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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합병③] 돈의 공격 무위로…삼성 ‘위기대응’ 빛났다

윤상호

- CEO부터 말단사원까지 전 임직원 진정성으로 승부

[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됐다. 삼성물산 3대 주주 엘리엇매니지먼트(지분율 7.12%)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이미 전세계에서 악명을 떨친 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에 맞선 삼성그룹의 위기대응 능력과 뚝심이 빛을 발했다.

엘리엇은 벌처펀드(Vulture fund) 혹은 행동주의 펀드(Activist fund)로 악명이 높다. 엘리엇이 노려 먹잇감이 되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렵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한 것은 올해부터다. 합병 발표 직전까지 지분 4.95%를 확보한 뒤 발표 직후 추가로 2.17%를 매입해 3대 주주로 올라섰다. 5% 이상 보유 주주가 아니었던 탓에 삼성도 엘리엇의 존재를 파악치 못했다.

최종 목표는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등 관계사 지분으로 여겨진다. 이번 주주총회 안건으로 중간배당과 현물배당을 실시토록 정관을 개정하려는 안건을 올린 것은 엘리엇이다. 이사진을 교체해 삼성물산을 좌지우지하려 했던 정황도 관측된다.

엘리엇이 즐겨 쓰던 전략이다. 엘리엇은 세계 1위 스토리지 업체 EMC뿐 아니라 가상화 소프트웨어(SW) 업체인 시트릭스, 넷앱, 주니퍼, 리버베드테크놀로지의 주요 주주다. 리눅스 전문기업 노벨과 정보기술(IT) SW업체 BMC를 사모펀드에 매각키도 했다. 네트워크 업체 주니퍼는 작년 엘리엇의 권고로 자사주 매입과 인력 감원뿐 아니라 최고경영자(CEO)까지 교체했다. EMC에겐 알짜 자회사 VM웨어 분리를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기업 뿐 아니라 국가도 엘리엇에겐 예외가 아니다. 엘리엇은 부도가 난 액면가 2070만달러의 페루채권을 1140만달러에 구입해 미국과 중남미 국가의 부채 경감 합의 ‘브래디플랜’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페루 정부는 이자까지 5800만달러를 물어줬다. 아프리카에선 선진국의 원조금을 빛 갚는데 써야한다고 우겼다. 콩고는 엘리엇이 2000만달러에 산 채권을 9000만달러에 되샀다.

삼성이 엘리엇의 욕심을 막아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진정성과 투명성이다.

삼성물산 최치훈 사장과 김신 사장, 제일모직 김봉영 사장뿐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나서 주주를 만나 합병 당위성을 설명했다. 소액주주 위임장까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임직원이 발로 뛰어 받았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주주들의 요구도 받아들였다. ▲배당 성향 30% 지향 ▲거버넌스 위원회 신설 ▲사회공헌(CSR) 위원회 신설 등이 골자다. 삼성그룹 회사 중 거버넌스 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새 삼성물산 홈페이지를 만들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엘리엇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해 논리적 근거를 보강했다. 삼성물산의 신입사원과 협력사 대표 등이 출연한 TV광고는 합병에 대한 대중의 오해를 푸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경제 전반이 고민해야 할 거리도 던졌다.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한 법제화의 물꼬를 텄다. 반재벌정서와 2002년 월드컵 관전을 가지고 여론몰이에 나선 엘리엇이 머쓱해질 정도였다.

한편 합병은 통과됐지만 삼성과 엘리엇의 싸움은 끝난 것은 아니다. 엘리엇은 소송을 통해 합병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가처분 신청을 했던 자사주 매각 문제를 물고 늘어질 공산이 크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한 합병 취소 확률은 낮다. 현 주가가 매수청구권을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주주 권리 침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목적은 돈이다. 돈을 포기하고 명분을 살 까닭이 없다.

<윤상호 기자>crow@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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