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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오징어게임은 한국 드라마가 아니다?

강소현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대부(The Godfather)'는 미국의 대표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내에서도 똑같다. 현지에선 "이 두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대부'일 정도다. 참고로 또 다른 하나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Mean Girls)'이다.

영화 '대부'는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마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피아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근간을 둔 범죄 조직이다. 이탈리아 문화에 대해 모른다면, 이 영화를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는 미국인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제작사가 만든 미국 영화다.

그럼 '오징어게임(Squid game)'은 어느 국가의 드라마일까. 한 제작사 관계자가 최근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가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둔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등 한국의 전통놀이를 그리고 있다. 국내 제작사인 싸이런픽처스가 제작을, 황동혁 감독이 연출·각본을 맡았다.

그렇다면 ‘파친코’는 어떤가. 한국계 미국인이 쓴 소설을 기반으로 미국 기업인 애플이 제작한 ‘파친코’는 한국 드라마라고 볼 수 있을까.

제작사 관계자가 이 질문을 기자에 던진 이유는, 우리가 ‘오징어게임’과 ‘파친코’의 성공에 함께 기뻐할 상황이 아님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이탈리아가 대부의 성공에 뿌듯해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 관계자는 오징어게임이 ‘국제’ 에미상이 아닌, 미국 방송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는 ‘프라임타임’ 에미상 후보에 오른 것이 이미 많은걸 설명한다고 말했다.

사실 오늘날 콘텐츠 제작과정에 여러 국가가 참여하며 ‘한국 영화’라는 기준이 모호해졌다. 그럼에도 콘텐츠에 대한 수익 분배 기준은 확실한데, IP를 가지고 있는 자다. IP는 콘텐츠에 대한 소유권을 의미하며, 이 IP를 가지고 있는 자가 추후 발생하는 수익을 독점한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오징어게임의 IP는 넷플릭스가 독점하고 있다. 제작비 일체를 넷플릭스가 책임지는 조건이었다. 이에 넷플릭스는 지난해 10월 기준 오징어게임으로 약 9억달러(한화로 약 1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며, 앞으로도 오징어게임에 따른 수익은 넷플릭스에게 돌아간다.

또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 IP를 활용한 인터렉티브 게임을 출시할 예정이며, 현실판 오징어게임도 주최한다. 이 가운데 오징어게임 연출과 제작에 참여한 한국이 오징어게임 IP를 활용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수백억원 규모의 제작비가 없어 몇 배 이상의 가치를 가진 IP를 넘길 수 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화두에 올랐다. 전혜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진행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넷플릭스의 제작 지원은 고맙지만 IP가 없으면 창작자들의 의욕이 많이 상실된다"며 넷플릭스의 IP 독점 행위를 지적했다.

하지만 제작사의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지난 한 해 영화제작사 1만2000여곳 중 10곳만이 흑자를 기록한 가운데 나머지는 큰 규모의 제작비를 마련할 여력이 없다. 특히 제작비의 약 80%가 인건비(내부인건비·아티스트출연료·외부인건비 포함)로, 능력있는 인재들은 해외로 속속 유출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선 이런 제작사의 상황을 고려해 2022년 세제개편안을 내놨지만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업계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이에 업계에선 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 국내와 달리, 해외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지원 제도를 두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전체 제작비 중 인정되는 지출의 20%(400만 유료 이상 제작비) 혹은 30%(400만 유로 미만 제작비)를 법인세에서 감면하는 동시에, 감면세액이 세액보다 많은 경우 차액을 현금으로 환급해주고 있다. 또 미국 오클라호마의 경우 주정부가 제작비 지출 내역의 35%을 현금으로 환급해주고 있다.

정부는 콘텐츠 산업이 가져다 주는 경제효과를 고려해 국내 제작사가 넷플릭스가 아닌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강소현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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