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 첨병된 삼성 DSP…'파운드리 전쟁' 결정 지을까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팹리스와 파운드리 간 가교 역할을 하는 디자인하우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자체적인 인공지능(AI) 기능을 탑재하려는 빅테크·완성품 업체들이 늘면서 관련 주문형반도체(ASIC) 물량까지 덩달아 확대되고 있어서다.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업체가 늘어난 점도 지켜볼 대목이다. 과거 디자인하우스는 단순 작업에 가까운 하청 물량을 받는 것에 그쳤다. 반면 최근에는 팹리스와 직접 접촉해 수주 물량을 따내고 핵심 설계에 관여하는 등 영향력이 넓어지고 있다. 이들 기업이 삼성 파운드리가 향후 TSMC·인텔과 경쟁하기 위한 핵심 요소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 DSP, 해외 수주 성과 잇따라…반전의 배경에는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디자인하우스의 팹리스 고객 유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일본 AI반도체 스타트업 프리퍼드네트웍스(PFN) 수주 사례가 대표적이다. PFN은 당초 1, 2세대 칩을 TSMC에 맡겨왔으나, 2나노미터(㎚) 공정에 진입한 3세대 칩을 삼성 파운드리에 맡기기로 했다.
삼성 파운드리로의 PFN 칩 수주 성공은 가온칩스가 높은 기여를 한 것으로 관측된다. 가온칩스는 삼성 파운드리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에 속한 디자인하우스로, 2022년과 올해 각각 일본, 미국 법인을 설립하며 해외 수주 활동을 확대한 바 있다.
또다른 삼성 DSP인 코아시아는 지난해 2월 미국 자율주행용 칩 팹리스인 암바렐라를 고객사로 유치했다. 수주한 프로젝트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탑재될 시스템온칩(SoC)이다. 지난 8월에는 독일 팹리스 이노바의 ISELED 칩 수주를 따내기도 했다. 이들 프로젝트 역시 삼성 파운드리에서 양산한다. 이밖에 에이디테크놀로지·세미파이브 등을 포함한 총 8개사가 삼성 DSP 소속으로 국내외 수주 활동을 전개하는 중이다.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의 칩 설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은 기업을 의미한다. 통상 칩을 생산하려면 팹리스가 칩 설계 도면을 파운드리에 넘기고, 파운드리가 이를 공정에 맞게 최적화해 생산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디자인하우스가 파운드리로부터 위탁 물량을 받은 뒤 이를 물리적인 도면으로 전환하는 식으로 지원했다. 이같은 설계 지원 과정을 흔히 백엔드(Back-end) 설계라고 부른다.
과거 삼성 파운드리 출범 초기에는 대다수의 디자인하우스가 백엔드 설계만 담당했다. 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가 엔비디아·퀄컴·애플 등 빅테크에 불과해 고객사를 유치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더군다나 백엔드 설계는 팹리스의 주 업무인 프론트엔드 대비 부가가치가 낮아 대부분이 영세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다 삼성전자가 2017년 전후로 파운드리 생태계인 SAFE를 구성해 협력사의 고객사 유치를 독려하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
디자인하우스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 배경에는 세트·서버 기업의 자체 칩 개발 수요도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 초미세화에 따라 반도체 칩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면서 이를 자체적으로 설계하는 기업이 늘었다. 파운드리가 늘어난 고객사를 대응할 수 없는 만큼, 하위 협력사인 디자인하우스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고 난 이후부터는 자체 칩 수요가 더욱 확대됐다. 자신들이 개발한 초거대언어모델(LLM)에 맞는 맞춤형 칩을 설계하거나,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기능을 추가하고 싶어하는 니즈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DSP가 곧 파운드리 경쟁력…삼성-TSMC-인텔 3파전 성패 가를듯
DSP의 성과는 삼성 파운드리에게도 호재다. 핵심 고객사를 유치하기 위한 신뢰성 확보에 도움이 되는데다, 튼튼한 매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덕분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반도체 업계 특성상 한번 유치한 고객은 장기적으로 유지될 가능성도 높다.
이같은 사업모델을 안정적으로 구축한 곳이 대만 TSMC다. TSMC는 일찍이 자국 내 가치사슬협력사(VCA) 인프라를 꾸려 칩 설계 프로젝트에 대응해왔고, 글로벌유니칩(GUC), 알칩과 같은 대형 디자인하우스를 키워냈다. 그 결과 애플, 엔비디아, 퀄컴, 인텔 등 대형 칩 설계 기업들의 1순위 파운드리로 자리 잡게 됐다.
일각에서는 삼성 파운드리가 향후 파운드리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칩 설계 수요 기업이 확대된 만큼, TSMC가 감당하지 못하는 물량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후발주자인 인텔이 아직 디자인하우스 생태계를 꾸리지 못한 점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AI반도체 칩 고객사를 최선단 공정 고객사로 확보한 것도 주목할 법하다. 게이트(Gate) 선폭이 7㎚ 이하로 접어든 이후 등장한 선단 공정은 칩 작동 결함 이슈가 발생하기 쉬운 리스크 공정이다. 이로 인해 저전력 설계가 필수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팹리스가 선제적으로 최선단 공정을 이용하고, 해당 공정이 안정화되면 이들이 대량 양산을 진행하거나 비(非)AP 업체들이 순차적으로 진입하는 구조를 띠었다. 최근에는 AI 반도체 기업들이 먼저 최선단 공정에 진입하고 있어, 향후 대형 고객 유치를 위한 신뢰성 확보가 보다 용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28일 이뤄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의 회동에 시선이 가는 배경이기도 하다. 삼성 파운드리가 최선단 AI반도체 일감을 대거 확보하고 있는 만큼, 메타와 협력 논의가 나온다면 장기적인 관계로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 기업의 파운드리 수주는 주로 삼성전자가 직접 담당하고 DSP가 지원하는 형태지만, 이때 신뢰도를 쌓으면 다음 수주를 DSP가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며 "(삼성전자-메타)양자 간 회동에 파운드리 관련 논의가 나오고, 전략적 협력 방안이 강화될 것이라 기대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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