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랑 중고거래를?!" 잔디 조직문화 클라쓰 [스토리팩-토스랩③]
사람의 뇌는 단순한 정보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오래 기억한다고 합니다. 디지털데일리 테크콘텐츠랩의 '스토리팩'은 혁신기업들의 주요 기술·인재·조직 키워드를 책 읽는 듯한 재미와 인사이트로 전달하는 기업별 연재 기획물입니다. <편집자주>
집은 한번 넓히면 줄이기 어렵다고 하죠. 처음에는 공간이 남는 듯해도 그 자리를 채우는 물건은 점점 늘어나기 마련이거든요. 동시에 생활양식도 더 많은 가구와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쪽으로 최적화되고요. 한번 그 편함을 맛보면 다시 좁은 공간으로 돌아가기란, 여간 쉽지 않은 선택이 됩니다. 사실 거주만 가능하다면 '집'의 기능이란 다르지 않은 건데 말이죠. 이는 우리가 생각보다 기능 이상의 '경험'에 높은 점수를 주며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집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도 마찬가지죠. 단순히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만이 좋을까요? 쾌적한 업무환경은 기본, 잘 통하는 사람들과 조직을 이뤄 협업할 수 있는가 역시 좋은 직장을 정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런 면에서 토스랩은 그들만의 '대체 불가능한 끈끈함'이 꽤 인상적인 기업인데요. 이어지는 이야기 중, 평소 사람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향의 직장인이라면 토스랩 조직문화의 다음 일면들을 더욱 주목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대표님이 팝니다! 위처, 당근보다 싸게
이전 토스랩 스토리팩 인재편에선 멤버들이 때때로 주말 등산을 자발적으로 함께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언급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친밀해야 주말에도 회사 동료를 만날 생각이 드나' 같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는데요. 더 알아보니 등산은 일부였을 뿐, 토스랩은 평소에도 다양한 사내 대화방에서 갖가지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실제 토스랩 멤버들이 자사 협업툴 잔디에서 이용 중인 토픽 중 일부의 캡처본인데요. '떡볶이 패키지 여행' 같은 정체불명(아마 식도락 동호회?) 토픽부터 산악회, 재테크, 중고거래, 캠핑, 맛집 리스트 등이 혼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잔디는 분명 업무용 협업툴인데, 이 부분은 마치 웹 커뮤니티의 일면을 떠올리게 하죠.
또한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실제 운영도 활발합니다. 고은혜 토스랩 HR(인적자원) 팀장에 따르면 중고거래는 경쟁이 나름 치열하다고 합니다. '중고나라 수다방'은 멤버들끼리 초저가로 물건을 사고파는 채널인데, 기본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 제3자 중고거래의 단점인 신뢰성까지 보장되기 때문이죠.
한번은 Matt(김대현 대표, 토스랩은 직급 없는 영문명을 사용함)도 직접 닌텐도 스위치용 인기게임인 '위처'의 미개봉 타이틀을 내놓은 일이 있었는데요. "당근마켓에는 4만원에 내놨지만, 우리 멤버 중 누군가 원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5000원) 하나에 드리겠다"고 올리자, 불과 1분 만에 '득템'해가는 직원이 확인됩니다. 자세히 보니 Dustin, 인재편 인터뷰에 참여했던 잔디 아이폰 앱 개발자 민병성님이었군요. 이어 9분 뒤 등장한 Paul, 서진호 CTO가 "오 멋진데"라며 답글을 달았습니다. 꽤 훈훈해 보이는 광경인데요, 한편으로 지금 독자님들은 업무시간에 대표가 게임을 팔고 직원이 구입하며 임원이 칭찬하는 광경을 본 겁니다.
