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우리은행의 경쟁사 흠집내기?… 엉뚱하게 튄 불똥
[디지털데일리 권유승 기자] "H은행이 사실 공격적으로 대출에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저희가 판단하기에는 (H은행의 대출이) 우량 대출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기업금융 명가 재건 전략발표회'.
이 날 강신국 우리은행 기업투자금융 부문장의 발언은 듣기에 따라 충분히 도발적이었다.
'우리은행 기업금융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개최된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100여명 가량의 금융권 기자들이 참석했으며, 유튜브로도 생중계 됐다.
강 부문장의 이 같은 발언은 모 매체 기자가 질문한 "오늘 발표한 전략이 실적 개선에 반영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한 답변으로 서두에 꺼낸말이었다. 애초에 해당 질문 자체에서는 직접적으로 H은행을 겨냥한 내용은 없었다.
그럼에도 H은행의 대출 전략을 언급한 이날 간담회에선,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H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을 우리은행이 어느정도 의식한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기업금융 명가'를 외치는 우리은행의 지난 6월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은 전년 말 대비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작 국내 4대 시중은행 중 성장세가 가장 낮았던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H은행은 무려 7.4% 증가한 수치를 나타냈다. 이 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2.9%, 2.8% 늘어난 기업 대출 잔액을 보였다.
참고로, 올 상반기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도 우리은행은 전년 말 대비 1.1% 감소한 수치를 나타냈다. 수치가 오히려 떨어진 건 우리은행이 4대 시중은행 중 유일했다.
이에 우리은행도 향후 기업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며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간담회까지 열고 관련 전략을 발표한 게 아닐까 한다.
우리은행은 이날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위해 ▲미래 성장산업 지원 확대 ▲차별적 미래경쟁력 확보 ▲최적 인프라 구축 등을 전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일각에선 우리은행이 발표한 전략을 두고 "내세운 목표만 거창할 뿐 뚜렷한 전략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한 기업의 전략을 한 시간 남짓 간담회에서 모두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뭔가 속 시원한 디테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서 우리은행은 경쟁사 대비 약점으로 '취약한 자본 비율'을 꼽았다.
강 부문장은 "취약한 자본비율 때문에 과거 몇년 동안 대출을 확장하지 못했다"며 "고객에게 대출을 상환하도록 부탁을 하는 전략까지 실행할 정도로 자본비율이 취약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우리은행이 16.26%로 5대 은행 중 꼴찌다.
그런데 중소기업 대출을 10조원 이상 늘린다는 우리은행의 전략을 두고 '자본 여력은 괜찮냐'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강 부문장은 "은행에서 자산 6%가 성장하게 되면 자본비율의 데미지 없이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 한 마디로 과거엔 자본비율이 취약해 대출을 못늘렸지만, 앞으로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참고로, 이날 우리은행이 내놓은 자료에는 매년 6%씩 자산을 증대시켜, 오는 2027년까지 총30조원의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자본 확충전략이 제시됐다. 이를 기반으로 대기업부문은 매년 30%, 중소기업부문은 매년 10%씩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강 부문장은 "이런 건 시뮬레이션에 나와 있다"며 "가계대출은 정체 상태이기 때문에 대출을 늘려도 자본 데미지는 없다"고 덧붙였다.
강 부문장의 말대로 최근들어 가계대출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면서 기업대출의 비율이 더 올라갈 여력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경쟁사들도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상황에서 우리은행이 발표한 "2027년까지 기업대출 점유율 1위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뒷받침 하기엔 이날 제시한 전략들이 다소 미흡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기업금융의 전문가로 꼽히는 조병규 은행장을 선임했다. 조 행장 역시 취임 후 "기업급융의 명가로서 차별화 된 서비스로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물론 H은행의 공격적인 기업대출 증가율이 어느날 갑자기 부실덩어리로 전락할수는 있다. 우리 나라 거시경제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치고 올라 가는 경쟁사를 흠집 내기 보다는 우리은행이 누구도 고개를 끄덕일 비책을 꺼내 기업금융 명가로서 진정한 실력을 뽐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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