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국가 핵심기술 유출 위협 지속··· “적발해도 솜방망이 처벌”

이종현
-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유출 건수 총 97건
- 97건 중 국가 핵심기술은 32건, 유출로 인한 피해 규모 22조원
- 적발돼도 솜방망이 처벌

21일 진행된 2022 산업보안 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이정아 삼성SDS 그룹장
21일 진행된 2022 산업보안 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이정아 삼성SDS 그룹장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첨단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기술 경쟁은 산업의 관점을 넘어 국가 안보 영역까지 확장하는 중이다. 산업 기술은 기업의 경쟁력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요소가 됐다.”

21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산업보안한림원(이하 한림원),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와 함께 2022 산업보안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컨퍼런스 주제는 ‘경제안보의 시작과 끝, 산업보안’이다. 4개 세션으로 각 세션 기조발표 후 전문가 토론이 진행됐다. 테이머 아부알리(Tamer Aboualy) IBM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최근 보안 위협 동향 및 전략에 대한 특별 강연도 마련됐다.

오전 첫 발표자로 나선 것은 삼성SDS 이정아 그룹장이다. 그는 산업기술 유출이 미칠 수 있는 악영향과 실제 사례 등을 공유했다.

이 그룹장은 “산업기술은 기업의 경쟁력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요소다. 대한민국은 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고, 그 결과 세계수준의 산업 기술을 가진 나라가 됐다. 이런 산업 기술을 탈취하고자 하는 국가들의 주요 타깃이 되는 중”이라며 산업보안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이 그룹장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유출 건수는 총 97건이다. 이중 국가 핵심 기술에 속하는 기술의 경우 32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 규모는 22조원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표적인 기술 탈취 유형으로 인력에 의한 유출과 외국인 투자에 대한 기술 탈취를 꼽았다. 핵심 인력을 매수하거나 협력업체를 활용해 견본품을 우회 확보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유출하는 것과, 기업 투자를 통해 지배권을 확보해 기술만 빼간 뒤 부도 처리하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특히 문제점으로 꼽은 것은 기술 유출로 인해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에 비해 처벌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기술 유출 범죄는 일반 형사사건 대비 무죄율이 6배 높은 19.1%이며 2년 이상 징역형을 받는 경우는 2.2%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그룹장의 주장이다. 설령 징역형을 받더라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수치가 전체의 83%다.

이 그룹장은 “결과적으로 유죄 선고를 받는 10명 중 단 1명만 실형을 선고받는다. 실제 회사 자료를 사진 촬영해 보관하던 직원이 중국 업체와 접촉한 것을 적발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기술 자료의 중요성이나 회사 규정을 위반한 점, 중국 업체와 소통한 점 등 모두 입증됐지만 실제 피고인이 업무 숙지를 위해 촬영했다는 것이 인정돼 1심 무죄 판결이 됐다”며 “이런 사례로 볼 때 기술 유출 범죄의 경우 입증 요건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술 자료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도 무죄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유출된 자료를 수사기관이 선별하기에는 증거 누락의 가능성이 높고, 재판 과정에서도 실제 피해 기업이 기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이 그룹장의 설명이다.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는 데는 이 그룹장의 발표 이후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도 모두 공감대를 형성했다.

LG전자 윤병석 팀장은 “우리나라는 이제 글로벌 기술을 모방하는 단계를 지나쳐 리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우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법은 많이 강화돼 왔지만 기업에서 체감하는 수준은 낮은 편이다. 법 집행이 강화되는 반면 실제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기술 유출이 발생했을 때 처벌이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그룹장은 산업보안에 대한 현실적인 처벌을 위해 전문재판부 설치와 양형 기준 상향 등을 촉구했다.

이 그룹장은 각자위정(各自爲政)이라는 사자성어를 특히 강조했다. 전체의 조화와 협력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 그룹장은 “산업보안은 특정한 조직의 노력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정부와 기업, 국민 보두가 노력해야만 가능하다”며 각계각층에서의 산업보안에 대한 관심을 독려했다.

포스코 유은선 리더도 “경제 안보는 기술, 공급망, 환경, 자원 등 여러 영역과 관계가 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걸 꼽자면 기술 안보가 아닐까 싶다. 기업 입장에서는 막대한 투자를 해 개발한 기술이 유출되면 타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 심할 경우 기업의 존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국가 경제안보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며 협력을 강조했다.

한편 LG전자 윤병석 팀장은 이직을 막기 위한 기업의 고민도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실제 기술 유출의 경우 이직을 통해 많이 발생한다. 우수 인재가 이직하면 노하우나 관련 지식이 다 전수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직을 막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돈을 많이 주면 된다지만, 너무 단편적인 시각인 것 같다. 젊은이들은 돈 만큼이나 매력적인 기업 자체에 열광한다. 우리 기업도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건강해지고, 가치 있는 기업이 되면 이직이 줄고 현재 기업에서 오래 근무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종현
bell@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