은혜: "이밖에 '오늘 뭐먹?' 토픽에선 멤버들이 다녀온 식당의 후기를 공유하거나 원정대를 꾸려 맛집 탐방을 가기도 해요. 또 최근 만들어진 골프 토픽에선 처음 필드에 나간 멤버를 축하하는 골프 모임도 가졌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이런 토픽 모두 경영진이나 HR팀이 만든 게 아니거든요. 멤버들이 공개적이고 자발적으로 하는 일들인데, 이게 제 눈에도 종종 신기하게 보이곤 해요. 아마 평소 업무 간 소통과 공유가 일상화되어 있다 보니, 좋은 동료들과 일상을 나누는 일도 그 한 부분처럼 자연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회사는 '직주주의'
토스랩이 사내제도 정비 때마다 멤버들의 의견을 구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입니다. 인재편에서 멤버들이 회사의 장점 요소로 꼽았던 '잔잘법(잔디가 잘 자라는 방법)'도 그 산물 중 하나죠. 잔잘법은 토스랩에서 일종의 헌법 같은 역할을 하는데요. 제정 당시 모든 멤버들이 참여, 논의해 만들어진 규율로써 전직원의 지지를 받으며 작동하고 있죠.
토스랩이 최근 도입한 시차출퇴근제도 또한 멤버들의 의견을 모아 만들어졌습니다. 투표 결과 기존의 오전 9시~오후 6시 단일 출퇴근제에 오전 8시~오후 5시 출근 옵션이 추가됐는데요. 고 팀장은 "전부라곤 못해도, 멤버들과 가급적 호흡을 맞춰 진행하는 방식을 늘 지향하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근무환경만큼은 민주주의가 시민참여로 법과 제도를 만들어가듯 '직원 중심의 직주주의'를 표방하는 셈인데요. 이런 과정에서 직급 없는 영문 호칭을 쓰는 시스템 또한 직원 간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 빠른 소통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저출산 사회에 워킹맘, 워킹파파 지원에도 열린 편입니다. 특히 2023년 서울형 강소기업 선정 당시 토스랩의 '육아재택근무 지원제도'는 심사 측이 특히 호평한 복지라고 하네요. 서울형 강소기업은 서울시가 직접 선정하는 '청년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 인증인데요. 사업이익 외에도 일·생활 균형과 성평등 제도가 중요한 평가 요소로 꼽힙니다. 이는 근속 2년 이상, 만 8세 미만의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주 2~3회 재택근무를 지원하는 해당 제도가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죠. 토스랩은 '8세 미만은 아이가 부모의 밀착지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이며, 육아 멤버들이 가족과 지인의 지지 속에서 업무에 몰입할 수 있길 바라며 만든 제도'라고 소개했습니다.
또한 알고보니 고 팀장도 이 제도의 효용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 중인 워킹맘이었는데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은혜: "제가 재택근무를 선택한 매주 수요일은 아이가 가장 행복해하는 요일이에요. 일주일 중 유일하게 엄마가 학원차에서 내릴 때 기다려주고, 놀이터에서 본인이 노는 것도 지켜봐 주는 날이거든요. 고작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이런 지원만으로도 제 회사생활에 응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동기 부여에 큰 영향을 주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앞으로도 잘 지켜지고 선하게 사용됐으면 하는 제도 중 하나랍니다!"
잔디언들의 찐한 잔디 사랑
토스랩의 여러 조직문화 가운데 또 하나 인상깊은 부분은 '잔디'라는 브랜드를 사내 브랜딩에도 정말 잘 활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잔잘법 ▲잔디언 ▲잔디피딩 ▲일하잔디 ▲잔-Day 등... 그들 스스로도 잔디란 키워드를 확장하는 것에 상당한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대부분의 작명 센스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특히 직원 평가 및 동기부여 시스템처럼 딱딱한 영역에서도 '잔디피딩(JANDI feeding)' 같은 귀여운 이름을 붙이는 곳은 토스랩뿐 아닐까 싶은데요. '밥을 주다'란 의미의 영단어 피딩과 잔디의 합성어로, '좋은 영양분을 공급해 멤버들이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이 담겼다'고 하네요.
