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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뛰어든 '셀프뱅킹'…위기의 ATM 살려낼 수 있을까

박기록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KB국민은행(은행장 허인)이 지난 1일 본격 서비스에 들어간 셀프뱅킹서비스인 ‘스마트 텔러 머신(STM ; Smart Teller Machine)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은행권에서 기대만큼 탄력을 받지 못했던 셀프뱅킹(Self Banking)시스템이 과연 진화할 수 있는지의 여부, 또 디지털 브랜치(Digital Branch)와 같은 차별화된 무인점포로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와함께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ATM(현급자동입출금기)이 고기능 스마트 ATM’을 통해 극적으로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무엇보다 국내 은행권에서 점포수와 고객수가 가장 많은 국민은행이 마침내 셀프뱅킹시스템 투자에 나섰다는 점에서 일단 의미가 있어 보인다.

셀프뱅킹서비스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디지털 혁신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좀 더 넓게보면 은행의 점포 인력 감축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다만 현재로선 스마트 ATM이 은행 점포 인력 감축으로 당장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동안 은행권에서 선보인 스마트 ATM이 인력을 대체할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각 명칭만 다를 뿐, 현재 국내 은행권에선 고사양의 다기능 ‘스마트 ATM’에 기반한 셀프뱅킹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 신한은행이 국내 은행권 최초로 은행 직원의 도움없이도 87% 이상 은행 업무가 가능한 '디지털 키오스크'(Digital Kiosk)를 선보였다. 이후 부산은행, 우리은행, 대구은행 등이 차례로 스마트 ATM에 기반한 셀프뱅킹서비스를 선보이며 상용서비스에 들어갔다.

◆국민은행의 '스마트 ATM' 참여, 주목해야할 이유 = 국민은행이 이번에 선보인 STM도 앞선 은행들의 셀프뱅킹서비스와 유사하다. 신분증 스캔, 손바닥 정맥 바이오인증, 화상상담 등을 통해 영업점 창구에서 가능한 업무를 고객이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다기능, 고기능 ATM이다.

국민은행 채널지원부 홍순선 팀장은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경쟁 은행들 보다 국민은행은 내점 고객수가 월등히 많다”며 “이제는 주요 점포를 중심으로 STM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창구분산 효과를 STM의 1차적인 목표로 꼽고 있다.

홍 팀장은 “특히 체크카드 발급 업무 등은 앞으로 STM을 통해 손쉽게 대체가 가능할 것”이라며 “지난 6월부터 약 2개월간 시범 운영해본 결과, 기존 은행 창구에서 10분~15분 정도 걸리던 체크카드 발급이 STM에서는 5분 내외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국민은행측은 통장재발급, OTP가 필요한 업무 등도 STM을 통해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웬일인지 그동안 국민은행은 신한은행, 우리은행에 비해서는 스마트 ATM 기반의 셀프뱅킹시스템의 도입이 늦은 편이었다.

과거 윤종규 KB금융회장이 국민은행장을 맡았던 시절, 디지털금융을 매우 강조했지만 이 부분에선 매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여왔다. 국민은행이 7~8년전 '스마트 브랜치' 전략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것이 내부적으로 트라우마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든 국민은행이 스마트 ATM의 본격 적용에 나선 만큼, 농협은행 등 점포가 많은 여타 은행들도 이 부문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국내 은행권 전체적으로도 셀프뱅킹시스템 경쟁이 촉발될 수 있다.

물론 현재로선 이같은 예측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이미 고객들의 금융 거래 채널중 모바일뱅킹 비중이 워낙 높아진 상황이고 기존 ATM 사용률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셀프뱅킹시스템의 지속적인 확산이 있을 수는 있으나 고객의 입장에선 여전히 기존 ATM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보다 획기적인 서비스 차별화가 없다면 스마트ATM을 기반으로 한 셀프뱅킹시스템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민은행 뿐만 아니라 앞서 은행권에서 스마트 ATM기반의 셀프뱅킹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은행들은 ‘차별화된 서비스’를 추가로 마련해야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이와 관련 국민은행은 아직은 구상단계지만 현재의 STM을 향후 금융 상담까지 가능한 ‘디지털 브랜치’로 확대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실제로 앞서 모델을 선보인 신한은행, 부산은행의 경우 최초 셀프뱅킹시스템 모델을 선보인 이후 몇년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화된 모델을 선보였으며 명칭도 변경했다. 신한은행은 '스마트 라운지'로, 부산은행은 '디지털 뱅크(브랜치)'로 부른다.
신한은행의 셀프뱅킹시스템 '스마트 라운지'
신한은행의 셀프뱅킹시스템 '스마트 라운지'

