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글로벌CP 역차별 해소법’, 그날의 기록

최민지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 역차별 해소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가 본회의 개최에 합의한 만큼, 20대 국회는 오는 20일 오전 법제사법위원회를 열고 오후 본회의를 거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비롯한 주요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 개정안이 최종 통과되면, 구글 유튜브‧넷플릭스 등 해외CP도 이용자 보호를 위해 망 안정성을 갖춰야 하며 국내대리인을 지정해야 한다.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고 있는 글로벌CP에게도 망에 대한 책임을 부여해, 국내CP와의 역차별을 막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는 망 사용료 협상 과정에서 글로벌CP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치다.

그런데 인터넷업계에서는 망 품질 유지는 통신사 의무인데, 왜 국내 IT기업에 족쇄를 채우냐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어 이 개정안을 비롯해 인터넷규제법안 등을 다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를 향해 쟁점법안 졸속처리를 자행했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지난 6일 과방위 법안소위 회의록을 통해 글로벌CP 역차별 해소법과 관련해 국회 논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봤다. 참고로 7일 과방위 전체회의에서는 n번방 방지법 등 주요 현안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진 만큼, 이번 개정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법안소위 기록을 참조했다.

◆글로벌CP 대상 국내 서버 설치 의무화, 제외된 이유는?=이날 법안소위에서는 글로벌CP 규제와 관련해 ▲국내 서버 설치 의무 ▲망품질 유지 ▲국내 대리인지정 제도 ▲차별적 조건 및 부당한 협정 거부 행위 등에 대한 금지행위 추가 ▲통신망 실태조사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들을 심사했다.

해외 사업자라도 국내에 서버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게 되면 이용자에게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망 사용료 협상에서 국내 통신사 협상력이 강화될 수 있다. 반면, 서버 설치 의무화가 고정사업장을 강제하는 것으로 해석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 개정안을 발의한 변재일 의원은 “클라우드 환경에서 한국인과 대한민국 데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영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대한민국 내 서버를 설치하도록 하면서, 데이터 주권 문제에도 향후 대응할 수 있다”며 “(글로벌CP가) 한국 인터넷제공사업자(ISP)에게 캐시서버 설치를 강압‧강제하는데, 이용자와 사업자 불편에 적극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서버 설치 의무화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송희경 의원(미래한국당)은 법안 취지에는 동감하나, 이는 사전규제에 해당할뿐 아니라 기술적으로 현실적이지 않다며 반대했다.

송 의원은 “서버를 고정시키는 행위는 트렌드에 반하고 기술적으로 현실성이 굉장히 없다. 글로벌 교차 무역 등의 의미를 따져 보면 다른 나라에서 그런 사전규제를 한국기업에 적용할 수 있다”며 “클라우드는 논리적으로 섞이기 때문에 데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서버도 가상화돼 있다. 원인을 제공하는 데이터 위치를 기술에 의해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FTA와 국제거래와 관련돼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서버 설치 때 이를 관리하는 인력과 조직설립이 필요하기에, 사무실 설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채택한 것이다. 이는 FTA ‘현지주재 의무 부과 금지’ 규정 위배에 속할 수 있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동일한 규정 같지만 외국 사업자 경우에 불리하게 경쟁조건을 바꾸는 걸로 인식이 돼 통상마찰 우려가 있다”며 “그럴 경우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더 해악을 미칠 수 있어 정부에서는 신중하게 접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CP 망 품질 의무 놓고 갑론을박…“인기협, 국내외 대기업 의견만 반영” 지적도=이와 함께 CP에 망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할 것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기존에 인터넷품질은 ISP가 부담하고 있었는데 CP에게도 이러한 의무를 주는 것이 적절한지, 해외사업자에 현실적인 법 집행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 등을 다뤘다.

이날 송 의원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게 도로까지 닦으라고 한다”며 “CP는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인데, 품질 의무까지 다 지키라고 하는 것”이라며 CP측 의견에 손을 들었다. 이원욱 의원(더불어민주당)도 “글로벌CP는 규제하지 못하면서, 국내 인터넷사업자만 규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인기협, 인터넷 사업자들과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박선숙 의원(민생당)은 “인기협은 소위 법안에 건건이 다 반대했다. 이들 반대를 무릅쓰고 글로벌CP 규제를 논의하는 이유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동일 규제로 가자는 것”이라며 “과방위가 새로운 수정안을 냄에도 불구하고 인기협이 반대한다면, 인기협은 국내외 주요 대기업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견에 대해 대표성이 있다고 국회가 받아들여야 할 지는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2018년 이용자 보호 관련 국내대리인 지정제도를 입법화하고, 2019년에 역외 규정을 도입했다. 국내에서 실제로 사업을 하고 수익을 거두고 있는 모든 사업자는 국내법을 준수한다는 원칙적인 큰 골격을 세웠다”며 “오늘 논점은, 한 발 더 진전한 품질관리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논의는 ISP와 CP 간 망 사용료 논란으로도 확대됐다. ISP가 망을 고도화해도 CP만 수익을 챙기는 현재 구조에서는 한국 5G망은 글로벌CP 테스트베드로 전락하고, 통신사 망 투자 요인까지 잃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변재일 의원은 “넷플릭스는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내지 않고 있다. 캐시서버를 놓고 국내 ISP를 이간질까지 하는 상태”라며 “LTE 트래픽 67.5%를 유튜브, 페이스북이 다 쓰고 있는데 5G망에서도 글로벌CP들이 80%가량 점유하고 있다. 이 경우, 나머지 5G망을 사용하는 다른 이용자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고 역설했다.

또 “5G망을 통신사가 조기 구축했을 때 통신사가 얻는 이득이 무엇이냐. 5G 구축해서 글로벌CP 장사만 잘 되게 만들고 있다”며 “통신사는 투자 명분을 잃어버릴 수 있다. 망이 고도화된 한국이 글로벌CP의 테스트베드가 되는 상황인 만큼, 좀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매출액 공개 안하는 글로벌CP, ‘트래픽 양’으로 기준 정해야=치열한 논쟁 끝에 과방위 법안소위 여야 위원들과 정부는 합의점을 도출하기 시작했다. 서버 설치 의무화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고, 망 품질 의무의 경우 서비스 안정성 확보로 용어를 수정하기로 했다.

특히, 대상 기업 기준에 대해서는 매출액 대신 이용자 수와 트래픽 양을 고려하기로 했다. 국회에서 수차례 요청했음에도 글로벌CP들은 국내 매출액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장석영 차관은 “통상문제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서비스 안정성 확보 등에 필요한 조치를 규정하도록 하되, 이용자 불만 처리‧보호업무 관련 자료제출을 위한 국내 대리인을 두는 규정으로 수정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이 법안을 채택하려면 유민봉 의원(미래통합당)이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장 소프트(Soft)하다”며 “국내외 사업자가 역차별 없이, ISP와 CP가 동등한 품질 의무를 가지도록 정부과 관리할 수 있도록 이에 합의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유민봉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중심으로 글로벌CP 역차별 해소법은 여야 합의를 이루게 됐다. 회의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방적인 CP 또는 ISP 편들기를 통한 졸속 처리는 없었다. 이날 회의록은 국회 과방위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됐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최민지
cmj@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