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대해부]① 폰값·구독료 천정부지…정작 통신요금은 안올랐다
고물가 시대 ‘가계통신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통신비 절감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소용이 없다. 왜일까. 지난 10년간 통신 요금은 오히려 줄었는데, 스마트폰 가격과 구독서비스 요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마른 수건을 짜 내듯 통신 요금을 낮추는 데만 골몰할 뿐이다. 통계청이 조사하는 가계통신비가 국민이 체감하는 수준과 괴리가 있는 이유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다양한 시각으로 가계통신비를 면밀히 분석해보고, 실질적인 통신비 경감 효과를 위한 정책방향을 제언한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범인은 따로 있다.”
정부가 고물가 주범으로 가계통신비를 지목하자 부랴부랴 통신사들이 나섰다. 5G 중간요금제를 출시해 요금 선택권을 넓혔고, 근래에는 최저 요금구간을 더 낮추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사실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 지출은 올해 상반기 기준 12만6111원으로, 전년보다 3693원(3.0%) 오르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전체 물가 상승률이 7%에 가깝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물가 상승을 방어한 편이다.
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가계통신비 부담은 여전히 높다. 통신 요금도 요금이지만, 사실 가계통신비에는 휴대전화 할부금이 포함돼 더 그렇다. 거기다 소비자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구독상품 이용료도 가계통신비로 인식한다. 이를 모두 더하면 통신 관련 비용만 20만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결국 정부가 집계하는 가계통신비와 일반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가계통신비 사이에는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 스마트폰 사용이 본격화된 2011년 이후, 지난 10여년간 통신 요금은 오히려 줄었고 스마트폰 등 단말 비용은 훌쩍 뛰었다.
곽정호 호서대 빅테이터AI학과 교수가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해 ‘디지털 비용’(통신서비스+디지털기기+디지털서비스 비용)을 추산한 결과, 디지털기기(정보기기 및 통신단말) 관련 비용은 2011년 1만8623원에서 2022년 4만8555원으로 무려 160% 급증했다. 이는 2022년 17만6973원으로 조사된 전체 디지털 비용의 27.4%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이 비중 자체도 2011년(12.2%)과 비교해 두 배 증가했다.
이는 물론 스마트폰 가격 상승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연맹 조사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 삼성전자·애플과 통신3사가 판매하는 5G 단말기 162개의 평균 가격은 115만5421원에 이르렀고, 단말기 가격이 100만원 이상인 경우는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 이후 삼성과 애플로 양분된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선 가격 경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
디지털기기뿐만 아니라 OTT 등 디지털서비스 비용도 2011년 2824원에서 2022년 2만2084원으로 약 8배 증가했고,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1.8%에서 12.5%로 늘었다. 소비자도 체감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2.5%의 응답자들은 콘텐츠 이용 관련 애로사항으로 ‘경제적 비용 부담’을 꼽았다. 유료 콘텐츠 소비자들은 평균 2.7개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통신 요금은 되레 줄었다. 통신이용료(인터넷+유무선)는 2011년 12만1896원에서 2022년 9만8228원으로 약 20% 감소했다. 디지털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9.7%에서 55.5%로 내려앉았다. 이동통신 요금만 따로 보면 비중은 더 줄어든다. 2011년 9만4881원에서 2022년 8만2103원으로, 비중도 62.1%에서 46.4%가 됐다. 가계‘통신’비라고 하지만 더 이상 통신 요금이 주된 요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러한 가계통신비의 착시현상 때문에, 정부 정책도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간 정부의 가계통신비 정책은 늘 통신 요금을 내리는 데만 초점을 뒀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최근까지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통신사업자들에 5G 요금제 확대를 적극적으로 권고해 왔고, 그 결과로 중간요금제와 청년·시니어 특화 요금제가 나왔다. 과기정통부는 현 4만원대인 5G 최저 요금구간을 3만원대로 낮추는 방안도 사업자들에 요구하고 있다. 사업자들은 5G 투자금 회수가 필요함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이에 응하고 있는 분위기다.
반면, 스마트폰 가격 상승 문제는 잘 다뤄지지 않았다.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가파른 출고가 상승, 중저가 스마트폰 부족,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구조 약화 등 가계통신비에 영향을 미치는 단말기 시장의 문제점들도 정부가 들여다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정부는 제조사에 대한 중저가 단말 출시 독려와 중고폰 시장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가계통신비를 논할 때 통신 요금과 단말 비용을 구분짓는 것이 정부 정책에 있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통신비로만 묶여져 있으면 모든 책임은 통신사가 지고 정부 정책도 통신사에 몰리게 되는데, 사실 통신사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단말 비용을 따로 분리하기 어렵다면 가계통신비에 대한 국민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도 공감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가계통신비를 얘기할 때 통신 요금이 일부를 차지하고 영상이나 음악 등 콘텐츠 이용료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며 “이 모든 것이 가계통신비로 분류되니 정책적 접근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변 의원은 “정부 차원에서도 통신 요금만 가지고 가계통신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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