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클로즈업] “끓는 물 속 개구리였다”…달라진 김범수의 진짜 반성문
-확장 중심 경영전략 리셋, 기술·핵심 사업 집중
-느슨한 자율 경영 기조 종료 선언…그룹 내 거버넌스 개편
-카카오 기업 문화 전면 재검토
-내년도 경영진 인적 쇄신 예고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무료로 서비스하고 돈은 어떻게 버냐’는 이야기를 들었던 우리가 불과 몇 년 사이에 ‘골목상권까지 탐내며 탐욕스럽게 돈만 벌려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 지금 상황에 참담함을 느낀다.”
“더 이상 카카오와 계열사는 스타트업이 아니다. 자산 규모로는 재계 서열 15위인 대기업이다. 규모가 커지고 위상이 올라가면 기대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동안 이해관계자와 사회 기대와 눈높이를 맞춰오지 못했다.”
11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경영쇄신위원장)이 카카오 공동체(계열사) 임직원 앞에 두 번째 반성문을 내놓았다. 올해 카카오는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주가 시세조종 의혹 등으로 임직원이 사법리스크에 휩싸이며 비상 경영까지 선포한 상황이다.
◆임직원에 솔직한 반성…카카오 향한 사회적 비판 직시
김 위원장은 지난 2022년 1월 류영준 카카오페이 당시 대표의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대량 매각 논란으로 카카오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됐을 때도 사내 공지를 통해 자기반성을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첫 번째 반성문과 이번 반성문은 분량부터 내용까지 전혀 다른 무게감을 나타냈다.
앞서 김 위원장은 ‘ESG경영’과 ‘뉴리더십’ 등 추상적인 다짐이 담긴 6문단짜리 반성문을 발표한 것과 달리, 이번엔 기존 분량의 2배에 달하는 내용과 함께 ‘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과감한 표현까지 서슴없이 사용했다. ‘카카오가 오랫동안 쌓아온 사회 신뢰를 많이 잃고 있는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회복할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을 거듭했다’라는 자기반성에서 나아가, 원점부터 새로운 경영을 도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카카오는 이른바 ‘SM 사태’가 촉발하기 전후로 계열사 곳곳에서 위험 신호가 감지 돼 왔다. ‘카카오페이 스톡옵션 먹튀 사태’에 이어 올해에만 카카오엔터프라이즈·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계열사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법인카드로 1억원 상당 게임 아이템을 결제한 경영진 도덕적 해이,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 등 내부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김 위원장은 그간의 논란에도 전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었다. 쇄신에 대한 업계 안팎 요구에 소홀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김 위원장은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카카오가 공개한 사내 공지 전문만 봐도, 김 위원장은 현 상황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전하는 데 주력했다.
‘지금은 카카오가 좋은 기업인지조차 의심받고 있다.’ ‘카카오의 세상을 바꾸려는 도전은 누군가에게는 위협이자 공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우리를 향한 기대치와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삐그덕 대는 조짐을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라는 문장들은 창업자인 자신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임직원을 향해 ‘제 얼굴에 침 뱉기’와 다름없는 발언을 하고, 이를 언론에까지 공개하기로 한 것은 카카오 변화를 주도할 사람으로서 문제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100명의 최고경영자(CEO) 양성’ 위한 자율 경영 방식 끝낸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대목은 김 위원장이 쇄신 방향성 중 하나로 ‘최고경영자(CEO) 100명’을 키우기 위해 유지해 온 계열사 자율 경영 기조를 내려놓았다는 점이다. “CEO 100명을 성장시킬 수 있다면 성공이다”라는 문구는 김 위원장이 회사 설립 당시 품었던 경영철학으로 익히 알려진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사내 공지를 통해 “계열사마다 성장 속도가 다른 상황에서 일괄적인 자율 경영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며 “투자와 스톡옵션과 전적인 위임을 통해 계열사 성장을 이끌어냈던 방식에도 이별을 고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지금껏 카카오는 계열사를 앞세워 게임부터 대리운전, 금융, 배달, 심지어 미용실 예약까지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면서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골목상권 침해’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여기에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이른바 ‘스톡옵션 먹튀 논란’까지 발생하면서 기존 경영 방침이 회사 성장이 아닌, 경영진 배만 불린다는 비난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김 위원장이 ‘지방 분권형 권력 구조’에 종말을 고한 것은 결국 카카오라는 기업에 대해 사회가 요구해 온 바를 정확히 짚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대내외 의혹 당사자로 지목되며 통제 불가 상태까지 이른 계열사들 행태를 더 이상 방임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불통’ 낙인도 수습 나서…2년10개월 만에 직원들과 대화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판교아지트에서 오프라인·사내 온라인 채널을 통한 임직원 간담회 ‘브라이언(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 영어이름)톡’을 진행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김범수 위원장이 직원들 앞에 직접 나타난 것은 카카오 창사 10주년 행사가 열렸던 지난 2021년 2월 이후 처음이다.
브라이언톡은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으며, 카카오 본사 임직원 2000여명(오프라인 400여명, 온라인 1800여명) 대상으로 했다. 직원들이 보낸 20여개 질문에 대해 김 위원장이 하나씩 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날 자리는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비상 경영’을 선포한 회사 상황에 대한 임직원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한편, 구성원들 앞에서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를 한 번 더 다진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브라이언톡을 계기로 김 위원장은 앞으로도 사내 구성원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이어갈 방침이다.
임원기 카카오 커뮤니케이션 실장은 간담회가 끝난 뒤 취재진과의 백브리핑에서 “시공간 제약상 카카오판교아지트와 제주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본사 크루(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을 한 것”이라며 “규모나 형식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김 위원장이)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런 소규모 자리를 만들어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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