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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쌀과의 전쟁… 농협만으론 역부족이다

박기록 기자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가운데)이 지난 10일 홀몸 어르신에게 농산물 꾸러미를 전달하고 있다. ⓒ농협금융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가운데)이 지난 10일 홀몸 어르신에게 농산물 꾸러미를 전달하고 있다. ⓒ농협금융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그런데 왜 그게 걱정이죠?"

최근 만난 농협 관계자가 사석에서 "올해도 쌀농사가 풍년일 것 같다"면서 한 숨을 내쉬자, 기자는 영문을 몰라 이렇게 되물었다.

최근들어 농협중앙회 강호동 회장 뿐만 아니라 전 농협 계열사 CEO들이 총동원돼 '아침밥먹기' 캠페인을 부쩍 강화하는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나온 문답이었다. 쌀농사가 풍작이면 가뜩이나 보관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쌀재고량이 더 늘어날 수 밖에 없기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자연재해 등 큰 변수가 없다면 올해 쌀재고량은 140만톤을 넘어설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이는 이미 우리나라의 적정 비축량(80만톤)의 두 배에 달한다. 만약 내년에도 풍작이면 고민은 더 커질 것이다.

물론 쌀재고가 이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있다. 쌀소비량이 계속 줄어드는데 그에 따른 생산량 제어가 안됐고, 또 그렇게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는 가격폭락을 막기위해 계속 수매한 결과다.

정부가 2025년 양곡관리비용으로 국회에 요청한 예산은 4561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정부의 고민은 막대한 양곡관리비용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쌀재고가 문제라면 쌀농사를 줄이고 대체 작물로 전환하거나, 쌀을 시장에 싸게 풀거나 무상 기부하거나 수출 등의 방법으로 금새 해소될 문제같지만 하나 하나 따지고 들어가다보면 결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쌀재고'는 의외로 경제, 정치적 문제들과도 매우 민감하게 얽혀있다. 쌀 값의 안정성 확보와 농민 생존권의 문제,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의 문제, 농산물 등 물가관리의 문제 등이다.

결국 현재 법체계내에서, 사회적 갈등없이 쌀재고 문제를 원만하게 해소하려면 '먹어서 없애는' 단순한 방법밖에 해법이 없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쌀을 동물 사료로 쓰거나 심지어 바다에 버리자거나 북한에 지원하자는 식의 얘기들도 나돌고 있다. 일반적인 국민 정서를 고려했을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아니다.

이런 가운데 범 농협 계열사의 전사적 캠페인을 넘어 범 정부적, 사회적 쌀 소비 캠페인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일 농협은 방송통신위원회와의 업무 협약에서 쌀소비를 주요 의제로 넣었다.

12일에는 은행연합회가 국민은행 등 6대 은행장들과 '쌀 소비 촉진 공동 캠페인'을 가졌다. 은행연합회 및 6개 은행은 200억원 상당의 쌀 및 쌀 가공품을 연말까지 구매해 고객 사은품으로 지급하거나, 저소득층 가정 등에 기부하기로 했다. 농협은행은 약 190억원 규모, 은행연합회와 나머지 5개 은행도 약 12억원 이상 구매할 예정이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쌀 재고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자리잡은 식생활 패턴이 순식간에 바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0년전과 비교해 국민 1인당 쌀소비량이 거의 50% 가까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이제 1인 가구가 40%이상 늘면서 밥먹는 습관 자체가 줄어들었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에도 '아침밥 먹기' 캠페인 이상의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빈곤한 창의력이다. 여기에 더해 보다 근본적으론 구조적 쌀 생산 과잉 문제를 유연하게 조절해야할 입법부 차원의 무능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쌀 소비 캠페인에 악전고투하고 있는 농협의 노력만으론 역부족이다.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이라는 대전제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식생활의 변화, 시대의 변환에 맞게 양곡관리법 등 식량 관련 입법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더욱 시급해졌다.

박기록 기자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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