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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정부 그늘]③ 하도급갑질만큼 무서운 ‘정부갑질’에 병드는 기업

권하영 기자

지난해 11월 행정전산망 마비를 시작으로 잇따른 국가시스템 먹통 사태는 정부·공공기관의 대대적인 디지털전환을 선전했던 윤석열 정부표 ‘디지털플랫폼정부’ 민낯을 드러냈다. 부실한 국가시스템 관리·감독 체계와 부진했던 공공사업 투자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디지털정부 근간인 공공IT의 현주소와 개선점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 픽사베이]
[Ⓒ 픽사베이]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지난 2020년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으로 소프트웨어(SW) 사업자가 발주기관의 부당한 갑질을 신고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시행 5년차가 된 지금까지도, 업계는 이러한 신고제가 ‘있으나 마나’라고 토로한다. 잦은 과업변경 요구와 지체상금 부과 등 정부 갑질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소프트웨어진흥법 제39조에 따르면 수급인이 발주자의 불이익행위 등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신고할 수 있으며, 과기정통부 장관은 불이익행위가 하도급거래공정화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필요한 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즉, 공공SW 사업을 수주한 사업자들 또한 하도급거래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갑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이 법에 따라 과업변경 때 과업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절차에 따라 과업변경 확정 등을 진행하게 돼 있다. 동법 시행령에서는 SW 사업 계약서에 과업내용의 확정방법과 시기, 계약금액 및 기간변경, 손해배상, 하자범위와 판단기준 등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발주기관 요구로 잦은 과업변경이 일어나고, 이에 따른 기간·금액도 고무줄처럼 늘어나던 것을 최대한 투명하게 처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정부·공공기관의 과도한 과업변경 요구, 이에 따른 추가비용을 지급하지 않거나 심지어 계약기간을 넘겼다는 이유로 벌금 성격인 지체상금을 부과하고, 불이익행위 신고 때 보복성으로 다음 사업의 수주 기회를 제한하는 등 각종 갑질 행위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SW업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신고하는 기업도 별로 없고 신고를 해도 공정위 제재까지 이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며 “신고를 당해 감사를 받은 공무원은 징계를 받고 승진이 불리해지는데, 어느 업체에서 감히 ‘고객’을 상대로 칼을 꽂겠나. 어차피 그 공무원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다들 안다”고 말했다.

정부가 책정한 공공SW 예산 자체가 늘 부족하니, 기관 입장에서도 최저가 입찰과 추가비용 지급불가 기조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업심의위원회 심의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위원회 구성과 개최 등을 사업 발주기관 담당 부처에서 진행하는 구조이다 보니, 애초에 발주처 입장에 치우쳐 제대로 된 심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업자들은 제도를 이용하는 대신 소송을 택하는 일이 다반사다. 최근 CJ올리브네트웍스와 KCC정보통신은 2020년 8월 국방부를 상대로 제기한 약 500억원 규모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최근 1심 승소했다. 국방부가 기존 작업범위를 넘은 시스템 개발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발생한 추가비용은 지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업진행이 늦어졌다며 지체상금을 물린, 전형적인 공공SW 갑질 사례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소송으로 가면 대부분 사업자들이 승소를 한다”며 “그만큼 잘잘못이 분명하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나마 대기업들이나 가능한 얘기”라며 “소송 자체가 2~3년이 걸리는 일인데 그동안 돈을 제대로 수급하지 못하면 힘들어지는 작은 기업들은 엄두를 못 낸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행정전산망 장애를 시작으로 잇따랐던 국가전산시스템 마비는 단지 순간의 시스템 오류로 볼 것이라 아니라, 이러한 공공SW 사업의 불합리한 관행이 쌓이고 쌓여 터져버린 사고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정부가 평소 예산 부족을 방치하고 부당한 갑질을 눈감으면서 스스로 공공SW 사업을 부실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디지털 재난’을 자초해 그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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