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회 와도 웃지 못한 K-배터리…中 천하된 ESS 시장 [소부장박대리]

고성현 기자
삼성SDI가 '인터배터리 2024'에서 선보인 SBB(Samsung Battery Box) [ⓒ삼성SDI]
삼성SDI가 '인터배터리 2024'에서 선보인 SBB(Samsung Battery Box) [ⓒ삼성SDI]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고성장세를 유지하면서 둔화된 전기차 시장을 보완할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중국 기업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반으로 주도권을 쥔 만큼, 향후 경쟁에서도 어려운 구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SNE리서치가 발행한 '2023년 글로벌 LiB ESS 판매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ESS용으로 출하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185기가와트시(GWh)로 전년 121GWh 대비 53% 성장했다. 지역별로 보면 중국이 84GWh로 전체 시장 45%를 점유했고, 북미는 55GWh로 30%, 유럽과 기타지역이 각각 23GWh로 12%를 점유했다.

ESS는 에너지를 저장해 보관하는 시스템이다. 간헐적인 발전 구조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어려운 신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전세계 탄소중립 기조가 확산되고 ESG 경영이 중요해지자 관련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 전환과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촉발된 전력 소모량 급증이 향후 ESS 수요를 넓힐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도 나온다.

유럽, 북미 등 주요 권역들의 ESS 수요도 상당히 크다. 유럽에서는 높은 러시아발 에너지 의존도를 해소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와 ESS를 채택하는 추세다. 미국 역시 바이든 정부 핵심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기반으로 한 ESS 지원을 늘리고 있다.

이처럼 ESS 시장의 급속 성장에도 국내 기업의 점유율과 기회는 오히려 줄어드는 모양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글로벌 ESS용 배터리 출하실적에서 8GWh를 기록했다. 이는 점유율 기준 7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전년 대비 점유율은 3%포인트(p) 감소한 4%에 그쳤고, 출하량도 1GWh 감소했다. 삼성SDI는 9GWh로 전년 대비 같은 수준이었으나 점유율은 3%p 감소한 5%대로 내려앉았다. SK온은 아직 ESS 사업이 본격화되지 않아 순위권에 없었다.

국내 배터리사가 글로벌 시장 내 경쟁에 밀린 이유는 최근 몇년 간 커진 중국 기업의 영향력 때문이다.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중국 기업들이 유럽,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수년 째 경쟁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특히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반 ESS가 국내 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LFP는 리튬과 인, 철을 양극재로 활용한 배터리다. 삼원계 대비 에너지밀도가 낮으나 니켈·코발트 등을 쓰지 않아 가격이 싸다. 전기차용으로는 보급형 모델 위주로 쓰이는 등 응용처 제한이 있지만, ESS용으로는 저온 성능 저하를 제외하면 제한적 요소가 거의 없다는 점이 매력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업체 진입이 제한됐던 미국 시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IRA의 해외우려기업집단(FEOC) 규정에 관련 제재가 없어 ESS용으로는 중국 기업이 비교적 진입하기 쉽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ESS용 LFP 배터리를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전기차용으로는 미국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요가 크게 늘어난 LFP용 ESS로 활로를 뚫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 기업을 밀어내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LFP 기반 생태계와 높은 기술 숙련도를 갖추고 있어, ESS 시장 내 가격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어서다. 전기차 시장 둔화로 ESS 시장을 공략해야 할 필요성은 늘었으나 여의치 않은 셈이다.

다만 수요 기업이 늘며 ESS용 배터리 공급처를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현지 생산 측면에서 국내 기업이 유리한 권역도 있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삼성SDI는 기존 하이니켈 NCA 기반 고성능 제품으로 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오는 2026년 ESS용 LFP배터리 양산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확장한다. 과거 국내에서 화재 사고 등을 겪어본 만큼, 고신뢰성·안정성에 주안점을 둘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난징 공장에서 지난해 말부터 ESS용 LFP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LFP 양극재는 중국 기업인 상주리원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아울러 미국 시장을 겨냥해 2022년 설립한 LG에너지솔루션 버테크(前 NEC에너지솔루션)을 통해 턴키 공급을 추진한다.

SK온은 미국 ESS 업체 IHI 테라선 솔루션즈와 손잡고 북미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미국 현지에 ESS 배터리 전용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빠른 시일 내 ESS용 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도 고려할 계획이다.

고성현 기자
narets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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