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로 손 뻗는 자동차…배터리 적자생존 심화 [소부장박대리]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 원료와 소재에 손길을 뻗치고 있다. 업스트림(Upstream) 수직계열화로 배터리 원가를 절감, 전기차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자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배터리 제조사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 주도권을 잡을 방침도 세웠다.
이에 따라 오는 2년 내로 배터리 셀 제조사의 시장 주도권이 완성차 업계로 넘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완성차 기업이 추진한 배터리 내재화 계획이 좌절된 후, 업계 이해도를 넓혀 관련 공급망·기술 내재화로 시선을 돌렸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른 배터리 셀 제조사 간 적자생존 단계가 더욱 심화될 예정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SK온에서 받을 배터리 물량에 대한 소재 기업을 직접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튬 등을 현대차가 소재 기업에 사급 구조로 전달하고 소재 기업이 만든 제품을 SK온에 납품하는 형태로다. 현재 엘앤에프가 13조원에 달하는 확정 물량을 확보했고, 나머지 물량은 벨기에에 본사를 둔 유미코아가 전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는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미국 합작법인(JV)을 설립하기로 협약한 이후 양극재를 비롯한 소재 기업의 제품을 테스트해왔다. 관련 계약은 당초 지난해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전기차 캐즘(Chasm)에 따라 지연된 바 있다. 그러다 올해부터 관련 납품 계획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한 소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원가 중 배터리 비중이 크다보니 국내 소재 업체와 소통하려는 완성차 기업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아직 직납으로 이어진 경우는 적고, 일부 기업의 파일럿 라인에 샘플을 제공하는 경우는 많아졌다"고 전했다.
현대차가 올해 초 중국 간펑리튬, 성신리튬에너지와 4년 동안 리튬을 공급 받은 계약을 맺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재 배터리 셀 공급 계약은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 원료 가격을 최종 전기차 업체에 인가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리튬 가격이 내리면 그만큼 배터리 판가도 낮아지지만, 리튬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완성차기업이 손해를 보는 구조인 것이다. 이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려면 원자재 장기 공급 계약으로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배터리 제조를 위한 기술 내재화도 차츰 진행 중이다. 지난 2020년 남양연구소 산하 배터리 개발 조직을 갖췄고, 2021년 이 조직을 배터리 개발센터로 통합했다. 올해 하반기까지 의왕연구소에 차세대 배터리 연구동을 구축할 계획도 세웠다. 이 성과로 싼타페 등 자사 하이브리드차량(HEV) 모델에 자체 개발 배터리를 채용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계들도 배터리 공급망 꾸리기에 혈안이 됐다. 폭스바겐그룹은 2022년 설립한 파워코를 통해 배터리 제조 기술을 직접 내재화하는 한편, 지분 투자한 노스볼트를 통해 배터리 공급처를 확보했다. 리튬 역시 간펑리튬을 통해 수급받고 있다. 이밖에 제너럴모터스(GM)·BMW·포드·스텔란티스 등 유수 완성차 기업들도 원재료 직접 확보, 배터리 기술 내재화 등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완성차 업계가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하는 이유는 배터리 업계로 치우쳤던 시장 주도권을 빼앗아 오기 위해서다. 공급자 주도 시장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한 배터리를 싼 값에 수급받고, 기존 내연기관과 같은 OEM 중심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당초 이들 업계는 2020년대 초 배터리 내재화를 잇따라 발표하며 시장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이 전략은 높은 진입장벽과 막대한 투자비 등으로 사실상 실패가 됐지만, 최근에는 높아진 배터리 이해도를 바탕으로 기술 내재화·공급망 장악으로 전략을 선회하면서 차츰 성과를 거두는 모습이다.
이미 이같은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미국 전기차 1위 기업인 테슬라다. 테슬라는 초기 파나소닉 등을 통해 배터리를 수급받아 왔지만,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한 이후 배터리 건식 공정 도입·4680 배터리 등을 언급하며 시장 내 기술 흐름을 이끌었다. 자체 배터리 생산 계획 역시 리튬인산철(LFP) 도입과 함께 배터리 가격 상승을 견제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제2의 테슬라'로 주목받은 리비안도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 2022년부터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계에 접촉해 배터리 네트워크를 꾸렸다. 지난해에는 자체 배터리 생산도 추진, 파일럿 생산을 시도하기도 했다. 자체 생산 계획은 커진 적자와 효율성 제고에 따라 좌절됐지만, 삼성SDI로부터 받을 배터리 공급망을 직접 선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관련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완성차 기업의 공급망·기술 내재화 조짐에 따라 배터리 업계의 적자생존 구도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배터리 설계에 대한 고객사 이해도가 높아지고, 관련 공급망도 옮겨가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지는 탓이다. 소재 외 자체적인 설비 운용에 대한 비용 절감 등이 중요해졌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최근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이 공정 효율화와 자동화를 외치는 이유도 완성차 업계의 업스트림 공급망 구축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향후 몇년 간 셀 제조사의 대규모 투자가 완료되는 만큼, 현 시점에서 최대한 공정 비용을 낮추는 것이 미래 생존의 열쇠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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