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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인터넷은행’ 규제… ICT업계 “이러다 핀테크 후진국 전락” 위기감

박기록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정치권의 과도한 규제 일변도 행보에 ICT업계의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5일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개정안(이하 인터넷은행 특례법)은 천신만고끝에 여야합의를 거쳐 국회 정무위를 통과했지만 지난 29일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를 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국내 1호 인터넷은행인 케이(K)뱅크는 대주주 자격획득을 위한 심사 절차가 또 다시 무산 위기에 놓였다.

만약 게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했을 경우, KT의 케이뱅크 대주주 자격 획득과 함께 1조원 규모의 자본 확충, 대출(여신)영업 정상화, 각종 혁신적인 핀테크 금융서비스 개발에 나설 계획이었던 케이뱅크의 장밋빛 선순환 시나리오도 현재로선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구나 20대 국회의 일정도 얼마남지 않았고 해결해야 할 정치적 쟁점 법안도 어느때 보다 많은 상황이어서 인터넷은행 규제 해소와 관련한 ICT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국회가 시장을 너무 모른다” 답답한 ICT업계

이번 ‘인터넷은행 특례법’개정안은 대주주 자격심사에 필요한 요건중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부문은 제외시켜주자는 것이 골자다.

전통적으로 ‘규제의 밭’으로 불리는 금융산업에 ICT기업이 참여할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과 같은 다양한 규제 리스크에 상시적으로 노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위반은 별도의 벌칙으로 처리하되, ‘대주주 자격심사 제한’과 같은 인터넷은행의 경영에 막대한 타격을 주는 요건은 완화시켜주자는 게 이번 특례법의 취지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는 이러한 특례법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존 ‘은행법’의 경직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산업자본의 금융시장 지배를 철저하게 차단하기위해 만든 기존 ‘은행법’의 엄격함을 ‘인터넷전문은행’에 그대로 적용하다보니 시장 친화적인 규제 완화마저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네이버, 카카오, 넥슨, 넷마블, 인터파크 등 국내 주요 ICT기업들도 최근 몇 년간 비즈니스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사례가 몇차례 지적됐고 그에 따른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있다.

이와관련 ICT업계 전문가들은 “사업 영역이 매우 다양하고 공정거래법의 규제영역도 아주 넓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리스크도 당연히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시장의 특성을 정치권이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으론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음모론도 나온다.

기존 은행권에 대해서는 ‘규제 샌드박스’, ‘비조치 의견서’ 등 다양한 규제완화 조치를 통해 금융혁신서비스에 나서도록 지원하면서 정작 인터넷은행에는 경직된 법적용을 하는 것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

“이는 결과적으로 국회가 인터넷은행들의 시장 참여가 못마땅한 기존 은행권의 이익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기때문 아니냐”는 비판이다.

실제로 현재 국내 5대 시중 은행이 은행 시장 전체의 약 65%를 독과점하고 있다. 이들이 인터넷은행에 시장을 순순히 열어줄 가능성이 없고, 어떤 형태로든 지속적인 견제에 나설 것이란 분석인데, 이번 개정안의 국회 법사위 통과 불발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핀테크 후진국 전락위기” 업계 우려

법사위에서 특례법 개정안이 막히자 ICT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이러다가 자칫 아시아권에서도 한국이 핀테크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이는 엄살이 아니다.

외신 등에 따르면, 글로벌 핀테크 강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은 ‘마이 뱅크(My Bank)’를 비롯해 4개의 인터넷은행이 규모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가고 있다.

또 일본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각각 특화된 영역에서 10개가 넘는 인터넷은행이 자리를 잡고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내년에는 일본 라인파이낸셜(51%)과 미즈호 은행(49%)이 합작한 라인뱅크가 공식 오픈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월에는 대만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대만 라인뱅크’ 인가를 받았다.

지금은 인권법안 때문에 내홍을 겪고 있지만 홍콩도 2020년에만 8개 인터넷은행 인가가 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신남방 주요 국가들도 최근 2~3년간 인터넷은행 투자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아시아국가들이 거세게 인터넷은행을 매개로 한 핀테크 산업 역량을 급속히 키워나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행보는 답답하다.

ICT업계는 올해 제3호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켜 더욱 ICT기반의 금융서비스 혁신이 촉발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에 걸린 규제조차 속시원하게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은행 활성화, 결국 ICT산업 경쟁력 강력하게 견인” 공감대 절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인터넷은행’은 단순히 ICT기업이 은행 경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데 그 의미가 그치지 않는다.

혁신적인 ICT 기술을 집약해 비대면채널로 운영되는 인터넷은행은 그 자체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네트워크, 보안 등 IT 기술을 동반 성장시킨다. 여기에 핀테크 산업의 확산에도 긍정적이고, 이는 정부가 강조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까지 선순환을 이끌어 낼 수 있다. ICT산업 전반을 활성화하는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또한 다양한 기술을 융합한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는 국내는 물론 신남방 국가 등 해외 수출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세계경제성장율 평균을 웃돌고 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신남방 국가들에서는 지난 몇 년새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한국의 ‘모바일 금융플랫폼’과 다양한 핀테크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국내에서 검증되고 구현된 다양한 핀테크 기술을 현지에 선보였지만 이러한 선점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건전한 인터넷은행’을 운용하기위한 정책 취지도 중요하지만 ICT산업 활성화도 동시에 고려하는 유연한 시장 친화적 정책을 ICT업계는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마지막 남은 국회 일정에서의 반전 여부가 주목된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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