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둔화' 위기 맞은 LG엔솔, 기술 리더십으로 타개 [소부장박대리]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 찼던 K-배터리 업계에 위기가 찾아왔다. 대중화 이전 침체기인 캐즘(Chasm)이 찾아온 전기차 수요 둔화 때문이다. "일시적인 정체기일 뿐"이라며 다시금 반등하리라는 기대감도 곳곳에 나오지만, 여러 위협 요소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성장성이 꺾일 우려도 분명 있다. 수혜로 다가왔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조차도 먼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상황이 찾아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수요 둔화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장밋빛 미래를 경계했다. IRA를 둘러싼 대선 리스크와 높은 배터리 생산원가 문제를 꾸준히 들여다봤다. 이같은 오랜 고심의 결과가 올해부터 나오는 분위기다. 배터리 공정 자동화와 원가 절감 기술 등 세부적인 기술 격차로 다가올 적자생존의 시대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지난 13일 한국전력 경영연구원은 블룸버그 자료를 인용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배터리 생산능력은 4.1테라와트시(TWh)로, 수요(1.2TWh)를 3배 이상 뛰어넘었다고 발표했다. K-배터리를 포함한 글로벌 배터리 셀 기업이 주요 권역에 투자하면서 생산능력이 확충됐지만, 정작 수요가 줄며 과잉공급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배터리 과잉 공급 문제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언급돼 왔다. 전기차 최대 시장인 중국 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수요를 뛰어넘으며 배터리값이 떨어질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연말로 접어들며 각국 전기차 보조금 예산이 소진되고, 경제성에 의문을 가진 대중의 소비심리가 꺾이며 전기차 둔화 국면을 맞이했다.
K-배터리 3사의 버팀목이 될 것 같았던 미국 IRA도 수혜보다 위험 요인이 두드러지고 있다. 함께 합작한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AMPC 혜택을 공유받기를 원하고 있고, 수혜 기간 자체도 몇년 남지 않았다. AMPC 보조금은 2029년까지만 100% 지급되며 2030년 75%, 2031년 50%, 2032년 25%까지 점차 축소된다. 만약 전기차 수요 둔화가 길어지고 높은 물가와 인건비를 보조하는 수단마저 사라진다면, 장기적으로 기대했던 하이싱글디짓(7~9%) 수준의 마진율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말 진행될 미국 대선도 우려 요인 중 하나다. 현 정부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한다면 IRA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겠지만, 공화당 측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수혜 조항이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 IRA이 폐지되는 경우의 수는 극히 낮으나, AMPC 지급액이 줄어드는 등 차악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현재를 '내실을 다지는 시기'라고 언급한 것과 연결된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된 가운데, 장기적인 성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제품은 물론 공급망관리(SCM) 체계와 공정 원가 절감 등 최적화를 이뤄낼 필요가 있다.
배터리 원가 절반을 차지하는 양극재의 경우 다각화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다. K-배터리 3사는 에코프로비엠·엘앤에프·포스코퓨처엠 등 양극재 업체에 장기간 공급 계약을 추진했거나 하는 상황이며, 리튬·니켈 사급 구조를 갖추기 위해 유럽, 미국, 캐나다, 인도네시아 등 현지 업체와 계약을 체결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한단계 더 나아가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한 공정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고 ▲공정 자동화를 전 영역으로 넓히며 ▲신규 및 차세대 기술을 양산 라인에 적용하는 모습이다.
2020년대 초반부터 추진해 온 레이저 노칭 장비의 양산라인 적용이 대표적 사례다. 레이저 노칭 장비는 양·음극판 끝에 전극 단자(탭)를 형성하는 노칭 공정용 장비로, 기존 금형(프레스) 대비 생산성을 높이고 유지 관리비를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장비 적용의 난제는 양극 합제부 노칭이다. 활물질이 코팅되지 않은 무지부까지는 노칭이 가능했지만, 합제부를 노칭할 경우 레이저 광원에 활물질이 녹아 균일도가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이 레이저 노칭 장비가 적용된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수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금형 노칭과의 병용과 숙련도 향상, 장비 업체와의 기술적 협력 등을 통해 현재 방식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조립 공정, 활성화(포메이션) 공정에만 적용됐던 자동화의 범위도 전극 공정으로 넓혀지는 추세다. 현재 신설 투자 중인 미국 법인향으로 전극 공정용 무인운송차량(AGV)·자율주행로봇(AMR) 발주가 난 상태며, 기존에 인력이 투입돼야 했던 압연 공정 장비도 자동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코팅 공정 내 건조 과정에 대한 대안들도 주목할만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력 소모가 심했던 열풍 대류 건조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거나 건식 전극 공정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파일럿 라인에서 대체 장비를 활용하고, 건식 전극 공정 시양산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기술 채용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배터리 수율 향상을 위한 인라인 검사 장비 도입 역시 진행하고 있다. 기존에는 생산품 중 일부 샘플을 검사하는 전수 방식을 활용했지만, 검사 장비 성능이 배터리 셀 생산속도와 유사해지면서 이를 도입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별다른 전수 검사 없이 빠르고 정확한 셀 양산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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