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클로즈업] “삼성이 충분한 설득 근거 제시했다”는 EU, 그것만이 전부일까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알파벳(구글 모회사)·애플·메타(페이스북 모회사)·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 정도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떨치는 빅테크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유럽연합(EU)이 내년부터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사전규제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중엔 유일한 후보였던 삼성전자가 최종 명단에서 빠지면서, 미국 빅테크를 견제하는 동시에 자국 플랫폼 기업을 보호 및 육성하겠다는 EU 큰 그림이 한층 선명해졌다.
EU 집행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내년 3월부터 본격 시행될 디지털시장법(DMA) 대상이 될 거대 플랫폼 사업자를 뜻하는 ‘게이트키퍼’ 6곳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알파벳·애플·메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바이트댄스 6개사가 제공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 앱스토어, 운영체제(OS) 등 총 22개 주요 서비스가 규제 대상이다.
DMA는 소비자와 판매자 간 관문 역할을 하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규제하는 법안이다. 게이트키퍼는 EU 지역에서 ▲최혜 대우 요구(플랫폼 사업자가 입점업체에 최저가 판매 요구 등) ▲자사 우대(구글에서 쇼핑 검색 때 회사 쇼핑 사이트가 최상단에 노출 등) ▲끼워팔기(유튜브 프리미엄 신청 때 유튜브뮤직 끼워팔기 등)는 물론, 데이터를 이용한 배타적 영업행위 등을 할 수 없게 된다.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은 기업엔 글로벌 연매출의 10%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8년간 3번 이상 법을 위반하면 ‘조직적인 침해’로 간주 된다. 이 경우,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고 일정 기간 인수합병(M&A)도 금지하며 일부 사업 부문 매각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EU는 한 놈만 팬다?…삼성만 빠진 규제 명단이 시사하는 것
DMA 최종 명단에서 제외된 삼성전자는 지난 7월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된 삼성 웹 브라우저 서비스가 게이트키퍼 지정 기준을 충족했다고 자진 신고한 바 있다. 삼성전자 역시 유력 후보군 중 하나로 거론됐던 이유다. 하지만 EU 집행위는 삼성전자 측이 삼성 웹 브라우저가 규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충분히 제시했다고 밝히며 게이트키퍼로 지정하지 않았다.
게이트키퍼로 지명된 6개사 가운데 중국 기업인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를 제외하면,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과 애플 등 나머지 기업은 전부 미국 빅테크다. 미국과 달리, 유럽은 구글과 메타처럼 시장 지배력이 큰 플랫폼사가 없다. 해외 빅테크가 가진 영향력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뻗치면서 EU는 유럽 권역 디지털 산업을 키우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EU는 지난 2020년 12월 DMA와 디지털서비스법(DSA) 입법 제안서로 이뤄진 디지털서비스법 패키지 초안을 발표하며 빅테크 규제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말 공식 발효된 DSA 역시 DMA처럼 빅테크를 겨냥한 규제 법으로, 온라인 불법·허위 콘텐츠가 유포되는 것을 방치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수십억 유로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DMA와 DSA가 발의된 배경과 지금까지 EU 행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삼성전자가 게이트키퍼 지정 요건에 포함됐음에도 끝내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인터넷 플랫폼을 운영하는 빅테크가 아닌 ‘제조사’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앱 마켓 점유율은 1~2%에 불과하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역시 자국 기업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21년 ‘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AICO)’과 ‘오픈앱 마켓법(OAMA)’ 등 빅테크 불공정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을 동시 발의했다.
하지만 틱톡·핀둬둬 등 경쟁국인 중국 온라인 플랫폼이 빠르게 치고 나오자 자국 빅테크를 위축시키는 행위가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지난해 주요 빅테크 규제법안은 모두 폐기됐다. 최근 미국은 국가안보 위협과 같은 이유로 틱톡에 적극적인 규제를 펼치는 상황이다. 미 연방정부와 일부 주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공공기관 등에서 틱톡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진행 중이거나 이미 금지했다. 몬태나주 정부는 지난 5월 미국 내 최초로 주민들의 틱톡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한국이 DMA를 모범답안으로 여기면 안 되는 이유
국내에서도 DMA와 유사한 성격의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특히 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 등 국내 주요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경우, 20개에 달하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온플법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와 불공정한 중개 거래 행위를 규제하고 독과점 폐해를 예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 정부에서 입법을 추진했으나 현행 공정거래법으로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는 업계 반발로 끝내 좌초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플랫폼 규제 강화에 앞장섰던 정부부처는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 불공정거래행위, 즉 갑을 문제에 대해 자율규제를 우선 적용한다는 입장이지만, 독과점 문제에 있어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현행 플랫폼 독과점 규율체계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를 진행해 왔다. 상반기에 활동을 마친 TF 논의 결과 등을 참고해 정책 방향을 마련하는 중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자국 플랫폼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 빅테크를 규제하는 EU와 미국과 대비되게 한국은 토종 플랫폼 기업을 정조준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정보기술(IT) 기업 간 체급 차이가 분명한데도 빅테크에 준하는 제재를 국내 플랫폼 전반에 가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온라인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세미나(Ⅱ)’에서도 전문가들 우려가 쏟아졌다. 유럽식 사전규제는 실제 문제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한 유형 행위를 획일적이고 경직적으로 금지하거나 이행 의무를 부과해, 시장환경이 유동적인 플랫폼 산업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다.
신영선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글이 1위를 하지 못한 한국 검색시장에서 네이버(55%)와 구글(35%) 간 시장점유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쏘아 올린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한 상황에서 국내 플랫폼에 힘을 실어주려면, 독과점 사전규제 입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규성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현행 공정거래법이 미국이나 EU 경쟁법과 달리,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뿐만 아니라 불공정거래행위도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데다, 대규모유통업법 등 다양한 특별법도 갖추고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 공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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