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아직도 KT를 한국통신으로 아는 이들에게
與 과방위, KT 차기대표 인선에 "이익카르텔" 질타
대통령실, KT 차기대표 선임에 "공정·투명한 거버넌스 필요"
지난 2일 여당과 대통령실에서 나온 뉴스 입니다. KT 대표 인선을 놓고 나온 뉴스인데요. 민간기업 KT CEO를 뽑는데 왜 정치권이 나선 것일까요.
KT는 지난달 28일 33명의 CEO 후보 중 4명의 숏리스트(압축후보군)를 발표했습니다.
사외 후보자 가운데선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사장) ▲임헌문 전 KT MASS총괄(사장), 사내 후보자 중에선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부문장(부사장) 등 총 4명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여당 및 정권에서는 KT 출신으로만 후보자들을 선정한 것이 마음에 안들었나 봅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체 지원자 33명 중 KT 출신 전 현직 임원 4명만 통과시켜 차기사장 인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버렸다"며 "대표 인선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여당의 발표 이후 대통령실은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입니다.
얼핏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닌데 왜 민간기업 CEO 결정과정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일까요. KT 대표를 뽑는데 KT 출신이 문제가 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그룹사들이 자사 출신 인재를 CEO로 뽑는데 말이죠. 그걸 문제삼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 KT CEO 연임은 무모한 짓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 KT 입장에선 낯선 광경이 아닙니다. CEO가 연임을 시도할 때마다 이같은 논란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민영화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권은 공기업 한국통신으로 인식하고 인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민영화 20년 역사 중 연임에 성공한 사례는 황창규 전 회장 밖에 없습니다.
초대 사장이었던 이용경 사장이나 구현모 대표는 연임을 시도했다가 중도 사퇴했고 남중수 사장이나 이석채 회장처럼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검찰조사 등으로 결국 불명예 퇴진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비리 등에 대해 검찰수사가 이뤄지고 결국은 압박에 못이겨 사퇴하는 수순입니다. 다른 그룹사처럼 오너가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정치권에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 자사 출신 뽑으면 이익카르텔?
이번엔 조용히 넘어가나 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국민의힘 과방위원들은 이번 4명의 대표이사후보에 대해 '그들만의 리그', '이익카르텔' 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KT 출신으로만 구성된 후보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포함돼야 하는 것일까요. 여당 국회의원 출신 후보나 친여권 또는 유력정치인과 친분이 있는 인사가 들어와야 한다는 것일까요?
정부 산하 기관장을 뽑는 것이 아닙니다. 낙하산 논란에도 불구 매번 그런 자리에 자기 사람들을 보내다보니 이제는 민간 기업에도 그럴 수 있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 KT 대표 자격조건은 경영능력·ICT 전문적 소양
KT가 내놓은 최고경영자(대표이사) 공개 경쟁 공고문입니다.
응모자격을 보면 이러합니다. 그런데 기업경영은 물론, 정보통신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일천하신 분들이 용감하게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후보자 중 한 분은 몇몇 대형 신문사에서 대놓고 '유력'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후보들의 경우 여당의 유력 정치인과 친하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자격조건에 충족하지 않는데 다른 큰 경험이 있다고 해서, 또는 권력자와 관계가 있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입니다. 대부분 자가발전으로 끝났지만 CEO를 뽑는데 정치권이 연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부 출신만 선정됐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사실 비 KT 인사 중 응모자격에 부합하는 인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심사기준을 문제삼지만 이는 예전부터 정관에 마련된 것입니다. 기업 대표를 뽑는만큼 기업경영 경험이 주요조건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CEO 선임절차 보다 투명하게
물론 국민의힘, 대통령실 문제제기가 다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공정, 투명한 거버넌스 중요합니다. 하지만 민간기업 CEO 선임에 정치권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내세웠던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의 모럴 해저드 우려는 KT 뿐 아니라 모든 대기업의 문제입니다. 우려하는 척 하며 친정권 인사를 앉히려는 시도가 이뤄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만 현재의 KT CEO 선출 방식은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기존 CEO 연임의사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적격심사가 이뤄지는 구조입니다. 현 대표가 연임 의지를 드러내고 노조가 호응하며 군불을 지핍니다. 사외이사 역시 현 CEO에 우호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현직 CEO의 어드밴티지가 너무 큽니다.
스스로 연임 걸림돌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투명하지 못한 프로세스는 정치권의 개입 빌미를 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논란거리를 주지 않았다면 국민연금의 제동도 없었을 것입니다. 차기 CEO는 누가 되든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CEO 선임절차를 보다 투명하게 개선했으면 좋겠습니다.
KT CEO는 본사 2만1000명, 그룹사 49개사 3만7000명. 도합 5만8000여명에 달하는 거대 그룹사를 이끄는 자리입니다. 국민기업 명성에 어울리는 CEO를 뽑을 수 있도록 정치권은 지금부터 숨죽이고 지켜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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