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표준’의 굴레

백지영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지난 3일 사상 최악의 인텔 CPU(중앙처리장치) 보안 스캔들이 터지면서 IT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CPU의 근본적인 기술 설계 결함을 악용해 해커가 사용자 암호 등 주요 데이터를 훔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멜트다운(붕괴)’과 ‘스펙터(유령)’라는 이름이 붙은 보안 취약점은 지난해 6월 구글 프로젝트 제로팀에 의해 발견됐다. 6개월 넘게 인텔 경영진이 이를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의 집단 소송 움직임이 시작됐다.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제품박람회(CES)에 기조연설자로 등장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아직까지 이 결함이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며 “여러 기업과 협업해 5년 이내에 판매된 제품은 1주일, 나머지 제품은 1월까지 업데이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텔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한동안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이슈로 가장 심각해진 곳은 인텔 x86 서버 프로세서(칩)을 표준으로 삼고 있는 기업IT담당자들과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들이다. 특히 CPU 내부에 있는 캐시 메모리에 임시 저장되는 정보 중 일부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멜트다운의 경우, SW패치 적용 시 컴퓨팅 성능이 최대 30%까지 저하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인텔 CPU는 x86 서버 프로세서 시장에서 99%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적인 추세다. 국내에서도 일부 공공기관, 금융권을 제외하고는 x86 서버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2016년 기준 국내 서버 시장에서 매출 기준으로 x86 서버는 전체 시장의 약 73%를 차지하고 있다.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 역시 마찬가지. 구글의 경우, 지난 몇 년 간 IBM 파워칩을 기반으로 한 자체 서버 구현도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이 인텔 x86 CPU 기반 서버를 표준 하드웨어로 구동하고 있다.

한때 벤더가 직접 제조한 칩과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한 메인프레임, 유닉스와 같은 서버 시스템이 시장을 지배해 왔다. IBM, 후지쯔, HP(HPE), 오라클(썬마이크로시스템즈) 같은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과거 메인프레임이나 유닉스 서버에서 x86으로 넘어올 때만 해도 안정성 등의 이슈가 컸다. 그러다 최근 몇 년 간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의 이슈로 맞물려 x86을 기반으로 한 리눅스 운영체제(OS) 등 오픈소스 SW의 발전에 따라 이같은 논쟁은 종식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 인텔 CPU ‘게이트’로 분위기가 또 다시 반전될지 주목된다. 사실상 IT트렌드에서 하드웨어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CPU에 보안 이슈가 생겼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고 있는 AMD, 혹은 모바일에서 서버 프로세서로 확대를 꾀하고 있는 ARM, ‘파워프로세서’를 내세우는 IBM, 인공지능(AI) 시대의 주인공 GPU 진영에 반사이익이 있을지 주목된다.

무엇보다 최근 차세대 시스템을 고민 중인 금융권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아마 메인프레임이나 유닉스 서버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내심 미소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IT업계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예상치 못한 이슈가 발생하면서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뒤흔든다. 이번 이슈는 과연 어디까지 갈까. 부디 별 탈 없이 무사히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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