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무저갱에 빠진 반올림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삼성전자 직업병 논란과 관련해 그동안 표면적으로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늘 말미에는 ‘반올림과 대화에 나서라’라는 주장을 빼놓지 않고 있다. 스스로 중심이 되어 사태를 이끌고 가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미 단체 존속을 위해 온갖 근거 없는 주장과 거짓말을 해온 그들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문제는 반올림의 이런 태도가 이미 초법적이라는 데 있다. 삼성전자는 10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면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아도 금전적인 보상을 실시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법률적 근거도 적용되지 않았다. 올해 1월에는 조정위원회(조정위)의 권고에 따라 ‘재해예방대책에 대한 조정합의 조항’에 최종적으로 합의까지 했다. 그럼에도 반올림은 사과와 보상은 해결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더구나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223명의 피해자는 여전히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고 의도적인 해코지는 물론 삼성전자에서 회유를 받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당연하지만 직업병 판단 여부는 삼성전자나 당사자 주장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공공기관이 판정할 문제이며 반올림이 주장하고 있는 각종 질병과 반도체 사업장의 인과관계 또한 그 어떤 것도 규명된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 업황은 악화일로를 겪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액정표시장치(LCD) 가격은 계속해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데다가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상반기까지 보릿고개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그 어느 때보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우리나라 5대 수출품, 국격을 높인 국가 전략산업이라고 대접받는 것과 달리 이면에는 대내외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스스로에게 부담을 지우면서까지 조정위 권고안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조정위에는 ‘벤젠이 검출됐다’는 왜곡된 사실을 외부로 흘린 백도명(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씨가 조정위원으로 있음에도 이런 결단을 내렸다. 앞으로 삼성전자는 3년 동안 사업장에 대한 외부 평가를 받게 된다. 사업을 하기에도 바쁜데 짐을 더 얹었다.
그러나 반올림은 반도체 산업을 ‘죽음의 산업’으로 몰고 가며 선전선동에만 신경이 팔려 있다. 산재신청을 도와 보상금을 받아주겠다고 나섰던 반올림이 직접적인 보상을 가로막으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던 피해자가 뭉쳐져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보상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그저 ‘싸우자’고만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사회적 해결’, ‘대화’와 같은 듣기 좋은 말만 반복하는 모양새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부분이다. 단체 존속을 위해 가족을 볼모로 협상을 벌여왔으니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재해예방대책이 해결된 이후 사과와 보상을 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들이밀 것이라는 예상 말이다. 이런 모습은 흡사 무저갱(無低坑)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떨어지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구덩이에 숨어있지 말고 이제는 진정한 목적을 수면 위로 꺼내시라. 차라리 그게 더 솔직해 보인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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