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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모멘텀]② 규제에 가로막힌 韓…빅테크 투자 유치는 ‘그림의 떡’

권하영 기자

21세기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데이터센터 유치에 성공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규제와 인허가 절차의 복잡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데일리>는 한국 데이터센터 산업의 도전 과제와 해결 방안을 탐구하고, 글로벌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에서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본다.<편집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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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최근 인공지능(AI) 확산으로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전세계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수십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AI 혁명의 필수재가 된 데이터센터에 대한 일종의 군비 경쟁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런 가운데서도 규제에 가로막힌 한국 데이터센터 산업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 글로벌 빅테크들, 전세계 데이터센터 확보 둘러싼 투자 경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은 지금까지 전세계 AI 관련 데이터센터 구축에 400억달러(약 55조원) 이상을 배정했다. 향후 투자 규모는 배가 될 전망이다. MS는 프랑스·독일·스페인 등 유럽과 일본·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에 160억달러(약 22조원)를 쏟아붓는다. 아마존은 일본에만 150억달러(약 21조원)를 투입하고 싱가포르(90억달러)·멕시코(50억달러)에도 투자 계획을 세웠다.

대형 투자를 유치한 각국은 잔치 분위기다. 이런 투자들은 보통 데이터센터 설립에만 그치지 않고 전문인력 양성과 스타트업 지원 등 생태계 성장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5년간 일본 투자금액(약 20.1조원)은 일본 국내총생산(GDP)에 약 50조원 기여가 예상된다. 구글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 투자(약 2.8조원)를 받아낸 말레이시아는 2030년까지 GDP에 약 4.4조원 기여를 기대하고 있다.

정작 한국은 이런 잔칫상에서 소외돼 있다. 최근에는 AWS가 오는 2027년까지 국내 클라우드 인프라에 58억8000만달러(약 7.8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비슷한 시기 일본이 AWS(20조원), 오라클(11조원), MS(4조원) 등 빅테크들의 투자 러시를 받은 모습과 대조적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은 최근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중심지로 러브콜을 받고 있다.

◆ 규제 강화·인센티브 부재에 외면 받는 한국 데이터센터 시장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신규 데이터센터 투자를 꺼리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엄격한 규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은 복잡한 인허가와 물리적 규제 외에도 지역 분산 유도 정책과 환경 규제 등 다양한 제도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각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센터의 기술 특성과 사업 성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이 제기돼 왔다.

송준화 한국데이터센터에너지효율협회 사무국장은 “국내에서 데이터센터를 하나 지으려면 지자체 건축 심의를 통과하고 한전과 전력공급 계약을 거쳐 산업부와 에너지 사용계획 협의를 하는 등 많은 절차를 밟게 되는데, 최근에는 전력계통영향평가라고 해서 하나가 더 추가됐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전력계통영향평가는 데이터센터와 관련 없는 비기술적 항목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기준이 더 타이트해졌다”고 말했다.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는 지난해 6월 제정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포함된 제도로, 신규 대규모 전력소비시설 전력계통에 대한 영향을 기술적 점수(60점)와 비기술적 점수(40점)로 나눠 평가한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의 전력계통 영향과 다소 관련성이 떨어지는 ‘지역사회 수용성’ ‘지방재정기여도’ ‘지역낙후도’ 등 오히려 지역성 강화 의무를 지우는 항목들이 비기술적 점수로 들어가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안정성 규제도 더 강화된 참이다. 이듬해 3월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서비스 안정성 강화 방안’의 후속조치로, 최근 정부는 ‘집적정보 통신시설 보호지침 개정안’과 ‘집적정보통신 사업자 보호조치 이행점검 가이드라인’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데이터센터에너지효율협회는 재난관리체계 강화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민간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재검토를 요청한 상황이다.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적 유인이 부족하다는 쓴소리도 제기된다. 예컨대 데이터센터의 지역 분산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3월 발표된 ‘데이터센터 수도권집중 완화 방안’은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정부는 전력 소모량이 많은 데이터센터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최근 1년간 성사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IT 인프라가 집중된 수도권에 비해 비수도권 데이터센터 수요는 턱없이 부족해서 그렇다.

업계 관계자는 “핵심은 결국 지방에서 데이터센터 수요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인데, 인센티브 정책은 일회성이거나 비중이 매우 낮아 메리트가 없다”며 “데이터센터 운영은 전기만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인프라와 인력 확보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부가 전력요금 차등제와 같이 지방 이전에 따른 장기적이고 비용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동국대 교수는 “정부가 데이터센터 정책과 관련해 명확한 기준과 방향을 제시해야 기업들도 예측 가능성을 가지고 투자를 할 수 있다”며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이전했을 때 인센티브를 확실하게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사업자들도 안정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을 잘 지켜야 하고, 정부도 최소한의 규제를 하되 그 규제에 대해선 타협 없이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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