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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발자국] PC는 언제 처음 국내에 들어왔을까?

백승은

그동안 다양한 전자제품이 우리 곁에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을 반복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던 기기가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데일리>는 그 이유를 격주 금요일마다 전달하려고 합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컴퓨터가 계산기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컴퓨터의 시초는 고대 중국의 주판입니다.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하는 용도죠. 기계식·수동식 계산기를 거쳐 컴퓨터는 진공관→트랜지스터→집적회로→초고밀도 집적회로로 고도화됐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식 컴퓨터의 기원은 1946년 ‘에니악’인데요. 에니악에는 1만8000여개의 진공관이 사용됐습니다. 높이는 5.5미터(m)에 무게는 무려 30톤이었죠. 전쟁 시 군대에서 포탄 탄도를 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전쟁 이후에는 우주선 연구나 일기예보 등에도 사용됐습니다.



그렇다면 국내에는 언제 처음 컴퓨터가 도입됐을까요? 에니악이 만들어진 지 21년이 지난 1967년입니다. 그해 4월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 IBM의 트랜지스터 컴퓨터 ‘IBM 1401’이 도입됐죠. IBM 1401이 도입되던 날에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참석할 정도로 큰 행사가 개최됐다고 알려집니다.

IBM 1401은 4월에 들여왔지만 가동한 건 그해 6월부터입니다. 설치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기 때문이죠.

IBM 1401은 초당 6만 글자를 읽어낼 수 있었는데요. 그렇지만 기억용량은 16킬로바이트(KB)였습니다. 지금 제품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조사통계국은 인구조사를 진행하고 통계를 내는 목적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자세하게는 천공카드시스템(PCS)의 계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는데요. IBM 1401이 도입되기 전에는 통계 자료를 수동으로 집계하는 수준이었죠.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업무 전산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IBM 1401을 들어온 뒤 한 달 뒤에 한국생산성본부에 ‘파콤 222’가 들어옵니다. 파콤 222를 통해 본격적인 전자정보 처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는데요.

파콤 222는 IBM 1401과 같은 트랜지스터 컴퓨터였디만 성능은 더 좋았습니다. 초당 100만자를 읽어낼 수 있었고 기억용량은 18KB였죠. 무게만 35톤에 달했는데요. 운송 시 200명의 인력이 5대의 트럭에 나눠 운반했다고 알려집니다.



이처럼 정부와 민간에 컴퓨터가 도입된 건 1967년이지만 그 이전에도 국산 컴퓨터 1호가 있습니다. 1962년 한양대학교 이만영 박사가 제작한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1호기’인데요. 현재 1호기와 2호기는 화재로 소실됐고 3호기만 남아 있습니다.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1호는 진공관식 컴퓨터입니다. 조립에 활용된 진공관은 610여개였는데요. 선형 및 편미분방정식을 계산하는 데 주로 이용됐다고 합니다. 디지털 컴퓨터가 도입되기 전인 1960년대에 제어공학 분야 연구에 큰 기여를 했다고 알려집니다. 다만 이 제품은 상업화나 양산화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1호부터 IBM 1401과 파콤 222까지 다양한 변화를 거쳤는데요. 현재 컴퓨터는 모두가 알다시피 계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뗄 수 없는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죠. 수많은 변화를 거친 컴퓨터에게 잠시나마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백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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