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확률 속속… 자율규제 민낯 드러낸 게임업계 [IT클로즈업]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지난달 22일 게임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 시행을 전후해 게임사 확률 표시 오류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업계는 그간 자율규제를 통해 확률을 정확하게 고지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이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어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웹젠은 지난달 21일 ‘뮤아크엔젤’ 속 일부 아이템 확률 오류 사실을 공지했다. 이에 따르면 일정 횟수 이상 뽑기를 진행해야만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획득 가능 회차'를 구체적으로 표시하지 않았거나 잘못 알린 사항이 다수 드러났다.
예컨대 현재는 판매가 종료된 ‘탈 것 영혼 각성석’은 기존 1~150회 뽑기를 시도하면 얻을 수 있다고 게재했으나, 실은 70회 이상 시도해야 150회 사이에 얻을 수 있었다.
일종의 ‘바닥 시스템’도 존재했다. 당초 0.29% 확률로 얻을 수 있다고 표기됐던 장신구 ‘세트석 아이템’은 99회 시도까지 획득 확률이 0%였다.
이중 401레벨 이상 이용자는 해당 패키지 획득 확률이 0.25%로 기재돼 있었으나 실제로는 150회부터 획득이 가능하고, 확정해서 얻으려면 최대 400회까지 뽑기를 진행해야 했다.
그라비티가 서비스하는 ‘라그나로크온라인’도 아이템 등장 확률을 잘못 표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달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된 공지를 살펴보면, 기존 공시와 확률이 다른 아이템은 100종 이상(11종의 아이템 내 속한 여러 아이템들을 전부 포함)이었다.
이중 ‘마이스터스톤’ 등 일부 아이템은 확률 표기가 0.8%에서 0.1%로 수정되는 등 그간 확률이 8배까지 부풀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확률 조작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위메이드가 법 시행 후인 지난달 29일, ‘나이트크로우’ 내 유료 상품인 ‘조화의 찬란한 원소 추출’ 확률 표기를 정정한 사실도 3일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당 상품에서 전설 등급 원소를 획득할 확률은 0.0198%에서 0.01%로, 영웅 등급 원소 획득 확률은 1%에서 0.32%로, 희귀 등급 원소 획득 확률은 7%에서 3.97%로 정정됐다.
게임사들은 표기에 ‘실수’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확률 조작도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이용자에 사과하고 빠른 시일 내 보상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해당 게임사들이 게임산업법 개정안 처벌 대상은 아니다. 웹젠과 그라비티는 법안 시행 전 표기 오류를 공지했고, 위메이드는 시정 명령 전 확률 표기를 수정했기 때문이다.
게임산업법에 따르면 확률 정보 공개 위반이 적발되면 게임사는 이를 시정해야 한다. 시정 권고∙명령에도 이행하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게임사를 조사해달라는 이용자 민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빗발치면서 후폭풍이 예상된다. 공정위는 앞서 지난 1월 넥슨코리아가 '메이플스토리' 아이템 등장 확률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서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공정위는 최근까지도 게임 이용자 권익 보호 의지를 거듭 강조해왔다. 지난 2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문체부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기만행위 등 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경우에는 즉시 검토해 조사 및 제재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넥슨 사태 이후 이용자들은 집단 분쟁 조정 신청, 개별 소송 등을 제기하며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현재 공정위는 웹젠∙그라비티와 관련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상태인데, 해당 조사 결과에 따라 이용자 움직임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위메이드 역시 이용자 민원이 제기되면 공정위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법 시행을 전후해 확률 표기 정정이 잇따르면서, 고의성 여부를 떠나 게임사가 그간 확률 정보 관리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게임사들은 2015년부터 자율규제에 따라 확률을 빈틈없이 공개해왔다며 법 시행에 난색을 표한 바 있는데, 이번 사건들로 개정안의 실효성만 부각됐다는 지적이다.
이철우 게임 전문 변호사는 “자율규제 허상이 드러난 사례”라며 “확률을 잘못 표기한 것이 의도적이었다면 그간 숨긴 것을 스스로 밝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실수였다면 확률을 보다 꼼꼼히 검토하는 행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선작용이 드러났다”고 짚었다.
그는 “공정위에 대한 이용자 신뢰가 두터운 상황”이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고 과태료 부과 결정이 나오는 순간 단체 소송 등의 움직임으로 이어져 여파가 커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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