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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통신사 ‘28㎓ 동상이몽’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28㎓ 5G 장비 구축 이행률 0.3%”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지표다. 통신3사가 연내 구축을 완료해야 하는 28㎓ 5G 기지국의 설치 이행률은 현재까지 0.3%에 그친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 남은 시점에서 사실상 의무 구축 이행은 ‘불가능’한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그러나 이 불가능한 숙제를 계속 붙잡고 있다. 여전히 통신사들이 계획대로 장비 구축을 마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작 통신사들은 비관적이다. 28㎓ 대신 3.5㎓ 대역 투자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부가 더 늦기 전에 전향적인 정책 전환을 결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가 통신3사에 부여한 28㎓ 기지국 장비 의무 설치 수는 올해 연말까지 4만5000대다. 하지만 8월 말 실제 설치 수는 161대에 불과하다.

의무 구축이 더디게 된 데는 코로나19 등 상황적 요인도 있지만, 애초에 과기정통부가 세계 최초 5G 출시를 목표로 무리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와 같은 초고주파 대역은 장애물을 뚫거나 피해갈 수 있는 회절성이 약해, 중대역보다 훨씬 촘촘이 기지국을 깔아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 부담도 크다. 통신사들이 5G 서비스 초기 3.5㎓ 전국망 구축에 집중해온 이유다. 실제 3.5㎓의 경우 5년 내 목표가 조기 달성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 통신사들이 28㎓ 장비 의무구축을 달성하지 못하면, 과기정통부는 전파법에 따라 주파수 할당 취소를 해야 한다. 통신사가 주파수 사용료로 낸 할당대가 6223억원은 반환되지 않는다. 주파수 할당대가는 결국 이용자 요금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통신사는 애먼 돈을 날려 이용자 피해로 이어지는 셈이다.

다만 전파법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장관은 1회에 한해 주파수 할당 취소 대신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주파수 할당공고에 따르면 통신3사가 적어도 할당 조건의 10%에 해당하는 기지국을 구축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에 따르면 통신사별로 최소 1500대씩은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이마저 달성은 어려워 보인다.

통신업계에서는 28㎓ 의무 구축 대신 3.5㎓ 전국망 투자를 확대하는 안을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연말까지 통신3사의 구축 이행 현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아직 연말까지 시간이 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어떤 정책적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1일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에서 “28㎓ 무선국 설치 수준이 많이 못 미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앞으로 통신사들을 계속 독려해 약속된 무선국을 다 설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통신사들의 이행 미달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과기정통부가 ‘눈 가리고 아웅’식 대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잖다. 국회에서는 통신사들에게 유예 기간을 주거나, 지금이라도 28㎓ 주파수 활용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상 국회가 ‘퇴로’를 열어준 셈이지만, 과기정통부는 오히려 선을 긋는 상황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과기정통부는 28㎓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과 부담을 안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정책 실패’가 아닌 ‘정책 전환’이라고 봐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현실에 맞는 정책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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