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CES의 개막 전 기조연설은 폴 제이콥스 퀄컴 최고경영자(CEO)가 맡았다. 그가 단상에 올라 “모바일 기업이 개막 전 사전 기조연설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하자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나왔다. CES 사전 기조연설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전 회장, 스티브 발머 현 CEO가 주로 나와 그 해 IT 업계의 트렌드를 소개했었다. 이런 자리에 폴 제이콥스가 올라왔다는 사실은 모바일 시대가 본격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매일 전 세계에서 태어나는 신생아보다 많은 수의 스마트폰이 개통되고 있다고 하니 퀄컴이 주인공 대접을 받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MS는 올해 CES 전시에 불참했지만 스티브 발머 CEO는 퀄컴의 기조연설 무대에 찬조연설자로 나와 윈도8 RT를 알렸다. 주객전도(主客顚倒)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PC 시대가 저무는 게 좋을리 없는 MS의 CEO 발머이지만, 그는 제이콥스와 함께 “Born Mobile”을 크게 외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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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가 빠진 자리는 중국 TV 업체인 하이센스가 꿰차고 앉았다. 하이센스는 인텔 바로 맞은편에 부스를 차렸다. 작년까지 이곳은 MS의 자리였다. 거대한 자국 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 하이센스, TCL, 하이얼은 세계 가전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세 업체는 모두 한국과 일본의 대형 가전업체들이 자리한 센트럴홀에 부스를 차렸다. 한 관계자는 “이들이 드디어 중원으로 진출했다”라고 말했다. 하이센스와 TCL은 삼성전자와 동일한 110인치 울트라HD(UHD) TV를 선보이며 기술력을 알리기도 했다. CES 전시관 입구에 이처럼 많은 중국 업체들의 광고가 걸린 건 올해가 처음이다. 권희원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 사장은 “내수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중국)업체들이 상당히 무서운데, 그래서 대비를 잘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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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웨이와 ZTE, 레노버는 이번 CES 전시 기간에 5인치대 화면 크기에 풀HD 해상도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한국과 미국을 제치고 중국 업체들이 CES에 이러한 폰을 발빠르게 내놨다는 사실은 북미 지역에서도 브랜드력과 시장점유율을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화웨이는 이를 위해 최근‘미디어 프랜들리’를 강조하는 모양새다. 프레스컨퍼런스를 열었고, 이날 전 세계 미디어들에게 점심식사도 제공했다. 한편으론 몇년 뒤 CES의 주요 전시 품목이 TV가 아닌 모바일 제품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산인해를 이룬 삼성전자 갤럭시 특설 부스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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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들은 대규모 적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번 CES에서 보여줬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CEO는 CES 개막에 앞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56인치 4K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시제품을 선보였다. 그는 “약속을 못 지키는 OLED TV도 있지만(삼성전자를 겨냥한 듯) 우리는 이미 업무용 OLED 모니터를 성공적으로 양산한 경험이 있다”고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파나소닉도 소니와 동일한 크기, 동일한 해상도의 OLED TV 시제품을 선보였다. 이 소식을 들은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의 기술 진보에 깜짝 놀랬다고 한다. 파나소닉의 OLED TV는 소니와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츠가 카즈히로 파나소닉 CEO는 기조연설을 통해 밝혔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과 LG의 관계자들은 이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