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경단녀’ 문제를 해결하려면

백지영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저는 원래 남편이 돈 벌고 여자는 내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였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커밍아웃’하겠습니다. 이번 백투워크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여성의 경력단절이 큰 사회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됐고 많은 것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많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SAP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 회사 형원준 대표가 한 고백(?)이다. 글로벌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업체인 SAP는 최근 색다른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보통 IT기업의 간담회는 신제품이나 전략 발표를 위한 자리가 대부분이지만, 이날 간담회는 특별했다.

바로 경력단절여성, 즉 출산, 육아 사유로 잠시 휴직을 했다가 다시 사회 복귀를 하지 못한 이른바 ‘경단녀’를 채용하는 프로그램(백투워크) 런칭을 발표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며, 이후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 국가 지사를 확대될 예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일반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대부분의 한국 여성은 결혼 및 출산과 함께 전혀 다른 두개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하나는 육아 및 가정생활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주부의 삶을 걷게 된 ‘경단녀’, 또 하나는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워킹맘’의 길을 걷다가 결국 ‘경단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자의 주위를 둘러봐도,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되는 시점에 ‘경단녀’로 들어서는 경우를 자주 봤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경력단절 여성수는 205만명에 달하며, 15세~45세 기혼여성 가운데 5명 중 한명은 육아 등으로 인해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는 ‘경단녀’가 된다.

임신과 출산은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여성 고유의 고귀한 역할이지만, 직장 여성들에게는 커리어 패스의 걸림돌이다. 출산 이후, 직장에 복귀한다고 해도 육아를 동시에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등 가족의 희생이 있거나, 우스갯 소리로 현대판 ‘오복(五福)’ 이라는 좋은 이모님(아이돌보미)이 없으면 직장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실제 여성의 경력단절은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30대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대한 그동안의 교육비용과 신규채용비용 등을 감안했을 때, 그 비용이 15조원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결국 출산 이후에도 ‘경단녀’가 되지 않고 ‘워킹맘’이 생활을 잘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직장 내 배려가 절대적이다.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 등의 제도가 있어도 회사에서 동료나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를 사용할 수 있는 문화, 늦은 밤까지 의무적으로 행해지는 저녁 회식을 점심으로 옮기는 등의 유연함 등 이들이 걱정 없이 업무역량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번 SAP의 ‘경단녀 복귀’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형원준 SAP코리아 대표도 “SAP코리아에서 채용할 수 있는 인원 규모는 사회 전체로 봤을 때는 미약하지만, 이를 계기로 여러 기업들이 동참했으면 한다”며 “특히 이를 위해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거나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는 SW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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