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대회 하나로 서울이 ‘들썩’… “우리한텐 월드컵 보다 롤드컵!”
[디지털데일리 문대찬 기자] “처음엔 이게 왜 인기가 있는 건지 몰랐다. 현장에서 열광하는 팬들과 함께 응원을 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배모(32)씨는 이달 초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에서 열린 ‘2023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T1과 빌리빌리게이밍의 조별 예선 경기를 관람한 뒤, 단숨에 T1의 팬이 됐다.
그는 뒤늦게 결승전 티켓을 구해보려 했지만 방도가 없었다. 지난 19일 T1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롤드컵 결승전은 앞선 8월 티켓 판매 개시 후 10분 만에 고척돔 1만8000여석이 동났다. 중고 플랫폼을 들여다봐도 최대 400만원까지 치솟은 티켓값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누적 시청자수만 4억명, 롤드컵이 뭐길래=롤드컵은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한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의 이스포츠 최대 규모 팀 대항전이다. 매해 전 세계 9개 지역에서 최상위권 팀이 한데 모여 최강자를 가린다. 올해로 개최 13주년을 맞은 대회로, 한국에서 롤드컵이 열린 건 지난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롤드컵을 위시한 LoL 이스포츠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이스포츠 종목이다. 2021년 롤드컵 결승전은 최고 동시 시청자수 7386만742명을 기록하는 등,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선 세계인들의 축구 축제인 ‘월드컵’ 못지않은 위상을 가진다. 배우 김희철과 박보영, 가수 백현 등 팬을 자처하는 ‘셀럽(유명인)’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인기도 해를 거듭하며 상승세에 있다. 라이엇게임즈 집계 결과 이번 대회 4강까지의 시청률은 직전 대회보다 65% 증가했다. 결승전까지의 누적 시청자수가 사상 최대치인 4억명을 돌파하고, 결승전 동시접속자수는 1억명을 넘겼다는 게 내부 예측이다.
◆경제효과만 2000억원…모니터 화면 넘어 문화 축제로=일각에선 이제 롤드컵이 게임 속 세상을 넘어 전국민이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종합 문화 축제로 거듭났다고 보고 있다.
서울시는 롤드컵 결승을 앞두고 광화문 광장 일대를 이스포츠 축제의 장으로 꾸몄다. 서울시가 이스포츠 행사를 위해 광장을 개방한 최초 사례다. 게임 관련 부스부터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가 출연한 공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이 기간 관람객을 만났다. 라이엇에 따르면 16일부터 18일까지 총 8만1400여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광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승전 당일에도 월드컵 거리 응원 못지않은 응원전이 펼쳐졌다. 체감온도 영하 7도를 기록하는 한파 속에서도 1만5000여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모여 목 놓아 T1을 외쳤다. 광장 내 자리를 잡지 못한 시민들은 근처 벤치나 카페로 이동해 삼삼오오 모여 경기를 시청했다. 이날 결승전을 중계한 전국 100개 CGV 상영관도 전부 매진되는 등 뜨거운 열기는 전국까지 퍼졌다.
이날 광장을 찾았다는 김모(31)씨는 “뉴진스 오프닝과 T1이 우승을 확정할 때는 광화문이 떠나갈 듯 함성이 나왔다”며 “월드컵에서만 보던 거리 응원이 펼쳐지니 놀라웠다”고 전했다.
관련 업계는 롤드컵 개최에 따른 직간접적 경제효과가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서 중국 상하이 스포츠국은 2020년 팬데믹으로 해외 입국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롤드컵을 통해 상하이시가 60억원에 달하는 직접 수입을 올렸다고 밝힌 바 있다.
◆문체부 장관이 관람하고 대통령이 축전… 달라진 이스포츠 위상=이번 롤드컵을 통해 이스포츠의 달라진 국내 위상을 확인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9월 열린 아시안게임에 LoL을 비롯한 이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 본격적인 인식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고, 이번 롤드컵을 기점으로 이스포츠 산업 성장세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례로 이번 롤드컵 결승전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직접 행차해 이스포츠 열기를 살폈다. 롤드컵 종료 뒤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T1 선수단에게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의 행보와 사뭇 다르지 않다.
윤 대통령은 축전에서 “앞으로 정부는 게임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유 장관 역시 업계 관계자들과 두 차례 더 만난 뒤 이스포츠 산업 진흥을 위한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김정태 교수는 “이스포츠를 ‘신인류의 스포츠’라고 정의하고 싶다”면서 “2010년대 아이폰을 쓰기 시작한 세대들은 이전보다 모바일과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다. 지금의 현상은 이러한 신인류가 쓰는 서사시”라고 전했다.
그는 “이스포츠 위상은 날로 높아질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림픽 시범종목 채택도 가시권으로 보인다”라며 “당장 3년 뒤 열리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기점으로 이스포츠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김 교수는 이스포츠 인기가 외산 게임인 LoL에 편중된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한국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밖에 없다. 이마저도 본래 게임성과는 다른 버전으로 선보였다”며 “현재 님뉴블런의 ‘이터널리턴’ 등 이스포츠 발전 잠재성이 높은 한국 게임들이 있다. 정부는 간섭보다는 자유롭게 이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 해야 한다. 라이엇이 꾸준히 이스포츠 투자를 지속했듯, 오랜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꼭 해야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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