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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배터리사 노스볼트, 美서 파산보호 신청…韓 영향은 [소부장박대리]

고성현 기자
노스볼트 스웨덴 셸레프테오 공장 전경. [ⓒ노스볼트]
노스볼트 스웨덴 셸레프테오 공장 전경. [ⓒ노스볼트]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최대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가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에 어떤 여파가 있을지 주목된다. 국내 배터리 3사에 대한 입지는 굳건해질 전망이지만, 해외 고객사 확보에 나섰던 소재·장비사의 판로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스웨덴 노스볼트가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노스볼트는 폭스바겐, 골드만삭스, 독일 정부 및 유럽연합(EU) 등에서 150억달러 이상을 투자 받은 배터리 제조사다.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유럽 내 배터리 공급망을 형성해줄 것으로 기대받아왔으나, 전기차 캐즘 및 중국, 한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로 지난해 12억달러의 손실을 내며 유동성 위기에 빠진 바 있다. 노스볼트는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가용 현금이 3000만달러, 부채가 58억4000만달러라고 밝혔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노스볼트의 유동성 위기가 낮은 생산 수율에 따른 배터리 안정화가 요인이 됐다고 짚었다. 1공장 설비 반입 당시 저가의 중국산 장비를 대거 채택했고, 양산 경험이 없던 회사가 관련 생산 안정화를 이뤄내지 못하면서 손실이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유럽 매체 등은 노스볼트의 생산 납기 지연에 따라 BMW와의 계약이 취소됐고, 폭스바겐 역시 계약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스볼트의 위기가 지속되면서 국내 배터리 제조사에게는 호재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기적인 입장의 경쟁자가 사라진 데다, 배터리 생산의 어려움 및 리스크가 확대된 터라 국내 3사로 향하는 완성차업체의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노스볼트가 삼원계(NCM, NCA) 배터리를 주력으로 해온 만큼 이에 대한 입지가 더욱 탄탄해질 전망이다.

다만 노스볼트 파산보호 신청에 따른 직접적인 수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유럽 전기차 시장이 침체된 상황인 데다, 노스볼트가 시장 내 차지하는 점유율도 높지 않았던 탓이다. 오히려 노스볼트의 상황보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위시한 중국 업체의 공세가 강해지고 있는 점이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배터리 소재·부품·장비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사를 다각화할 기회가 좁아졌다는 부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잇따른 파산으로 계약 불이행에 대한 리스크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익률마저 개선할 계기를 놓치게 됐다는 의미다.

배터리 제조 사업은 이익률이 평균 3~7% 내외로 반도체 등 타 전략산업 대비 낮은 축에 속한다. 화학 제품인 만큼 원소재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이 매우 큰 데다, 높은 초기 투자비에 따른 감가상각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배터리 제조사에 소재·장비를 납품하는 기업들도 특정 이상 이익률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장비사들은 배터리 시장에 신규로 진출하는 고객사를 대상으로 이익을 확보하는 전략을 짜왔다. 신규 진입 고객사는 양산 경험이 풍부한 국내 3사와 달리 초기 생산에 대한 부담이 큰 만큼, 국내 소재·장비사가 일부 제품을 일괄납품(Turn-key)로 공급하거나 이익률을 높게 가져가는 등 수혜 요소가 컸다.

한 배터리 장비 업계 관계자는 "장비의 경우 국내 3사는 공정 장비별로 협력사가 세분화돼 있어 납품 규모가 한정돼 있고, 경쟁이 심해 프로젝트 입찰 가격이 낮아지는 등 이익률을 제고할 방안이 거의 없다"며 "반면 유럽 배터리사는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특정 기업에 턴키 수주를 맡겨왔기에, 노스볼트 파산보호 등은 분명 좋지 않은 소식"이라고 전했다.

이는 배터리 소재 업계에도 좋지 않은 소식이다. 낮아지는 원료가와 가공비를 상쇄하려면 대량 양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 효과를 실현해야 하는데, 판로가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이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또 성능·가격적 이점이 강한 국내 장비와 달리 중국 소재사와의 경쟁이 치열한 업계인 만큼 고객사 풀이 좁아지는 것은 향후 전망에도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노스볼트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의 유럽 고객사 수주에 대한 부정적 기조가 강해질 수 있다는 부담도 남아 있다. 파산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국내 기업의 체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초 영국 브리티시볼트가 파산하며 하나기술, 씨아이에스 등이 직간접적인 손실을 본 바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당시 브리티시볼트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으나 실 공급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추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노스볼트 자회사가 파산하며 에스에프에이(SFA), 씨아이에스가 3분기에 일회성 손실을 대거 반영하기도 했다.

엘앤에프 역시 유럽 배터리 고객사와 대규모 수주를 맺은 바 있으며, 해당 기업이 노스볼트로 추정되는 만큼 관련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현재 노스볼트로 향한 대규모 공급이 시작되지 않은 데다, 내부적으로 관련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 손실 요인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성현 기자
narets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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