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영 칼럼

[취재수첩] 보조금 대란의 진짜 공범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스마트폰 신작이 나왔다. 관심이 쏟아진다. 판매자들은 눈치 게임 시작이다. 125만원짜리 제품이 0원으로 둔갑한다. 대놓고 불법보조금이다. 정작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정책이 안 좋다며 슬그머니 가격을 올리거나 아예 ‘먹튀’를 해버린다. 분노는 소비자 몫이다.

이것도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보조금 대란을 대하는 통신사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태도는 한결같다. 일단 선을 긋는다. ‘일부’ 판매점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소비자들만 ‘조심’하면 된다고 한다. 시장 판매자인 통신사도, 시장 관리자인 방통위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반복된다. 뫼비우스의 띠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노트10 역시 이 길을 피해 가지 못했다. 사전예약 기간부터 판매자가 불법보조금을 약속했다가 취소하고 잠적해버리는 사태가 줄을 이었다. 뜻하지 않게 예약 사은품조차 못 받게 된 사람들이 생겨나자 삼성전자는 예약 개통 기간을 이달 말로 연장하기도 했다.

통신사와 방통위는 이렇게 말한다. 소비자들도 불법임을 알고 산 것이니 구제할 길이 없다는 거다. 그들도 ‘공범’이란 얘기다. 냉정하게 보면 맞는 말이다. 통신사 공시지원금을 뛰어넘는 과도한 보조금은 명백히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을 위반한다. 불법 행위로 비롯된 피해를 보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말 그뿐일까. 누구나 볼 수 있는 휴대폰 구매 커뮤니티들에 이른바 ‘빵집폰(0원폰)’을 파는 ‘성지’들이 우후죽순 올라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보조금을 받고 어떤 사람은 제값에 산다고 하면 후자만 ‘호갱’이 되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내릴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 무엇일까.

어쩌면 보조금 대란의 진짜 공범은 통신사와 방통위다. 매년 공짜 대란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걸 사람들은 알고 있다. 반복은 곧 상식이 된다. 시장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늘어나는 것은 기업과 정부에도 좋지 않은 일이다. 대놓고 불법이 벌어지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기꺼이 불법의 공범이 될 것이다.

요즘 들어 통신사들은 5G 시대를 맞아 보조금 대신 서비스 경쟁을 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방통위도 불법 실태조사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 적어도 예전보단 시장 과열을 막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부디 말뿐인 책임이 되지 않길 바란다.

<권하영 기자>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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