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션명 : '듣보' 딱지를 떼어내라
[디지털데일리 김보민기자] 이달 초, 국내 주요 보안 기업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로 발걸음을 향했다. 중동 최대 정보기술(IT)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한 일정이었다. 한국관에 부스를 꾸린 이들은 중동 현지 투자사와 기업을 만나기 위해 밋업 행사에도 얼굴을 비추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 귀국한 이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중동 현지에서 한국산 보안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입증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빨리빨리' 문화가 없는 탓에, 미팅 약속에 늦거나 아예 오지 않는 일도 다반사였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밋업 행사 또한 기대만큼 북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보안 업계가 오랜 기간 '해외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 달려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꽤나 씁쓸한 소식이다. 중동은 미래 도시를 건설하는 데 진심인 지역이기에 해외 진출 로드맵에서 빼놓고 논의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부 주요 기업을 제외한 대다수는 '듣보(듣도 보지도 못한)' 딱지를 떼어내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국내 보안 시장은 성장성 측면에서 파이가 크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국내 수요만으로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기업이 해외 시장에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정학적 이유로 보안 울타리를 강화해야 하거나 클라우드 전환, 제로트러스트 열풍으로 보안 솔루션과 새 서비스를 새롭게 적용해야 하는 국가들도 늘고 있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금이 곧 해외 시장을 노릴 골든타임이라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지역은 중동뿐만 아니라 일본, 동남아 등 다양하다. 최종적으로 최대 시장인 미국을 노리는 곳도 다수다. 최근 국내 보안 기업 관계자는 어떤 시장이 가장 매력적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히 미국 아니겠나"는 답변과 함께 "국내를 시작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레퍼런스(reference)를 쌓고 미국에 최종 발을 들여놓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전히 대부분 보안 기업은 제품 판매와 유지 보수로만 이익을 내고 있고, 매출 대다수를 공공 사업에서만 빨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 기업과 계약을 맺어 총판 역할을 자처하는 기업도 다수, 그나마도 외국계 기업에 밀리는 일도 허다하다.
이러한 상황 속 정부의 행보는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사이버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기반이 될 국내 기업 지원에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 내부에서부터 보안 산업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전문적으로 이해하는 이가 많지 않다.
해외 진출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 방안도 사실상 전무하다. 대신 사이버 보안 10만 인재 양성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이를 바라보는 업계는 "국내 시장 파이가 크지 않은데 인재만 양성해서 뭐하나"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현재 보안 업계가 직면한 문제를 정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애써 키운 10만 인재가 연봉, 처우 등을 따져 보안 기업이 아닌 다른 IT 업계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사실상 보안 전문가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해외 진출에 동력이 될 만한 인력 또한 쥐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체감할 수 있는 지원과 변화다. 한국은 북한과 중국 등 외부 국가로부터 꾸준히 사이버 위협을 받아온 대표적인 국가다. 그만큼 보안 기술력 측면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러한 경쟁력이 더 큰 시장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해외 무대에 올라설 수 있는 기반을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차별화된 기술로 개별 경쟁 기업과 승부를 보는 것은 그다음 이야기가 돼야 한다.
2024년 1분기가 끝나가는 지금, 올해에도 보안 기업들의 사투는 계속될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이버 보안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는 시점에서 '한국판 시큐리티(Security)'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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