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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가 돈 준다고 기어가… 자존심도 없나” … KT 팬들은 왜 트럭을 보냈나

문대찬 기자
4일 오전 광화문 KT 지사 앞에 선 트럭. KT 롤스터 팬의 항의 메시지가 담겼다.
4일 오전 광화문 KT 지사 앞에 선 트럭. KT 롤스터 팬의 항의 메시지가 담겼다.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SKT가 돈 준다고 기어가서 개 노릇을 자처하는 만년 2위 통신사 KT, 우리 잔치보다 남의 잔치, 위성도 팔고 자존심도 팔고.”

4일 광화문 소재 KT 지사 건물 앞에 높은 수위의 항의 메시지를 담은 트럭이 멈춰 섰다. 해당 트럭은 KT가 운영하는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 이스포츠팀 KT 롤스터 팬들이 지난 1일 십시일반 모금을 시작해 마련한 것으로, 5일까지 광화문과 삼성동, 수원 일대를 배회할 예정이다. 삼성동은 라이엇게임즈코리아 사무실이, 수원은 KT스포츠단이 위치한 곳이다.

통신사 라이벌 잔치 들러리 서나… KT 팬 뿔났다

발단은 29일 예정된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서머 시즌 정규리그 경기다. 이날 T1과 KT 롤스터는 종로 롤파크가 아닌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통신사 대전’을 치른다. T1의 창단 20주년을 맞아 T1이 홈팀, KT 롤스터가 어웨이 팀으로 나서는 도전적인 시도로 화제를 모았다. 프랜차이즈 도입 후 롤파크가 아닌 장소에서 정규리그가 치러지는 것은 처음이다.

LoL 이스포츠는 날로 인기가 상승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수익성 악화로 고민이 크다. 이번 ‘T1 홈그라운드 매치’는 팀들에 자체적인 마케팅 및 수익 다각화 기회를 연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T1의 제안을 KT가 받아들였고, LCK의 최종 승인 끝에 개최가 성사됐다.

문제는 KT 롤스터 측의 의아한 행보다. 당초 고지된 이날 경기 홈, 어웨이, 중립석 비율은 10대 1대 1로 좌석 대부분이 T1 측에 배정돼 있다. T1 2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이고, 통상 프로스포츠 홈‧어웨이 관중석 비율을 감안하더라도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경우, KT 롤스터 선수단은 홈팬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이에 따른 사기 및 경기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를 승인한 라이엇게임즈를 향한 비판도 일부 존재하지만, 장소나 매치 진행 방식 등에 KT가 전부 동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KT 프런트를 향한 책임론이 거센 상황이다.

방만한 운영에 누적된 팬 불만, ‘T1 홈그라운드’가 트리거

이스포츠 업계는 KT 측이 오랜 기간 이어온 방만한 팀 운영에 누적된 팬 불만이, T1 홈그라운드 사태를 계기로 트럭 시위라는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이날 트럭에 노출된 메시지도 “팀도 팬들도 지키지 않는 프런트”, “졸속 행정 프런트는 책임지고 해명하라”, “의지 없는 게임단, 소통 없는 프런트”, “돈 몇 푼에 팔려 가는 자존심도 없는 거지 게임단으로 만들고 행복하냐” 등 KT 측 행보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팬들은 같은 날 발표된 성명문을 통해서도 “팬 목소리를 듣지 않는 김영섭 대표이사 및 KT 스포츠 사무국에 분개한다”며 KT 롤스터 프런트가 “방치와 홀대에 가까운 운영으로 게임단 수명을 갉아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KT 롤스터는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이스포츠팀이다. 1999년 출범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다만 이 같은 명성에 걸맞지 않은 행정과 운영으로 외연 확장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치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대표적이다. T1 등 경쟁팀이 트위터나 등 SNS를 적극 활용해 팬 소통에 나설 때, KT는 한동안 계정을 방치하고 운영에서 손을 떼 뭇매를 맞았다.

