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잊지말아야할 자산....외환은행의 IT혁신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합병으로 출범한 KEB하나은행이 1일 그 역사적인 출발을 알렸다.
KEB하나은행은 자산규모 290조원으로 KB국민은행(282조 원), 우리은행(279조 원), 신한은행(260조 원)을 제치고 국내 자산 규모 1위 은행으로 거듭나게 됐다.
지점 수 945개, 직원 수 1만 5700여명에 달하는 KEB하나은행은 기존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IT통합이 완료되는 내년 6월이후에는 물리적으로도 완전한 원뱅크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 KEB하나은행은 메가뱅크에 걸맞는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선 IT통합에 온 IT역량을 집중시켜야하기 때문에 내년 6월이후의 IT일정을 얘기하는 것은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인천 청라신도시에 24만 7749㎡ 규모로 추진되는 하나금융타운내에 전산센터(7층 규모) 및 개발 센터(16층 규모)가 2016년 말 완공될 예정이고, 2017년부터는 하나금융그룹 전산개발요원 2000여명이 근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내년 6월 외환-하나은행 IT통합이 일정대로 완료된 이후, IT부문에서도 하나금융 그룹차원에서 상당한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KEB하나은행의 역동적인 출범은 한편으론 48년 역사의 외환은행이 퇴장하는 또 다른 역사의 종언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지만 외환은행이 우리나라 금융 IT역사의 발전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 같다.
◆국내 시중은행중 첫 다운사이징 결정 = 한-일 월드컵 열기로 뒤덮였던 2002년. 외환은행은 국내 은행권 차세대시스템 역사에 남을 혁신적인 결정을 내린다. IBM 메인프레임 환경을 탈피해 유닉스 기반의 차세대시스템 전환을 결정한 것이다.
당시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이 신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유닉스 환경을 채택하기도 했지만 당시 평일기준으로 500만~600만건, 최대 피크시에는 하루 1300만건까지 처리하는 시중은행인 외환은행으로서는 혁신적인 선택이었다.
외환은행 내부에선 ‘너무 모험 아니냐’는 반대의견도 적지 않았고 IT본부 내부에서 간부들이 투표까지 할 정도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5년2월, 마침내 2년여의 프로젝트 끝에 외환은행은 차세대시스템 환경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이미 가동한지 10년이 넘은 시스템이 됐지만 외환은행 IT 직원들이 갖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당시 IT본부에 근무했던 외환은행 관계자는“매우 힘든 결정이었지만 가장 보람있는 일을 꼽으라면 역시 다운사이징 차세대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은행의 다운사이징 성공은 금융IT 지형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온다. 일일 평균 거래량 규모가 1000만건이 넘는 신한은행, 농협 등 대형 은행들이 뒤이어 유닉스 기반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자신있게 결정하게 되는 롤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한편 외환은행은 PI(프로세스혁신)부문에 있어서도 국내 은행권에서는 가장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환은행은 당시만해도 차세대시스템 개발비와 맞먹는 400억원을 투입해 영업점 업무혁신 프로세스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2003년을 전후해 1, 2차에 걸쳐 전체 340여개에 달하는 영업점을 대상으로 PI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적용했다.
당시 ‘G2G’로 명명된 PI프로젝트를 통해 외환은행은 총 343개(여‧수신,외환) 업무프로세스를 165개로 단순화시킴으로써 업무효율성을 극대화시켰다. 은행 일선 창구에서 처리하고 있는 가계대출·기업여신·외환업무 등 복잡한 심사업무를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S) 및 이미지시스템,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해 서울 본점의 후선업무집중화센터로 넘기고, 창구직원들은 종합자산관리 등 고부가가치 마케팅에 주력하도록 했다.
PI시스템의 성공으로 외환은행은 당시 기준으로 매년 39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뒀다.1년만에 IT투자비를 뽑은 것이다.
◆글로벌뱅킹시스템, 컴플라이언스 선진화에도 높은 공헌 = 외환은행 IT부문이 가진 전통적인 강점은 외환은행이 가진 특유의 업무적 강점과 무관하지 않다.