또 8주년 워크샵 준비 중에도 사내 공모전으로 '잔D-Day'란 이름을 발굴했는데, 잔디의 디(D)와 즐거운 날을 맞이하는 디데이(D-day)란 의미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작명이었죠. 당시 공모전 때 큰 호응을 받아 토스랩은 지금도 모든 워크샵에 '잔디데이'란 이름을 활용 중이라고 하는데요. 보통의 기업은 소홀하기 쉬운 이런 내부 브랜딩 전략은 일면 소소해 보여도, 자사 서비스에 대한 직원들의 애정과 조직 소속감을 높이는 좋은 노력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고객사에 질 수 없죠" 잔디킹은 토스랩
이밖에 현재 40여명인 토스랩 직원들은 제품개발(Product), 마케팅(Sales), 고객경험 개선(Business), 업무지원(Back-Office), 대만지사인 TW branch 조직 등에 속해 일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의 업무 시작과 끝도 당연히 잔디가 함께하는 구조인데요. 특히 협업툴이란 솔루션을 서비스하는 만큼, 항상 자사의 잔디가 업무에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공유한다고 합니다. 사실 토스랩 고객사 중에는 'GC지놈'처럼 잔디를 활용한 업무 효율화에 진심인 사례도 있는데요. 토스랩 또한 '잔디 종주국'으로서 고객사보다 연구를 게을리할 수도 없지요.
그 일환으로 토스랩은 올해 10년이 된 회사인데 여전히 잔디 외 다른 HR 툴은 쓰고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잔디 하나로 커버 가능한 HR 시스템을 갖췄단 이야기인데요. 특히 확장성(잔디 커넥트, 웹훅 기능 등) 실험이 활발한 편입니다. 가령 토스랩에서 내부 전자결재는 무료인 구글 설문폼을 이용해 각종 신청서를 구현하고, 응답이 들어오면 다시 잔디 내에서 처리가 가능하도록 구현돼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들은 고객사들도 활용 가능하도록 토스랩 CX(고객경험)팀이 수시 가이드를 배포하고요.
잔디의 영원한 자양분 '자·책·공'
토스랩 사람들은 ▲자율 ▲책임 ▲공유라는 핵심 키워드가 이처럼 자사만의 깊이 있는 소통과 끈끈한 협업, 참여 문화를 만든다고 말하곤 합니다. 여러 위기와 풍파를 겪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조직의 본질이자 출발선'으로 말이죠.
또한 이들 키워드는 특히 세대갈등, 대화의 단절 등 오늘날 변화한 시대상 심화시킨 염증 요소들을 잠재적 위협요소로 구분하고, 혁신을 위해 골몰 중인 많은 조직에 시사점을 던져주는 듯합니다. 단순히 소통을 강조하고 자율화를 선언해도, 곳곳에서 터지는 예상치 못한 엇박자들이 이를 가로막는 등 생각만큼 해결이 쉬운 문제는 아니거든요.
예컨대 자율만 해도 요즘은 상명하복 대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미덕이기에 좋은 조직문화 혁신 키워드로 꼽힙니다. 하지만 책임감이 수반되지 않는 자율, 개인의 단절된 자율은 결국 불통과 개인화란 악순환만 강화하는 고리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 토스랩은 달랐습니다. 사소한 예지만 멤버 자율로 운영하는 사내모임만 봐도 어떤가요? 기본적으로 업무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그러나 회사가 승인하는 자율 활동의 일환이자, 관심있는 사내모임 활동은 반복된 업무 가운데 좋은 환기처이자 교류의 장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만한 일에 당당히 참여하려면 평소 자신의 업무도 더욱 책임감 있게 수행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 통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말이죠.
이외에도 토스랩은 '나의 실패담도 조직의 자양분이 된다'는 의식이 자연스러울 만큼 공유가 일상이 된 조직이었는데요. 이처럼 자율, 책임, 공유란 바탕 아래 사소한 일도 직원 스스로 공감하고 참여하도록 만들어온 노력은 지난 10년, 토스랩을 어느 조직보다 생기있고 단합이 잘 되는 회사로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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