부산은행은 올해 1월, 해운대 씨클라우드호텔에 스마트ATM과 태블릿PC를 기반으로 하는 미래형 디지털뱅크 해운대비치점을 열었다. 부산은행은 완전한 셀프뱅킹시스템 공간외에 최소한의 금융 상담 인력을 배치했다. 부산은행은 이 디지털뱅크를 운영을 통해, 기존 오프라인 점포를 상담인력을 최소화한 사실상의 무인점포로 전환시킬 수 있는지를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은행은 이 디지털뱅크에 설치된 스마트ATM은 ▲화상상담 카메라 ▲지정맥 등록기 ▲신분증 스캐너 ▲카드발급기 ▲통장발급기 등이 탑재돼 있다. 은행 창구에서만 가능했던 업무의 85% 이상을 고객이 직접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부산은행 미래형 디지털뱅크 해운대비치점
부산은행 미래형 디지털뱅크 해운대비치점

결국 국민은행의 STM처럼 일부 국내 은행들이 내놓고 있는 오프라인 기반의 셀프뱅킹서비스는 고객들의 눈높이를 어느정도 맞출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점포수와 고객수가 많은 국민은행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주목을 끌지 못했던 스마트 ATM기반의 셀프뱅킹서비스가 새로운 흥미거리로 등장하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스마트 ATM, 효성TNS가 공급… 퇴조하는 ATM, 새로운 생존 모델이 될 수 있을까 = 국민은행의 STM은 효성TNS (구 노틸러스효성)가 제작한 스마트 ATM을 적용한 것이다. 현재 금융 ATM을 제작하는 국내 ATM 3사중, 스마트 ATM을 시장에 내놓고 있는 업체는 효성TNS와 에이텍 2곳이다.

지금까지는 부산은행(에이텍)만 제외하고, 국민은행 등 나머지 은행들은 모두 효성TNS의 '스마트 ATM'을 채택했다.

부산은행은 지난 2016년 후반기부터 스마트 ATM에 기반한 셀프뱅킹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당시는 LG CNS가 금융자동화기(ATM) 사업부를 에이텍에 매각하기 전이다. LG CNS가 아닌 중견기업인 에이텍이 아직 충분한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스마트ATM 시장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따라서 국내의 협소한 스마트 ATM시장을 감안했을때, 효성TNS가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효성TNS가 '스마트 ATM' 시장에서 독주한다고 해도 아직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수익성과는 거리가 있다.

대략 3년전부터 지금까지 국내 은행권에 설치된 셀프뱅킹용 스마트 ATM을 다 합쳐봐야 130대 정도에 불과하다. 효성TNS가 제작하는 스마트 ATM의 대당 단가가 3000만~3500만원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물량을 다 합쳐봐야 겨우 30~40억원 수준이다.

의외로 복잡한 설계와 고도의 메카닉으로 구성된 금융 ATM 개발 비용을 고려한다면 지금 수준의 시장 규모는 효성TNS에게는 적자라고 봐야 한다.

판단 기준이 다르겠지만 시장규모가 연간 1000대 신규 수요, 약 300억원 규모가 돼야 R&D 등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는데 수요가 지금 수준에 머문다면 효성TNS는 규모의 경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악순환의 덫에 걸릴 수 있다.

국민은행은 8월중으로 30대를 설치하고, 운영 상황을 지켜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내년 100대 규모로 설치 대수를 늘릴 계획이다. 만약 국민은행이 기대한 대로 스마트 ATM에 대한 고객의 반응이 좋다면 이는 효성TNS에게도 긍정적인 시그널이 될 수 있다.

향후 2~3년내에 노틸러스효성이 만약 국내 스마트ATM 기반의 셀프뱅킹시스템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면, 그 이후부터는 시장 독점적 지위 확보와 함께 어느정도 이 사업에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연간 1000대 규모로 성장한다해도 복수의 사업자가 나눠먹을 시장 사이즈는 아니다.

국내 금융 ‘스마트 ATM’ 시장에선 기존 일반 ATM 시장과 같은 치열한 경쟁 구도로 인한 가격 인하 경쟁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그나마 효성TNS에게는 녹록치않은 현재를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위안거리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기존 일반 ATM은 기술이 표준화됐기 때문에 업체들 간의 경쟁으로 가격이 쉽게 내려갔지만 스마트 ATM은 독자적인 기술 구조이기 때문 경쟁 구도가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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