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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에 돛단 권오철 하이닉스호… 38나노 D램 수율 안정화 최대 과제

한주엽 기자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대규모 공장 건설보단 기술 업그레이드에 투자하고 메모리 사업에 모든 역량을 쏟겠다. 프리미엄 위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고 차입금(빚)을 줄이면서 재무구조 개선에 역점을 두겠다.”


지난해 취임한 권오철 하이닉스 대표는 “하이닉스를 오래가는 좋은 회사로 만들겠다”며 시종일관 이 같은 발언을 했다. 권 대표는 공격적 투자와 점유율 확대 전략을 지양하는 안정중시형 CEO다. 틈만 나면 “경기 변동에도 흔들림이 없는 회사를 만들자. 질적 성장을 중시하고 차입금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이자”고 말해왔다.


작년 반도체 시장은 경기 침체가 풀리고 PC 출하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최고 호황기를 맞았었다. 권오철 대표는 절묘한 타이밍에 하이닉스를 이끌게 되면서 순풍에 돛단 배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하이닉스는 작년 연간 기준 매출 12조990억원, 영업이익 3조273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53%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무려 1600% 이상 확대됐으며 이익률은 30%에 육박했다.


◆차입금 줄이고 고부가가치 제품 늘려


하이닉스는 벌어들인 수익 가운데 1조1000억원 빼서 차입금을 갚았다. 차입금 규모는 작년 1분기 7조원대에서 연말 5조9000억원으로 줄었다. 2000년 하이닉스의 차입금 규모는 15조원을 훌쩍 넘겼을 정도이니 현 재무구조는 상당히 안정됐다는 평가다.


하이닉스는 올해도 6000억원 가량을 갚아 부채 비율을 10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장기적으로는 차입금 규모를 4조원대 이하로 낮추겠다는 뜻도 밝혔다.

권 대표가 차입금을 줄이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자 비용만 수천억 원이라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어 실적이 곤두박칠치면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황일 때 최대한 빚을 갚아놓겠다는 게 권 대표의 생각이다.

권 대표는 또한 대규모 확장 투자보단 미세공정전환과 수율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품질분석시스템으로 수집해 온 반도체 제작 공정별 리포트(불량 원인 등)를 통계 데이터로 가공하고 주요 장비들이 최적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온도·습도·압력·조도 등) 데이터를 산출해내는 공정예측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이 같은 시스템을 만들고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해 전반적인 반도체 수율을 높이고 미세공정전환 속도를 앞당기겠다는 것이 권 대표는 전략이다.


제품 포트폴리오도 수익 위주로 짰다. PC에 탑재되는 범용 D램보다 값이 비싼 모바일·그래픽·서버용 D램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늘렸다. D램 값이 떨어져도 고부가가치 제품을 버팀목으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1분기 기준 하이닉스의 고부가가치 D램의 비중은 70% 수준에 도달했다.

이 덕에 D램 가격이 바닥을 찍었던 지난 1분기 하이닉스는 대체적으로 선방한 323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하이닉스의 뒤를 잇는 일본 D램 업체인 엘피다는 같은 기간 우리돈 약 780억원의 적자를 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권오철 대표가 이처럼 안정적인 경영 기조로 하이닉스를 이끄는 데에는 그의 말대로 오래가는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반도체 사업은 리스크가 높다고 판단하는 투자자들의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켜 매각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하겠다는 속내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38나노 수율 안정화…코스트 경쟁력 확보 과제


그러나 하이닉스가 올해 38나노 D램의 수율 안정화를 거치지 못한다면 1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원가경쟁력에서 차이가 더 벌어지고 20나노대로의 전환도 늦어져 또 다시 위기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들린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지난해 공장을 새로 짓거나 생산량을 확대하는 활동은 하지 않았다”며 “이는 생산량을 지속 확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는 대비되며 하이닉스는 미세공정 전환이 늦어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하이닉스의 주력인 44나노 D램의 경우 일부 라인에선 부분적으로 수율이 기대치에 못미치고 있으며 이는 곧 원가경쟁력에서 삼성전자에 뒤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1월 기준 D램을 생산하는 하이닉스의 이천 M10과 중국 우시 공장의 생산 규모는 300mm 웨이퍼 기준 15만장으로 작년 1월과 비교해 제자리걸음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D램 공장인 15라인의 경우 2009년 10만장, 2010년 12만장, 2011년 15만장으로 생산량이 지속 확대되고 있다.


물량으로 치고 나오는 선두 업체에 맞서기 위해 하이닉스는 38나노 D램 수율 안정화가 절실하다. 그러나 회사 안팎으로는 수율 안정화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이닉스가 38나노 D램의 수율 안정화에 애를 먹는 이유는 회로 선폭을 줄이면서도 6F스퀘어 공정을 동시에 도입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이닉스는 44나노까지 8F스퀘어 공정을 적용해왔다. 6F스퀘어는 셀의 크기가 8F스퀘어에 비해 25% 작아져 이론적으로 집적도를 25% 높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삼성전자가 80나노 공정에서 6F스퀘어를 적용하면서 개발·양산이 1년이나 늦춰졌었다는 점을 들며 셀 크기가 작아지는 만큼 수율 안정화가 어렵다고 말한다.


시장 상황도 우호적이지 않다. 1분기 기준 D램 가격은 바닥권을 형성하고 있는데다 PC 출하량도 예상보다 꺾인 상태다. 전 세계 시장에서 15%의 메모리를 소모하는 일본도 지진의 영향으로 IT 제품의 출하량이 계획량보다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하반기 삼성전자가 화성 16라인을 통해 물량을 늘릴 경우 메모리 가격의 반등이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메모리 부문에서 올해 추가 시설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과 더불어 가능성이 희박하나 엘피다의 세대를 건너 뛴 25나노 D램 개발 및 양산 소식도 하이닉스에게는 악재가 될 수 있다.


권오철 대표는 “38나노 D램 양산을 해보니까 어렵긴 어렵다”며 그러나 연말까지는 당초 목표였던 40% 비중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D램 가격 하락 국면에서 매출 하락을 막기 위해 모바일 D램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비중을 큰 폭으로 늘렸고, 이에 따라 전체 D램 시장에서 3~4% 가량 수량 점유율이 하락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대로 간다면 경기가 호황기로 접어들었을 때 취할 수 있는 이익도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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