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中으로 기술 줄줄 새는데…보호도 지원도 없는 韓 반도체

김도현

- 솜방망이 처벌에 ‘한탕족’ 우후죽순
- 방치된 반도체 업계…美·日·臺 깊어지는 밀월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중국 등이 명운을 걸고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데 한국 반도체 지원은 찌질한 수준이다.”

27일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현재 주요국에서는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반도체가 단순한 전자부품으로써 개념이 아니라 경제안보 핵심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이에 반도체 시장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대항전을 펼치는 무대로 변모했다.

◆끊이지 않는 K반도체 기술 유출…"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기술이 유출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26일 대전지검 특허범죄조사부는 “반도체 공정 소재사 A사와 B사, 반도체 제조사 C사의 화학기계연마(CMP) 기술 유출 사건을 수사한 결과 3개 회사의 CMP 공정·슬러리·패드 관련 내용이 유포된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참고로 A~C사는 코스피 또는 코스닥 상장사로 작지 않은 규모를 갖춘 곳들이다.

CMP는 반도체 공정 과정에서 형성된 웨이퍼 표면의 요철을 평탄화하는 작업이다. CMP 슬러리는 기계적 연마 역할을 하는 연마 입자와 화학적 연마를 담당하는 화학첨가제가 혼합된 용액(연마제)이다. CMP 패드는 웨이퍼와 폴리우레탄 소재로 만든다. 정리하면 CMP 패드 사이에 CMP 슬러리 넣고 회전시키는 방식으로 연마한다.

해당 제품들은 장기간 연구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것으로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될 정도로 중요도가 높다.

이번 사건은 A사에서 2018년 임원 승진에 탈락한 E씨가 2019년 6월 중국 D사와 CMP 분야 동업을 약속하면서 비롯됐다. 이 과정에서 E씨는 B사, C사의 연구원들을 포섭해 중국으로 이직시켰다. 이후 E씨는 2020년 1월까지 A사에서 근무하면서 중국 내 CMP 슬러리 사업을 관리했고 퇴사할 때까지 A사 자료를 유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해 5월부터는 D사 자회사 사장급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수사가 개시되자 E씨는 C사 출신 F씨를 통해 증거은닉을 시도했으나 검찰 압수수색으로 무산됐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E씨를 비롯한 3명을 구속기소하는 등 총 6명을 기소했다.

전 세계 CMP 슬러리와 CMP 패드 시장 규모 총합은 4조3000억원을 상회한다. 이중 국내는 1조500억원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관련 사태로 최소 수백억원 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달 16일에는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의 반도체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넘긴 일당이 기소된 바 있다. 세메스가 세계 최초 개발한 ‘초임계 반도체 세정장비’ 등에 대한 정보가 중국 기업으로 흘러 들어간 사례다. 세메스 출신 G씨 등은 1200억원에 달하는 이득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 이들은 지난해 5월 산업기술보호법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바 있다. 같은 해 7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받았으나 4개월 뒤인 11월 법원 보석 결정으로 석방됐다. 추후 추가 혐의가 나타나면서 재차 구속영장 청구 및 발부됐다. 1심 당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제기됐는데 그마저도 이행되지 않은 것이다.

작년 10월에는 반도체 기술 자료를 빼돌린 삼성전자, 삼성엔지니어링 등 전·현직 연구원과 협력사 임직원 10명이 기소된 적도 있었다. 삼성파운드리 사업부 소속 연구원 H씨와 삼성엔지니어링 연구원 I씨가 각각 인텔, 중국업체로 이직하기 위해 내부 자료를 유출한 사건이다. 동참한 일당 중 일부는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사례를 끄집어내면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다. 반도체 소재업체 대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기술이 새어나가고 있을 것”이라며 “제대로 된 처벌이 없으면 어렵게 얻은 반도체 지적재산을 지켜낼 수 없다”고 역설했다.

◆반도체 키운다더니 정쟁에 가로막힌 지원 정책

낮은 처벌 수위만큼이나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점도 문제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기조가 더욱 명확해진 미국은 천문학적인 인센티브를 내세워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공장 건설을 유치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 내 생산라인, 연구개발(R&D)센터 등을 구축하기로 했는데 절차 진행 속도, 지원 규모 등이 우리나라에서 투자하는 것보다 앞선다.

대만과 일본, 유럽연합(EU) 등도 마찬가지다. 최근 대만은 R&D와 첨단 공정에 투자할 경우 비용을 25%와 5% 감면해주는 내용이 담긴 ‘산업혁신 조례’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대만 TSMC가 자국 내 짓는 공장 설립하는 비용 절반 가까이를 지원하는 등 반도체 부활에 사활을 걸었다. EU 역시 인텔, TSMC 등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기업의 효율성은 글로벌 100대 반도체 기업 평균 67%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원은 “국내 업체들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R&D 및 시설투자와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일 수 있도록 경영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올해 초 정부에서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8%에서 15%,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2023년 한정으로 임시투자세액공제, 투자 증가분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 등을 제공하겠다는 방안도 포함했다.

해당 개정안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사법 절차가 선행돼야 하나 1월 임시국회는 사실상 개점 휴업으로 2주 넘도록 단 한 차례의 본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슈 등으로 2월 임시국회도 정상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정부가 내세운 2월 개정안 통과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야당의 경우 ‘재벌특혜’ 논리를 앞세워 세액공제 상향 범위 조정을 원하는 눈치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칩4’에 속한 미국, 일본, 대만은 협력 관계를 다져가고 있다. 대만은 TSMC를 연결고리로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TSMC는 미국에 이어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고 두 나라는 막대한 지원금으로 보답하는 모양새다.

일본은 도요타 등 대기업 8곳이 합작한 라피더스 밀어주기로 공세를 펼치고 있다. 라피더스는 일본 반도체 부활의 선봉장으로 꼽힌다. 미국 IBM 등 우군도 확보해나가고 있다. 소니, 덴소 등 일본 기업은 TSMC와 공동으로 생산라인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세 나라 간 교류가 점점 늘어나는 시점에 한국만 외톨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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