최근에야 운영을 시작한 SNS 계정이나 유튜브 계정을 통한 소통 콘텐츠도 오타가 속속 발견되는 등 낮은 완성도로 팬 원성을 사고 있다. 당장 이번 사태 직전에도 인형 품목 하나만 포함된 빈약한 굿즈 구성, 품질 낮은 스프링 시즌 유니폼 등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총대 A씨는 <디지털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유니폼을 야근해가면서 만들고 있다고 공지를 올려놓고 통기성 없는 소재로 만들고, 기성 제품을 재활용해 자켓을 만드는 등 굉장히 성의 없는 행보를 보였다”면서 “2월 굿즈 출시 예고를 하고 4월에 괴악한 퀄리티 시안을 내놓고 팬 항의가 이어지자 6월 현시점까지 굿즈는 단 1종만 나왔다. SNS 및 멤버쉽 운영도 거의 방치 상태”라고 한탄했다.

T1 선수단이 작년 롤드컵 우승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
T1 선수단이 작년 롤드컵 우승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

라이벌은 성대한 20주년 행사, KT 25주년은 실종

일각에선 산업 활성화라는 취지에 더해 T1이 소노 아레나 대관료를 전부 부담하는 만큼, KT 롤스터 팬들의 반발이 다소 과도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다만 팬들은 전통의 라이벌팀이 20주년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준비할 동안, 25주년을 맞은 KT 롤스터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이 분노를 키웠다고 말한다. 관중석 비율도 불균형하게 맞추면서, 그야말로 선수와 팬이 라이벌팀 잔치의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취재에 따르면 KT 롤스터는 내년에야 홈팀 신분으로 치르는 통신사 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 또한 기획 단계일 뿐, 구체적인 일정 등은 확정된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KT 롤스터를 응원하는 팬 B(22)씨는 “경기 상대가 T1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라이벌팀 축제를 빛낼 조연이 된 기분”이라면서 “T1은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는데 KT는 손만 놓고 있다. 명색이 라이벌 팀인데 행보는 너무 다르다.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실제 양대 통신사 산하 이스포츠팀인 T1은 KT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T1은 LoL 이스포츠 역대 최고의 선수 ‘페이커(이상혁)’를 등에 업고 글로벌 최고의 게임단으로 거듭났다. 2019년엔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컴캐스트로부터 500억원에 가까운 투자를 유치하며 세를 더욱 불렸다. 최근엔 T1샵이라는 독자적 유통망도 구축해 팬덤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19년부터 타 게임단과 마찬가지로 적자난에 허덕이던 T1은 지난해부터는 수익성을 개선하며 적자폭을 줄여나가고 있다. 매출을 239억원까지 늘리면서 영업손실을 166억원으로 줄였다.

KT 롤스터 소속 '데프트' 김혁규가 팬들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
KT 롤스터 소속 '데프트' 김혁규가 팬들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

반면 KT 롤스터는 KT 산하 스포츠단 운영 전문 자회사인 KT스포츠를 통해 운영되고 있어 성장 집중도에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KT스포츠단 산하에는 프로야구단과 프로농구단, 하키단, 사격단 등이 있다. 타 스포츠단 상황에 따라 투자나 지원 기조가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미흡한 운영이나 부족한 사업 확장 전략 등도 이러한 구조로 인한 인력, 투자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KT 역시 2021년 투자 유치를 위한 주관사까지 선정하며 글로벌 투자자를 물색, 게임단의 독자적 성장을 꾀했지만 결실을 맺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게임단 본연의 목표인 성적에서도 격차가 벌어졌다. T1이 작년 한국에서 열린 최대 규모 국제 대회인 ‘LoL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해 총 4차례 우승을 차지한 반면, KT 롤스터는 단 한 차례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LCK 우승 횟수도 각각 10회와 2회로 차이가 크다.

이스포츠 업계 한 관계자는 “KT 롤스터가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스토브리그 때도 많은 비용을 들여 선수를 영입한다”면서도 “KT 롤스터만의 게임단 운영 방향이나 가치관 등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관성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고 짚었다.

총대 A씨는 “전문적인 이스포츠 인력으로 프런트를 구성하면 좋겠다. 선수와 팀을 보호하고 팬들과도 정상적으로 소통하고 보호할 줄 아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T1 홈그라운드 경기는 양팀의 합의 끝에 관중 비율 등을 재조정해 개최될 예정이다. KT 롤스터 관계자는 “커뮤니케이션에 미스가 있었다. 곧 비율을 재조정한 관중석 개수를 공지할 예정”이라면서 “KT 홈 경기는 내년 중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대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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