용계약 체결 또는 망이용대가 지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이른바 ‘망무임승차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여야를 막론하고 다수 발의돼 있다. 다만 구글 등 빅테크들의 적극적인 입법 저지 활동으로 법안 자체는 장기간 계류돼 있는 상태다.

구스티 CRO는 한국의 ‘망무임승차방지법’에 대해 “우리가 유럽에 요청했던 입법 취지는 ‘5% 이상 트래픽을 양산하는 빅테크 기업이라면 적어도 (망 투자 분담에 관해 ISP와의) 협상에는 응하게 하자’는 것인데, 한국의 법안도 취지가 비슷해 보인다”라며 “트래픽을 추가 유발하는 사람들이 그 추가 발생 비용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하게 한다는 것은 타당한 접근”이라고 옹호했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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