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영 칼럼

[취재수첩] 30년 된 요금인가제, 이제 떠나보낼 때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통신업계 대표적인 사전규제인 ‘요금인가제’가 폐지를 눈앞에 뒀지만 잡음이 여전하다.

요금인가제는 말 그대로 통신사가 신규 요금제를 출시할 때 미리 정부 허가를 받는 제도다.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는 지배적 사업자라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요금 약관을 제출하고 사전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동전화는 SK텔레콤, 시내전화는 KT가 지배적 사업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지난 6일 요금인가제 폐지가 포함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확히 말하면 인가제를 폐지하는 대신 ‘유보신고제’를 도입했다. 인가 대신 신고만 하되 보름 동안 정부 심사를 받게 하는 식으로 유보 기간을 둔 것이다.

개정안 통과의 마지막 열쇠를 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크게 문제 삼지 않는 한 요금인가제는 곧 막을 내리게 된다. 일부 시민단체는 그러나 인가제 폐지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인가제가 사라지면 통신사들이 마음대로 요금을 인상할 것이란 게 주된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인가제는 오히려 통신사들의 자유로운 요금 경쟁을 가로막는 규제다. 되레 정부가 나서 요금 하한선만 만들었다는 비판이 많다. 예컨대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새 요금제를 인가받으면 KT와 LG유플러스가 거의 같은 가격으로 요금을 내는 게 관행이 됐다. 정부가 허락한 요금제가 일종의 시장 기준이 된 셈이다.

둘째로, 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낡은 규제다. 요금인가제가 처음 도입된 때가 1991년이다. 지난 30년간 정부가 조금씩 손을 보긴 했으나 이미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원래 인가제는 지배적 사업자의 약탈로부터 후발 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1위 통신사가 지나치게 낮은 요금으로 경쟁사들을 도태시키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SK텔레콤이 과반 이상의 지배력을 가졌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했다. 그런데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효력을 다했다. 1위 SK텔레콤은 점유율이 40% 초반대로 떨어졌고, 3위 LG유플러스는 한때 30% 점유율까지 노렸다. 여기에 40여개 알뜰폰 시장도 활발하다. 이런 상황에 인가제는 이미 수명을 다한 유명무실 제도나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인가제가 폐지된다 해도 통신사들이 요금을 마구 인상할 것이란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 이번 개정안은 완전한 신고제가 아닌 유보신고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절차를 간소화해 요금 경쟁을 촉발하면서도, 만에 하나를 대비한 정부의 규제 권한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인가제 폐지를 원해온 통신사들이 마냥 웃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용자들이 원하는 것은 통신사들의 자유로운 요금 경쟁, 이로 인해 가계통신비가 줄고 보다 다양한 서비스와 혜택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경쟁은 규제 완화 없이 결코 이뤄낼 수 없다.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요금인가제가 무려 30년의 역사를 끝으로 폐지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해묵은 요금인가제 논쟁을 끝낼 때다.

<권하영 기자>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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