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IT인재 1세대' 산파역… 이철희 숭실대 명예교수의 당부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요즘도 잘 뛰어 다닙니다. 하루 1만보 이상 걷고 수영장도 가고, 노래교실도 다니고요."
거의 5년만에 다시 만난 이철희 교수(91 사진)는 여전히 쾌활하고 정정했다. 건강의 비결이 웃음이듯 이 교수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앞서 지난 2020년 초, <디지털데일리>는 숭실대 전자계산학과 설립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이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당시 이 교수는 마치 고향집 툇마루에 서서 객지에서 돌아오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으로, 제자들을 모두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크게 들떠있었다. 그러나 그해 행사를 코앞에 두고 코로나19가 갑자기 덮치면서 50주년 행사는 끝내 열리지 못했다.
그런만큼 오는 11월12일 더케이호텔서울(양재동) 그랜드불룸에서 열리는 55주년 행사가 이 교수에게는 더욱 각별하다.
현재 숭실대 전자계산학과는 컴퓨터학부와 소프트웨어학부로 분화되는 등 여러 변화를 거쳤다. 이번 행사의 주관도 숭실대 컴퓨터학부, 소프트웨어학부가 맡았다.
이번 55주년 기념식 초청 대상은 숭실대 컴퓨터학부, 소프트웨어학부 뿐만 아니라 일반 IT대학원, 정보과학대학원, IT정책대학원 졸업생들도 모두 포함된다.
이 교수는 이날 행사에서 격려사를 할 예정이다.
또한 이날 행사에서 기조강연은 이 교수의 제자인 안길준 교수(87학번, 現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가 맡는다. 안 교수는 '기술의 트렌드와 미래준비 : 최초의 시작에서 최고의 우수성을 추구하며'이 주제로 급변하고 있는 IT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위한 비전을 공유한다.
이철희 교수는 1973년 숭실대 전자계산학과에 부임한 이후 2000년 은퇴할때까지 27년간 헌신했다. 퇴임이후에도 석좌교수로 8년간 열정을 쏟아 부었다. '숭실대 전자계산학과의 역사'로 불리는 이유다.
"1회 졸업생들 뿐만 아니라 제자들 얼굴을 보면 모두 금방 알아볼 것 같다"고 말하는 이 교수는 기억에 남는 졸업생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씩 떠올리면서 즐겁게 회상했다. 이어 숭실대의 전자계산학과를 비롯해 정보과학대학원(1988년)의 출범 배경, 또 프로그래머 전문 양성에 나섰던 숭실대 전자계산원의 역사까지도 정확하게 설명했다.
지금은 색이 바랬지만 그에게 주어졌던 임명장의 의미는 남달랐다. 이 교수는 우리 나라 'IT인재 1세대'를 육성해낸 산파역이라는 점에서 숭실대 뿐만 아니라 IT업계 인사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이 교수는 숭실대 전자계산학과 1회 입학생이 4학년이 되던 1973에 부임했다. 그 전까지는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있었다.
매년 군항제가 열리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그는 70년전인 6.25 전쟁 정전 다음해인 1954년에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육군 장교 임관후 전방 근무에 배치된지 6개월만에 육사 최고 성적의 졸업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교수 자원’으로 선발됐다.
1960년 미국으로 국비 유학을 떠난 그는 미국 퍼듀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을 전공했다. 이후 귀국해 육사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73년 숭실대로 스카우트된 것이다. 이 교수의 큰 아들도 퍼듀대에서 공학 박사를 취득하고, 미국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전자계산학과 1회 졸업생들이 21명인데 그 중 몇명은 아직도 현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가끔씩 소식을 듣고 있다"며 기뻐했다. 1회 졸업생들의 나이도 현재 70세가 훌쩍 넘는다.
시간이 흘러도 오히려 기억은 더욱 선명해지는 듯하다. 어쩌면 그리움이 그만큼 더욱 짙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교수는 "요즘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숭실대 캠퍼스를 가끔씩 찾는다"고 말한다. "최근엔 숭실대 도서관 꼭대기에 올라가 교정을 한 번 쭉 바라보고 싶었는데 문이 잠겨서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제자들에게 당부해주실 말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교수는 "뭐 특별히 당부할 말이 있겠습니까"라면서도 "요즘은 생성형 AI(인공지능)때문에 너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쉽게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다. 그러나 무슨일이든 열심히하면 반드시 결과가 나온다는 믿음은 결코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초창기에 IT가 모두에게 생소했듯이 AI도 우리가 극복해야할 도전 과제에 불과할 뿐, 자신감을 가지라는 덕담이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요즘 대내외 여건이 쉽지않다고 한다. 그래도 오랜만에 모이는 만큼 아무쪼록 제자들이 이번 행사에 많이 참석해 서로 안부를 묻고 용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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