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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홀드백 법제화'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채성오 기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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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채성오 기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판 홀드백'을 법제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영화계와 OTT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홀드백이란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가 인터넷(IP)TV 주문형 비디오(VOD)나 OTT에 공개되기 전 일정 유예기간을 두는 산업 내 관행인데, 이를 법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앞서 지난해 9월 문체부는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사, 투자·배급사, IPTV 업계 등으로 구성된 '한국영화 산업 위기 극복 정책 협의회'를 발족하고 같은 해 말 한국영화 개봉 펀드 투자 작품에 한해 4개월 간의 OTT 홀드백 준수 의무 조건을 시범 적용한 바 있다. 현재 문체부는 협의회 등 업계와의 논의를 거쳐 다음달 중 관련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에 법제화하려는 정책의 골자는 기존 1~3개월 정도였던 홀드백 관행을 6개월 기간 유예를 두는 법으로 규정하려는 것이다. 다만 해당 정책은 정부 모태펀드를 통해 벤처캐피탈(VC) 투자를 받는 일반 상업영화에 해당하며, 관객수 10만명·제작비 30억원 미만 규모의 작품은 적용하지 않는 예외규정을 둘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210편 중 콘텐츠 펀드투자를 받은 작품은 62편으로, 약 30% 수준이다.

현업에서는 해당 정책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할 만큼, 각자가 처한 상황과 맞물린 입장이 다르다. '영화계 vs OTT업계' 구도가 아니라, 각 산업계 내부에서 찬반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다.

이는 영화산업에 대한 이해관계와 수익 구조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보면 극장 개봉 기간이 길어질 경우 티켓 판매 기회가 늘어나는 만큼 제작·배급사와 극장 프랜차이즈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 이면에는 이와 상반된 비즈니스 모델(BM)도 존재한다.

홀드백 법제화를 찬성하는 영화업계의 입장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이후 급격히 짧아진 홀드백 기간을 늘리고, 법제화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수익성이 점차 늘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극장 전체 매출액과 관객 수는 각각 1643억원과 167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7~2019년 12월 전체 매출액 평균(1870억 원)의 87.9% 수준이며, 같은 기간 관객 수의 경우 팬데믹 이전 기간의 73.4% 수준이다. 지난해 12월의 경우 영화 '서울의 봄'과 '노량: 죽음의 바다' 등 흥행작들의 성과가 반영된 것으로 관련 작품이 개봉하지 않은 같은 해 10월로 범위를 좁히면 매출과 관객 수는 각각 팬데믹 이전의 48.4%와 41.0% 수준에 그친다.

반면, 홀드백 법제화 도입을 반대하는 영화계에서는 해당 정책이 산업 성장이나 수익성 개선에 족쇄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른바 '텐트폴(지지대 역할을 할 규모의 대형 작품)' 규모의 영화를 제작하는 일부 제작사 외에 대부분의 중소 규모 제작사들은 VOD 의존도가 높은데 홀드백 규정이 적용되면 IPTV나 OTT를 대상으로 한 판매 금액이 낮아져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홀드백 법제화의 경우, 대형 극장 프랜차이즈의 수익성 확대에 집중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홀드백 규정이 오히려 정부 의존도를 낮추고 외부 투자 매력도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홀드백 규정으로 인해 VOD 및 OTT 플랫폼에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판단 하에 문체부 콘텐츠 투자펀드를 받지 않고 민간 투자자 의존도를 높이는 제작사가 늘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럴 경우 영화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사를 모집해야 하는데, 투자사 입장에서는 작품이 흥행해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투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정책의 '사각지대'도 꾸준히 거론되는 지적사항이다. 가령, 문체부 콘텐츠펀드 투자를 받은 텐트폴 규모 영화가 홀드백 기간(6개월) 동안 예상보다 한참 못 미치는 10만명 미만의 관객을 동원한다면 관련 규정에 묶여 해당 기간 VOD나 OTT 플랫폼에 작품 판매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반대로 콘텐츠펀드 투자를 전혀 받지 않은 제작비 30억원 미만의 독립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경우, 홀드백 규정에서 벗어나 VOD 등 재판매 수익을 확대할 수 있다. 극단적인 사례를 들었지만, 관련 법 취지가 소규모 업체를 육성시키기 위한 진흥정책이 아닌 만큼 예외규정 등 정책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도 충분히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OTT업계의 경우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지만 취재 결과,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관련 업계 전반적으로는 홀드백이 법제화되면 한국영화 콘텐츠 수급이 어려워져 장기적으로 플랫폼 유입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대형 사업자와 중소사업자들의 온도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형 사업자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필요한 작품을 빠르게 수급하는 통로가 막히는 만큼 홀드백 법제화에 대해 불편해하는 모습이지만 반대로 중소형 사업자들은 일정 부분 대형 사업자들의 콘텐츠 독식을 견제할 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일부 OTT 플랫폼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극장 개봉 이후 한 달여 만에 흥행작을 독점 공개했던 관행들이 홀드백 법제화로 사라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홀드백이 길어질 경우 현 상황에서 불법 스트리밍 공유 사이트에 대한 대중적 의존도가 높아져 업계 전체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점은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홀드백 기간 확대 및 법제화에 대한 입장 차는 각 업계·기업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부적인 이해관계와 수익 구조가 각각 다르기에 입장 차가 큰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영화산업의 위축을 일부 OTT 사업자나 관련 업계 탓으로 돌리는 '시선'이다.

사실상 영화산업이 위축된 지점은 팬데믹이 시작된 2019년 이후로 볼 수 있는데, 당시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로 객관적 지표로 활용됐던 것이 '극장 관객 수와 매출'이다. 이는 주요 프랜차이즈에 집중된 데이터이지만 '극장'이 주는 대표성으로 인해 영화산업 전체를 대변하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영화산업이 위축된 이유를 OTT와 일부 플랫폼사들의 시장 독식만을 강조하기에는 전염성 바이러스가 대유행하던 시기 외부 출입이 제한된 외부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간과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영화 '서울의 봄'이나 '노량'이 극장에서 흥행한 것을 보면 '극장에서 볼 영화는 다 본다'는 이야기를 비단 우스갯소리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팬데믹'이라는 외부 리스크가 해소된 상황에서 영화 서울의 봄 등 흥행작들의 영향으로 지난해 12월 기준 극장 매출이 2017~2019년의 90% 가까이 회복한 것만 봐도 잘 만든 영화를 얼마나 개봉하느냐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결정적 요소로 보인다. 영화계 내부에서도 OTT 뿐 아니라 IPTV VOD 등 재판매 수익이 손익분기점의 보완재로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홀드백 법제화에 대한 제도적 보완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홀드백 법제화를 추진중인 문체부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어디까지 반영할 수 있을까.

채성오 기자
cs86@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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