태생자체가 한국은행 외환부로 출발했던 외환은행은 국책은행에서 시중은행로 전환된 이후에도 국외전산시스템(지금은 글로벌뱅킹시스템으로 표현)의 선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실은 외환업무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된 국내 은행권 전체가 누릴 수 있었다.
외환은행은 IMF사태로 은행권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지난 1999년9월, 국외전산시스템(KIBS)을 개발해 현재의 본점과 해외 법인(지점)의 통합시스템 체계를 최초로 구현했다. 특히 국외전산시스템을 하나로 표준화, 웹 환경으로 전환함으로써 실시간 자금흐름의 파악과 리스크관리가 가능해졌다. 이와함께 'SWIFT'(무역결제망)과 연계한 수준높은 글로벌 인터넷뱅킹서비스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그 이전까지 은행 해외법인들은 현지의 시장 환경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 제각각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한편 외환은행은 2006년 이후 국내 은행권 최초의 AML(자금세탁방지시스템) 구축 등 글로벌 ‘규제대응’에 발빠르게 대처함으로써 우리나라 금융산업 선진화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환은행은 2008년5월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AML시스템을 구축했다. 외환은행이 구축한 AML시스템은 고객 계좌 및 거래 정보를 포괄적으로 감시해 의심스러운 행동을 감독에게 경고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여주는 기능을 제공했다. 외환은행은 AML시스템을 해외지점에도 확대 적용함으로써 우리나라 은행들의 대외 신인도 제고에도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론스타에 매각이후, IT투자 암흑기… ‘만개하지 못한 장미’ = IT혁신의 DNA를 가지고 있었던 외환은행은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이후 IT투자의 암흑기를 맞게된다.
2003년말, 외환은행의 새주인으로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들어오면서 IT투자의 방향성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극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조직내 IT혁신의 기운도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
물론 2004년까지 차세대시스템 투자 등 굵직 굵직한 IT투자는 이미 론스타가 새주인이 되기전의 결정이었기때문에 정상적으로 집행됐지만 이후에는 대규모 IT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2007년 이후부터 론스타가 HSBC 등을 상대로 외환은행을 다시 매각하기 위한 협상을 수시로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대부분의 신규 IT투자는 동결되는 상황이 이어지게 된다. 매각협상이 진행중인 은행이 공격적인 IT투자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론스타로 주인이 바뀐이후, 다른 시중은행들이 한 해 평균 1500억원 남짓 IT예산을 편성할 때 외환은행의 투자는 수년동안 700억~800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구조적으로 IT혁신 프로젝트를 신규로 추진하기 위한 자본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당시 외환은행 IT관계자들이“그래도 숨쉴 정도의 예산은 나온다”고 자조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나마 당시 외환은행 경영진이 심혈을 기울인 IT부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름아닌 BCP(비즈니스연속성계획)이다. 제3의 IT업체가 운영하는 데이터센터를 임대해 DR(재해복구)센터를 이중, 삼중으로 강화하는 등 전산마비에 의한 비상상황에 대비한 것이다.
당시 은행측은 “해외 선진은행이 가장 강점을 두는 부분이 BCP”라고 강조했지만 실상은 은행 매각시 외환은행 노조가 전산시설을 불법(?) 점거하는 것에 대비한 의도가 더 컸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매각에 대비해 전산시설을 노조원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위한 차원에서 외부 IT업체에 미리 데이터센터를 매각하거나 IT아웃소싱을 타진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2000년대 초반 뉴브릿지캐피털이 대주주로 있었던 제일은행(이후 SC에 매각)이 그랬다.
물론 하나금융으로 매각이 확정된 2011년 이후에도 외환은행의 IT투자는 구조적으로 역동적일 수 없었다. IT부문은 통합 이슈가 비교적 일찍 제기된데다 대규모 IT투자는 두 은행 합병을 고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했는데, 주지하다시피 조기통합론은 번번히 외환은행 노조의 반대에 부딪혔다.
외환은행의 상징은 역설적이게도‘장미’다. 비록 만개하지는 못했지만 외환은행이 가진 IT혁신의 DNA를 되살릴 수 있다면 이는 우리 금융 IT발전에도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IT통합이후, KEB하나은행이 가장 중요하게 인식해야할 무형의 IT혁신 과제일지도 모른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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