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모멘텀]⑧ 올림픽보다 치열한 데이터센터 유치전…승리 전략은?
21세기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데이터센터 유치에 성공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규제와 인허가 절차의 복잡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데일리>는 한국 데이터센터 산업의 도전 과제와 해결 방안을 탐구하고, 글로벌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에서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본다.<편집자>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며 올림픽이나 월드컵 유치전에 비견할 국가간 데이터센터 유치전이 이뤄지고 있다. 한 개인, 한 기업의 힘으로 승리하긴 불가능한 전쟁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실질적인 정책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지스자산운용 김영준 데이터센터담당 이사는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본사에서 <디지털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최근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은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둔 통신사나 클라우드서비스제공사(CSP) 외에도 자산운용사들까지 뛰어들며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또한 데이터센터 관련 투자 사업을 전개하는 사업자 중 한곳으로, 현재 국내에서 4개의 데이터센터가 구축 예정이거나 구축 추진 단계에 있다.
김영준 이사는 그러나 국내에서 데이터센터 사업을 전개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는 “최근까지 K-테크와 K-컬처가 글로벌 위상을 높이면서 국내 데이터센터에 대한 글로벌 사업자들의 사업 니즈가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현재는 그 모습이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특히 전력공급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고 그는 지적했다. 데이터센터 사업자에 대한 전력공급 규제, 특정 사업자의 전력 되팔이 관행 등으로 인해 임차 단가가 높아져 타 국가 대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한국은 전력이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총 발전량 대비 사용량은 아직 충분한 수준이지만, 송전선로 구축 비용이 커 한국전력도 섣불리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데다 전력공급이 불안정하다 보니 전력이 확보된 좋은 부지에 일부 업자가 알박기해 프리미엄을 붙이고 비싸게 파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는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수요 문제를 해소하고자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지난 6월부터 시행했고, 그 후속조치로 10메가와트(MW) 이상 전기를 사용하는 전력계통 사업자에 대해 반드시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평가를 수행하는 대행자 필수인력 요건이 현실적으로 한전 등 특정 분야 출신들에게 일감 몰아주기로 이어지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김 이사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으려면 컨설팅이 필요한데, 그 비용만 수십억원인 경우가 있다”며 “후발주자들에는 사실상 진입장벽이 될 수 있고, 기존 사업자들도 고객을 위해 투입할 수 있는 비용이 이런 인허가 규제를 통과하기 위한 컨설팅 비용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단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CSP 고객사들은 한국 시장이 불확실성이 크다고 얘기한다”며 “정부 인허가를 다 받고 계약까지 마쳤는데 지역 국회의원이 지역민 반발 때문에 갑자기 취소시킨다든지 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데이터센터 지역분산 정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현재 정부는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집중돼 전력이 과밀화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의 지방 구축·이전을 장려하고 있지만, 업계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김 이사 또한 “선택권은 프로바이더(Provider)가 아니라 클라이언트(Client)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며 “호텔에 비유하자면 아무 관광지도 시설도 없는 곳에 객실만 지어놓는다고 해서 게스트가 방문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많은 지자체들이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내걸고 있지만, 그 혜택이라는 게 사실 호텔 게스트에게 조식부터 디너 서비스까지 줘야 갈까 말까한 정도인데도 실제로는 물 한병 공짜로 주는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비단 데이터센터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프라들이 수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데이터센터만 지방으로 갈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김 이사가 제안한 대안 중 하나는 정부 차원에서 ‘데이터센터 밸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구축 경험이 부족한 지자체들의 유치 경쟁은 한계가 있는데다, 전력 및 토지와 인력 등 안정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운용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이사는 “미국의 경우 텍사스주나 버지니아주에 데이터센터가 몰려 있는 일종의 타운이 형성돼 있는데, 이처럼 한 구역 전체를 ‘데이터센터 밸리’나 ‘데이터센터 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변전소 등 자원을 다 공유하고 투자를 같이 하는 등 접근을 해볼 수 있다”며 “특히 앞으로 늘어날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와 규모 자체가 다르고 소형 원전을 연계해 확대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고민도 종합적인 차원에서 함께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데이터센터 경쟁이 갈수록 국가전으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데이터센터에 대한 정책 역시 국가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이사는 “AI 기술 발전으로 향후 데이터센터 시장은 국내 사업자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간 하이퍼 스케일 데이터센터 단지를 유치하는 경쟁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며 “전체 IT 산업의 성장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백그라운드 코어가 바로 데이터센터이고, 실제 데이터센터가 없다면 IT 투자들은 다 해외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수많은 나라들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현명하고 실질적인 정책과 데이터센터에 대한 인식 전환이 전제돼야 AI 시대 또 한번의 ‘위닝 코리아(Winning Korea)’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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