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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ICT장비 산업 위한 ‘새 정책’은 이제 그만

이유지

[디지털데일리 이유지기자] 미래창조과학부가 공공부문의 정보통신기술(ICT) 장비 구매발주시 법·제도 준수여부 모니터링 제도를 오는 26일부터 본격 시작한다.

앞으로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에서 컴퓨팅 장비나 네트워크 장비, 방송장비 도입시 특정제품을 염두에 두고 제안요청서에 포함한 불공정 사양 요구 등을 걸러내겠다는 방침이다. 공정경쟁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췄지만 전 산업군에 만연한 외산 ICT 장비 선호 현상으로 국산 장비를 역차별하는 관행을 공공시장에서부터 뿌리 뽑겠다는 의지다.

이를 두고 미래부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중소 ICT장비 기업이 체감할 수 있도록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같은 제도는 처음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되기 이전, 지난 정부에서 지식경제부가 수행한 IT장비 구축·운영지침이란 게 있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013년 8월에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미래부는 여러차례 국내 ICT장비 산업 육성 전략을 내놨다.

‘ICT장비산업 경쟁력 강화전략’을 비롯해 ‘ICT장비 구축·운영지침’ 등도 마련해 국내 ICT장비산업 육성을 위해 관련 정책을 실행해 왔다. 이들 법제도 시행으로 공공부문 ICT장비 수요예보와 공공ICT장비 사용현황 조사 등이 시행된 것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한국컴퓨팅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부문 컴퓨팅 서버분야 제안요청서에 불공정한 특정사양 요구 비율은 57.5%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에 모니터링 제도를 시행하면서 미래부도 공공부문 ICT장비 구매과정에서 발주기관이 특정제품을 염두에 두고 제안요청서를 작성해 중소 ICT장비 기업은 제안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것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미래부는 지난 3월 발표된 K-ICT전략에서 공공조달을 통한 중소 ICT장비 기업의 수요창출 방안을 발표했다. 공공부문 ICT장비 구매규격서(RFI) 사전 모니터링도 그 후속조치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사실상 ‘재탕 정책’이다. 2년이 넘게 시행했어야 할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비슷한 정책을 계속 반복해 발표하고 있는 셈이다.

뿌리산업인 ICT 장비 산업 가운데 네트워크 장비 산업 정책만 봐도 마찬가지다. 연구개발(R&D) 지원 과제를 빼면 네트워크 장비 육성정책은 실종된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 지 오래다. 해마다 ‘ICT장비산업 경쟁력 강화전략’, ‘네트워크장비산업 상생발전 실천방안’같이 새로운 전략만 발표했을 뿐 이를 실행하기 위한 관련예산도 미미하다.

그럼에도 미래부는 ‘네트워크장비산업 상생발전 실천방안’을 내놓은 지 3개월 만인 작년 6월 “네트워크 상생발전 정책 성과가 많았다”며 스스로 보여주기식 성과잔치만 했다. 관련업체들은 그 성과가 미비하다는 정반대의 평가를 내놓는 것과는 다르다.

이 실천방안은 오는 2017년을 목표로 ▲국내외 시장 확대 ▲요소별 역량 강화 ▲건전한 생태계 조성 등 3대 분야 12개 중점 실천과제로 구성돼 있다. 공공부문 구매 제도 개선부터 선단형 해외 진출, 핵심 기술·장비 국산화, 전문인력 양성까지 필요한 정책이 두루 담겼다. 국산 장비 품질 제고와 공정한 경쟁 풍토 조성으로 공공부문의 국산장비 점유율을 50%까지 확대한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제시했다. 그래서 관련업계의 기대감도 높았다.

공공부문 구매제도 개선뿐 아니라 국정과제에서 국산 장비 우선 사용, 보안 이슈와 연계 등 다양한 방안을 통해 공공부문에서 국산장비 사용률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하는 각종 방안을 시행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네트워크 장비업계는 줄도산, 고사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위기의식은 3~4년 전부터 컸지만 여러 법제도가 만들어져도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관련 정부 정책이 “일회성 구호와 같다”는 비판을 정부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업체들도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럴싸하게 겉옷만 바꿔입은 재탕 정책인 경우엔 더욱 그렇다. 정부도 이제는 보여주기식 새 정책을 만들어 낼 때가 아니라 정책 실효성을 거둘 때다.

<이유지 기자>yj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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