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000억원 직업병 기금 조성… 신속한 보상 위해 즉각실행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삼성전자가 직업병 조정위원회의 중재 권고안 대부분을 수용했다. 다만 공익법인 설립 대신 고용노동부가 위촉한 반도체 보건관리 모니터링위원회 위원 등이 포함된 전문적, 독립적 종합진단기구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신속한 보상을 위해 즉각 실천에 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3일 삼성전자는 “조정위원회는 권고안에서 이 사안(직업병 발병자에 대한 보상 등)에 대해 ‘개인적 보상’이 아니라 지원과 위로 차원의 ‘사회적 부조(扶助)’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며 “저희는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조정위원회의 취지를 반영하고 가족들의 아픔을 신속하게 해결할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1000억원 기금 조성 ▲권고안의 보상 대상 수용, 협력사 직원도 보상 ▲종합진단기구 구성 ▲조정 권고안 취지 반영한 사과 등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권고안 대부분을 수용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1000억원 기금 조성=삼성전자는 이번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1000억원을 사내 기금으로 조성, 보상금 지급과 예방활동, 연구활동 등에 쓰겠다고 설명했다. 기금은 보상 외 ▲반도체산업 안전보건 증진을 위한 연구 조사 ▲반도체 중소기업 산업안전보건컨설팅 ▲반도체 산업안전보건전문가 양성 ▲해외 사례 조사 ▲기타 반도체 산업 안전 보건 향상을 위해 필요한 사업에 쓰겠다고 삼성전자는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사단법인 설립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을 통해 보상을 실시하려면 또 다시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기금을 조성하면 법인 설립에 따르는 절차 없이도 신속하게 보상을 집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상설기구와 상근인력 운영 등 보상 이외의 목적에 재원의 30%를 쓰는 것 보다는 고통을 겪은 분들께 가급적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회사는 “기금 운영방안과 사용처 등 세부 내용은 서둘러 구체화하겠다”고 말했다.
◆보상 대상은 조정위 방식 존중, 협력사도 포함=삼성전자는 “인과관계를 따져서 실시하는 보상이 아닌 만큼 대상 질병을 포함한 원칙과 기준은 가급적 조정위가 권고한 방식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특히 상주 협력사 퇴직자도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저희 회사 퇴직자들과 달리 협력사의 경우에는 근무이력 파악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또한 아무리 상주 협력사라고 해도 저희 회사 소속이 아닌 분들까지 포함하는 것은 현행 법체계와의 충돌 우려가 있어 고심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회적 부조라는 인도적 관점에서 상시 근무한 상주 협력사 퇴직자에 대해서도 저희 회사 퇴직자와 동일한 원칙과 기준을 적용해 보상하기로 했다”며 “이번 보상은 위로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인 만큼 당사자와 가족은 이와는 별도로 여전히 근로복지공단에재 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밝혔다.
보상 대상은 2011년 1월 1일 이전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와 LCD 생산 등 작업공정, 관련시설의 설치 정비 및 수리 업무를 1년 이상 수행하다가 1996년 이후 퇴직한 이들이다. 회사 측은 “권고안은 2011년 이전 입사자 모두를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렇게 할 경우 40년 전에 퇴사한 분들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다”며 “상주 협력사 소속인 경우에는 2011년 1월 1일 이전에 삼성전자 반도체와 LCD 생산라인에 배치돼 상주하며 작업공정, 관련 시설의 설치 정비 및 수리 업무를 1년 이상 상시 수행하다가 1996년 이후 퇴직했다면 대상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대상 질환도 조정위의 권고안을 대부분 수용했다. 조정위는 권고안에서 7개 병종과 5개 질병군 등 12개 항목을 보상 대상으로 제안했는데, 유산과 불임군을 제외한 11개 항목을 모두 대상으로 하겠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다만 “일부 개념이 불분명하거나 광범위한 질환이 섞여 있고, 환경적 요인보다 유전적 요인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경우도 있어 이들 일부 질병에 대해서는 외부 전문가의 판단을 구하겠다”며 “이 같은 보상 대상 질병 선정은 인과관계 여부와 무관한 ‘지원과 위로’의 관점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기존 산재보상제도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만 퇴직후 발병시기에 대해서는 “최대 10년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조정위는 잠복기가 최대 14년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을 근거로 ‘퇴직후 14년’을 대상에 포함하도록 권고했다”며 “그러나 잠복기는 최종 노출시점이 아니라 최초 노출시점부터 질병이 발현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며, 이 때문에 학술연구에서도 퇴직 시점이 아니라 취업시점으로부터 진단 시점까지를 잠복기로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잠복기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반드시 해당 근로자의 재직기간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며 “저희 회사 반도체 및 LCD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9년 이상임을 고려하면 이 질병들의 퇴직 후 발병시기 기준은 최대 10년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보상집행은 최대한 신속하게=앞서 가족대책위는 조정위 권고안에 대한 의견 발표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보상을 받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측은 “가족대책위의 이런 절박한 요구에 부응해 최대한 신속히 보상 절차가 진행되도록 하겠다”며 “별도의 보상위원회를 구성하고, 창구를 개설해 신청 접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올해 안에 대부분의 보상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계획이다.
보상금 산정은 권고안이 정한 바에 따르되 1군과 2군에 적용하도록 돼있는 미취업 보상과 위로금은 두 항목을 합쳐 2년간 평균임금(성과급 제외)의 70%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 계산할 경우 약 17년 근속 후 받는 퇴직금과 비슷한 규모에 해당한다. 삼성전자는 “보상금 산정은 기준에 따라 실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세부적인 사항들이 고려돼야 할 것”이라며 “특히 향후 치료비 계산은 예상 지출액의 추산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증빙자료를 구비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상위원회가 질병별 치료비 통계 등을 기초로 상세한 산정기준을 마련해 합리적이고 신속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적, 독립적 종합진단 실시=삼성전자는 향후 재발 방지 대책으로 외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종합진단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종합진단팀은 고용노동부가 위촉한 반도체 보건관리 모니터링위원회 위원 중에서 4~5명을 추천받고, 여기에 국내외 전문가 2~3명, 근로자 대표 1~2명을 더해 구성하겠다고 설명했다. 진단을 통해 문제점이 나타나면 진단기구가 제시하는 개선안을 신속히 실행하겠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이와 함께 ▲모든 화학제품에 대해 중대 유해물질 포함 여부 조사 및 발견시 제품 사용정지 ▲임직원건강지킴이센터 신설, 산재의심 질환 발생시 산재신청을 비롯한 종합적 지원 실시 ▲임직원 건강관리 전담인력 확대와 맞춤형 진단‧치료 제공 ▲노사 동수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지역주민지역언론 참여 화성‧용인 소통협의회 활동 ▲지역 환경단체와의 협의회 활동 등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사과에 대해서는 “조정위원회가 권고안을 통해 제시한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고, 근로자들의 건강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사과문을 작성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삼성전자는 당사자와 가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모든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며 “이제 신속한 집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인 만큼 삼성전자는 이 같이 약속한 모든 내용에 대해 즉각 실천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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