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피온 vs 리벨리온' 韓 AI 반도체 자존심 대결…승자는? [소부장박대리]

김도현

전세계적으로 반도체와 전기차 분야의 산업적 가치가 중요해졌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디지털데일리>는 소부장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동향과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소부장박대리'(배터리)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소부장 산업계의 보이지않는 소식들까지도 충실히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 대기업도 참전…SKT·TSMC vs KT·삼성전자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챗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로 뜨겁게 달아오른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토종 기업인 사피온과 리벨리온이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양사는 각각 국내 1~2위 통신사, 세계 1~2위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와 협력한다는 점에서도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

◆챗GPT 지원? 우리가 먼저!

지난 2일(현지시각) 폐막한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2023’에서 사피온은 SK텔레콤, 리벨리온은 KT 부스에 AI 반도체를 전시했다.

두 회사는 자사 제품이 국내 최초로 언어모델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관련 내용에 대해 사피온과 리벨리온은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리벨리온은 지난달 중순 선제 발표를 했다. 리벨리온은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아톰’을 출시하면서 국내 최초의 언어모델을 지원하는 칩임을 내세웠다.

리벨리온은 “아톰의 기술적 성취는 트랜스포머 계열 언어모델을 지원하는 데 있다. 트랜스포머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 GPT이며 최근 열풍을 일으킨 오픈AI의 챗봇 챗GPT가 해당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사피온은 반박했다. 지난 2020년 출시한 ‘X220’이 이미 트랜스포머 모델을 잘 동작시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차세대 모델인 ‘X330’으로는 초거대 모델, 챗GPT 등을 가속시킬 예정이라고 전했다.

MWC 현장에서도 양사 간 자존심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사피온은 관련 자료를 통해 ‘챗GPT의 원천기술인 트랜스포머를 국내 최초로 가속했다’고 언급했다.

부스에서 만난 류수정 사피온 대표는 “X220의 탁월한 성능은 참관객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며 “다른 회사를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또 다른 가속기가 있는지 몰라도 (리벨리온이) 먼저는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벨리온은 생각이 달랐다. 부스에서 만난 리벨리온 관계자는 “(사피온 반도체가) 언어모델을 지원한다고 보기는 조금 어려운 수준으로 판단된다”면서 “기존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돌리던 언어모델이 있을 텐데 우리 칩을 올리면 그대로 돌릴 수 있다. 이 정도는 돼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TSMC-삼성전자 장외 경쟁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파운드리 협력사다. 공교롭게도 사피온은 TSMC, 리벨리온은 삼성전자에 반도체 생산을 맡긴다.

X220의 경우 TSMC 28나노미터(nm)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올해 하반기 공개될 X330은 7nm 공정에서 제작된다. 리벨리온은 2020년 창업 초기 TSMC와 협업하다가 삼성 파운드리로 갈아탄다. 이번에 선보인 아톰은 삼성 5nm 공정이 적용됐다.

나노 경쟁에 대한 의견도 상반된다. 사피온은 상대적으로 나노 수가 뒤처지지만 자신감을 나타냈다. 앞서 류 대표는 “7nm는 안정성과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에서 우위를 보인다”며 “비용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7nm 사용 시 응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나 지적재산(IP) 등이 더 많기도 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교적 낮은 공정을 사용하나 오히려 성능 측면에서 앞선다는 게 자체 분석이다. 사피온은 ‘엠엘퍼프(MLPerf)’ 수치를 근거로 제시했다. X220이 엔비디아 데이터센터용 GPU ‘A2’ 대비 약 2.3배 빠른 처리 능력을 나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A2는 8nm 공정 기반이다.

리벨리온은 높은 공정을 활용할수록 전력 효율성이 뛰어남을 어필했다. 리벨리온 관계자는 “선폭이 줄어드는 만큼 차지하는 공간이 줄고 저전력에 유리한 부분이 있다”며 “신경망처리장치(NPU) 베이스인 AI 반도체가 GPU보다 빠른 건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리벨리온도 엠엘퍼프에 아톰을 제출한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엠엘퍼프 자체를 선호하지 않으나 숫자 레퍼런스가 필요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보기로 했다. 많은 엔지니어가 투입돼야 해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며 “4월 초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사피온과 리벨리온 모두 훌륭한 기술력을 갖춘 회사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타깃 응용처가 일부 다른 부분이 있어서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선의의 경쟁은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서 “각각 SKT와 KT라는 대형 통신사를 둔 점은 대외적인 레퍼런스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엠엘퍼프는 삼성전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과 스탠퍼드 하버드 등 대학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ML코먼스가 매년 개최하는 행사다. 사진 또는 영상에서 음성 인식 능력, 텍스트 이해 능력, 특정 물체 판별 능력 등 8개 분야에서 우위를 가린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