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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인동초 세탁기와 윤부근 생활가전

이수환 기자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지난 1999년 삼성전자는 여태껏 출시하지 않은 독특한 전자동세탁기를 시중에 선보인다. 제품명은 ‘삼성 인동초 세탁기’로 추운 겨울에도 온갖 풍상을 참고 이겨내는 ‘인동초’에 비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았다. 모델명도 ‘DJ-105T’로 김 전 대통령의 약어로 쓰인 ‘DJ’를 그대로 이용했다.

이 제품은 본체에 인동초 무늬를 새기고 뚜껑을 열면 호남지역 민요인 진도아리랑이 흘러나오는 것이 특징. 당시 지역정서를 생활가전에 이용했다는 이유로 일부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1개월 동안 1500대가 팔려 평소보다 판매량이 30% 늘었다고 하니 삼성전자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린 셈이다.

새삼스럽게 인동초 세탁기를 언급한 이유는 삼성전자 CE부문 윤부근 사장이 강조하고 있는 ‘지역특화형’ 생활가전 전략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윤 사장은 생활가전을 담당한 이후 각 대륙을 바삐 돌아다니며 선진시장은 프리미엄 라인업, 신흥시장은 지역특화형 제품을 강조해왔다.

최근 삼성전자가 선보인 ‘모션 싱크’ 진공청소기가 대표적인 제품 가운데 하나다. 선진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만큼 내구성을 높이고 소음을 줄이면서도 에너지 소비효율을 강화했다. 여기에 본체를 심하게 잡아당겨도 넘어지지 않도록 특수 설계를 더했다.

모션 싱크는 프리미엄 진공청소기로 입지를 다진 다이슨과 밀레, 일렉트로룩스에 던진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가격도 작년에 출시한 프리미엄 진공청소기 ‘L9000’보다 비싸니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단단한 각오를 한 모양새다.

다만 오는 2015년 전 세계 생활가전 시장 1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전략이 요구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처럼 프리미엄은 물론 중저가 제품 공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곤란할 수 있다”며 “제품에 가치를 더하는 것을 넘어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해결책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 모른다. 인동초 세탁기처럼 작은 부분이지만 소비자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다면 전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 여기에 품질, 생활가전 특성상 한번 구입하면 오랫동안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내구성 확보는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전반적인 체질 개선을 필요로 한다.

연간 250조원으로 미국과 함께 최대 생활가전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서 소비자가 불만 건수가 가장 높았던 제품이 생활가전(중국 전자상공회의소 2010년 기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일부에서는 기능과 품질, 성능 등을 제품에 반영하면 생활가전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반을 잘 다져놓으면 오랫동안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멀리 내다보면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고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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