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실효성 없어 폐지 앞둔 ‘요금인가제’ 막판 진통…시민단체 ‘반발’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통신업계 대표적인 사전규제인 ‘요금인가제’를 폐지하는 법률이 20대 국회에서 통과됐으나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잡음이 예상된다.

통신사업자들은 요금인가제가 오히려 자유로운 요금 경쟁을 저해하는 지나친 규제로 작용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 역시 현행 인가제의 실효성이 낮다고 판단, 신고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2016년 직접 발의한 이래 줄곧 폐지를 추진해왔다.

11일 주요 시민단체 7곳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요금인가제 폐지를 포함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철회를 촉구했다. 회견 직후에는 개정안의 최종통과 열쇠를 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민생경제연구소·사단법인 오픈넷·소비자시민모임·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한국소비자연맹이 의견을 같이한다.

이들 단체는 “요금인가제 폐지가 포함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사실상 통신요금인상법이나 마찬가지”라며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이동통신 서비스의 공공성을 폐기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금인가제 폐지가 곧 통신사들의 요금 인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요금인가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신규 요금제를 출시할 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약관 내용을 제출하고 사전 인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무선의 경우 SK텔레콤, 유선의 경우 KT가 해당된다. 시장 1위 사업자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사실상 경쟁을 무력화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지난 1991년 도입됐다.

문제의 개정안은 현행 인가제를 폐지하는 대신 ‘유보신고제’를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신고제로 전환하되 15일간 정부 심사 기간을 둬 신고를 유보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경쟁 저해요인이 발견되면 정부가 약관을 반려시킬 수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는 지난 6일 법안심사 소위에서 이러한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요금인가제 실효성 없다…담합 논란만”=그동안 요금인가제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은 계속돼왔다. 과반 지배력을 가진 사업자 없이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진 환경과 동떨어진 규제라는 얘기다. 최근 통신3사의 무선 점유율은 4대2.5대2 수준으로, 시장 지배적 사업자 SK텔레콤의 점유율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여기에 수십 개 알뜰폰 업체도 경쟁하는 현 상황에서는 인가제가 오히려 요금 경쟁을 가로막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오히려 담합 논란만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통상 통신사 요금제의 경우 1위 사업자가 먼저 요금제 인가를 받고 나면 경쟁사들이 추이를 지켜본 후 움직임에 나섰다. 인가제를 통과한 요금 설계가 일종의 시장 기준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인가제가 오히려 비슷한 요금을 만들어내는 담합을 유도한다는 분석도 적잖이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인가제 폐지로 사업자 간 경쟁 촉발을 기대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통신사들이 요금이든 데이터든 시장 변화에 따라 자율적으로 경쟁하도록 하자는 것”이라면서 “또한, 완전한 신고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유보 기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경쟁 상황에 따라 이용자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신업계는 인가제 폐지로 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강조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그동안 KT와 LG유플러스의 경우 쭉 요금 인가 대상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요금을 인상한 적은 없다”면서 “유보신고제라고 해도 요금제 절차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 권한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통신사 과점 체제부터 해소해야”=시민단체들은 그러나 정부와 국회의 인가제 폐지 결정을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기본료 폐지, 보편요금제, 단말기 분리공시 등으로 통신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해달라는 것인데 (인가제 폐지)는 굉장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연대 본부장은 “인가제 대상인 SK텔레콤도 요금을 인하할 경우엔 얼마든지 신고를 진행할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통신사들이 매출 감소를 피하기 위해 요금 경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사위가 국민들 통신비 인하에 위배되는 인가제 폐지에 제동 걸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언급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인가제 폐지로 인해 통신사들이 고액 요금제에만 혜택을 집중하면 사실상 요금 인상 효과와 이용자 차별이 우려된다”면서 “정부와 국회가 통신시장 경쟁을 유도하려면 인가제 폐지보다 통신사 과점 체제 해소부터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하영 기자>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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