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경제 해지분석]① “중도해지 고지 미흡”…업계 정조준한 공정위 칼날
[편집자주] 인공위성도 ‘구독’하는 시대다. 저렴한 가격에 일정한 품질의 서비스를 무제한 제공받을 수 있는 ‘구독경제’는 소유의 종말을 가져왔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세계적대유행)에 따른 전자상거래의 활성화는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구독모델의 폭발적 성장을 견인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이 같은 구독모델에 칼을 겨눴다. 청약철회 및 중도해지 절차를 간편하게 하고, 중도해지시 차액을 환불해주도록 약관을 변경하는 것이 골자다. 특히 중도해지를 두고 업계와 학계의 반발이 거세다. 자칫 소유의 종말이, 구독모델이라는 혁신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공정위 시정조치가 구독경제 시장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분석한다.
[디지털데일리 이나연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플랫폼 업계 전반에 구독 서비스 ‘중도해지’ 고지 미비 혐의 관련한 전방위 조사와 제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구독경제’ 사업을 전개하는 네이버와 카카오, 쿠팡, 마켓컬리를 비롯해 전자책·음원 등 콘텐츠 플랫폼이 대표적인 사례다.
공정위가 내린 시정 조치로 대다수 플랫폼은 중도해지 정책과 소비자 고지를 이행 중인 상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부과된 과징금 등 제재에 따른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17일 영국 시장조사업체 주니퍼리서치에 따르면 오는 2026년 디지털 비디오 구독은 7억9000만건 이상, 디지털 음악 구독은 8억1000만건 이상, 실물 상품 구독은 9억2000만건 이상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구독경제 시장 규모만 약 5990억달러(약 798조원)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다.
구독경제는 소비자가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낼 때 공급자가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말한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플랫폼 구독 서비스에서 ▲무료 체험에서 유료 서비스 전환 시 안내 미흡 ▲가입에 대비해 복잡한 해지 절차 ▲구독 취소 시 환불 조치 미흡 등 문제가 지속 제기됐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 2020년 국내 전자책(e-book) 플랫폼 사업자인 리디, 밀리의서재, 교보문고, 예스24 이용자 약관을 심사해 10개 유형 불공정 조항을 자진 시정하도록 했다. 서비스를 결제했더라도 사용자가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환불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 골자다.
밀리의서재와 교보문고는 콘텐츠를 열람하지 않을 때 결제 후 청약 철회 기간에 해당하는 7일 내 취소하면 전액을 환불하고, 7일이 지난 뒤 해지하면 결제금액의 90%를 환불하는 내용으로 약관을 고쳤다.
예스24는 결제 후 7일 내 취소 시 전액을 환불하되 7일이 지난 뒤 해지하면 해지신청일까지 이용일수에 해당하는 금액과 잔여기간 이용금액 10%를 공제한 뒤 환불하기로 했다. 리디는 업데이트 지연·판매가격 변경 등을 이유로는 환불이 어렵다는 불공정 조항을 삭제했다.
공정위는 올해부터 조사 대상 플랫폼 범위를 넓히는 한편, 시정 조치에 과징금까지 내리는 등 제재 수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1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은 소비자에 중도해지 신청 관련 안내를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98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2017년 5월부터 2021년 5월까지 멜론이나 카카오톡 등 회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월 단위로 이용요금이 자동 결제되는 ‘정기 결제형’ 음원서비스를 판매하면서 소비자가 해지를 신청하면 ‘일반해지’로 일괄처리했다. 소비자 계약 해지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중도해지는 신청 즉시 계약이 해지돼 이용이 종료되며, 소비자가 결제한 음원서비스 이용권 금액에서 이용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환급된다.
일반해지는 이용 기간 만료 시까지 계약이 유지된 후 종료되며 결제한 음원서비스 이용 금액은 환급되지 않는다. 당시 공정위는 멜론 해지를 신청한 소비자에게 일반해지 신청인지, 중도해지 신청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멜론 측은 공정위 지적 관련해 이미 자진 시정을 마친 데다, 고객센터 문의와 확인을 거쳐야 환불되는 타 음원 구독 서비스와 비교해 멜론 중도해지가 더 편리하다고 맞섰다.
공정위 조사 이전에도 ‘웹 질의응답(FAQ)’이나 ‘결제 전 유의사항’ 등에 중도해지 안내 및 고지를 충분히 했으며, 웹 중도해지 버튼과 고객센터를 통해 중도해지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사건 심사과정에서 해지 신청 관련 용어를 명확히 바꾸고, 중도해지 기능을 지난 2021년 7월까지 모든 판매 채널에 구현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 멜론과 네이버 바이브 등을 제외 시 유튜브뮤직과 지니뮤직, 플로 등 대다수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중도해지를 위해 고객센터에 직접 연락하거나 FAQ 게시판에 요청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멜론 운영사는 카카오엔터지만, 제재 대상은 지난 2021년 9월 이전까지 멜론을 운영해 온 카카오 법인이 지목됐다. 현행법상 ‘법 위반 사업자가 합병한 경우에만 합병 후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카카오 측은 이듬달인 지난 2월, 공정위를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NHN벅스와 스포티파이 코리아뿐만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웨이브·왓챠 등에도 현장조사를 통해 중도해지 미흡 의혹을 살폈다.
이어 5월에는 쿠팡, 네이버, 마켓컬리 역시 같은 사유로 현장 조사에 나섰다. 쿠팡은 ‘와우 멤버십’, 네이버는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마켓컬리는 ‘컬리멤버스’ 등 매달 일정액을 지불하면 할인과 적립 등 혜택을 제공하는 유료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8월 OTT 사업자 넷플릭스·웨이브·왓챠와 음원 플랫폼 NHN벅스·스포티파이 코리아에 각각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하며 제재 절차에 돌입했다. 비슷한 의혹으로 조사를 받는 네이버·쿠팡·마켓컬리는 아직 심사보고서가 발송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도해지 관련해 멜론에 이어 OTT와 음원 사업자도 제재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네이버·쿠팡·마켓컬리도 이미 조사 중인 만큼 같은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카카오 법인이 공정위 조치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듯 중도해지 정책을 둘러싼 업계와 정부 간 입장 간극은 좁히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업들의 구독 정책을 들여다보는 게 전 세계적 추세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로이터,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미국 경쟁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다음 달 5일 대선을 앞두고, 업체들이 구독과 멤버십 서비스 취소 과정을 간소화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구독 서비스가 산업 전반에서 일반적인 소비문화로 자리 잡은 가운데 구독 서비스 취소가 일종의 ‘고문’에 가깝다는 소비자 불만을 반영한 조치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 소비자들은 ‘클릭 한 번으로’ 또는 ‘서명’으로 구독 서비스를 언제든 취소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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