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AI 규제법 통과시킨 EU, “한국 기업들도 대비해야”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분야별로 글로벌 차원의 인공지능(AI) 표준 경쟁이 가시화될 것이다. 부처간 소모적인 논쟁을 거두고 협력과 역할 분담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8일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고려대학교 데이터·AI법센터와 함께 ‘유럽연합(EU) AI법의 내용과 시사점’을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웨비나)를 개최했다. 3월13일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법인 EU AI법의 상세 내용을 톺아보고 국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전문가들과 논의하는 자리로 구성됐다.
고려대 데이터·AI법센터 대표이자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인 이성엽 교수는 “AI 기술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인류에게 엄청난 경제적 편익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으로 대량 실업의 우려, 편향성과 차별, 저작권 및 개인정보 침해 위험도 함께한다”고 AI법의 제정 및 웨비나 개최 의의를 설명했다.
EU AI법은 AI의 목적·활용 측면에서 단계적으로 위험을 분류하고 분류별로 규제를 달리 적용하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EU 이사회를 거쳐 관보에 게재되면 오는 5~6월경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본격적인 법 적용 시점은 24개월의 유예기간이 지난 2026년부터로 전망되는데, 일부 항목에 대해서는 이보다 이른 시기에도 시행된다.
김앤장 정유석 변호사는 “EU AI법은 특정한 분야를 한정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규제를 규정하는 기본법 성격의 법령”이라며 “AI 시스템을 개발·공급하는 제공자를 중심으로 의무를 부담하게 했지만 최종 이용자와 접점이 있는 배포자도 일부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고 말했다.
규제의 대상인 AI가 어떤 것인지도 세세하게 규정했다. 단순 알고리즘이 아니라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SW), 데이터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대상으로, 사람이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경우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예측, 콘텐츠, 추천 또는 의사결정 등 결과물의 종류를 제한하지 않고 실제와 가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의했다.
정 변호사는 “EU AI법은 사업자의 소재지를 불문하고, EU 시장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는 경우 모두 적용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도 법 준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AI 시스템이 탑재된 전자기기나 자동차 제조사 등이 대표적”이라며 “AI 시스템과 제품을 기획 또는 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컴플라이언스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권은정 박사는 발표를 토해 “앞으로 분야별로 AI 표준경쟁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부처간 소모적인 논쟁을 거두고 협력과 조직간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며 “분야별 AI 혁신을 지원하고 위험성을 대응하는 규율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글로벌 차원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AI 과세 전략까지도 마련해야 하는 만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피력했다.
이날 웨비나에서는 EU AI법이 국내에서 추진 중인 ‘AI 기본법’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현재 국회에는 7개의 AI 법안을 병합한 AI 기본법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5월까지인 제21대 국회 회기 내에 통과될지가 최대 관심사로 꼽힌다.
정부는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남철기 AI기반정책과장은 이날 웨비나에 화상 메시지로 “법 제정이 계속 지연될 경우 AI 관련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가 위축되고 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발표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는 국내 법 제정 과정에 대한 아쉬움도 제기됐다. 법안이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는 데다 규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들의 의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이버 손지윤 이사는 “EU AI법을 보고 굉장히 놀랬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시에서 나올 것 같은 내용들도 법률에 다 들어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법률이 만들어진다면 기업들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거다. 우리도 ‘일주일 동안 의견 주세요, 땡’ 이게 아니라 기업들도 논의의 과정에 참여해 가티 토론할 수 있는 과정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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