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웨이브 합병, 낙관하기만은 어려운 이유 [IT클로즈업]
[디지털데일리 채성오기자] 토종 OTT '티빙(TVING)'과 '웨이브(Wavve)'의 합병이 본계약 체결을 남겨둔 가운데, 대주주별 주주 설득 과정이 입김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미 주주 설득을 마친 웨이브의 대주주 SK스퀘어와 달리 티빙의 대주주인 CJ ENM은 합병으로 고려해야 할 마이너스 요소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이유에서다.
◆"우린 준비 다 됐어"…"잠시만 기다려 봐"
현재 CJ ENM과 SK스퀘어는 티빙과 웨이브의 대주주이자 서비스 통합 계약의 주체로 협상을 진행중이다. 업계에선 계약 당사자들이 본계약에 서명한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를 거쳐 최종 합병하는 계획을 진행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5일 서비스 통합을 위한 MOU를 체결한 이후 양사는 본계약에 대해 논의하며 각 주주들을 설득하고 있다. 티빙은 최대주주 CJ ENM(48.9%) 외에 ▲KT스튜디오지니(13.5%) ▲젠파트너스앤컴퍼니(13.5%) ▲SLL중앙(12.7%) ▲네이버(10.7%)가 5% 이상 주주로 이름을 올린 상황이다.
웨이브의 경우 상대적으로 티빙보다는 단순한 지분 구조를 갖고 있다. 웨이브는 SK스퀘어(SK스퀘어36.68%·SK스퀘어 아메리카 3.84%)가 40.52%로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으며 ▲KBS(한국방송공사 1.88%·㈜이케이비에스 17.95%) ▲문화방송(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각각 19.83%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본계약 체결 전 주요 변수로 떠오른 주주 설득 과정은 SK스퀘어 측이 한 발 앞선 모양새다. SK스퀘어에 따르면, 최근 지상파 3사와 논의한 끝에 티빙·웨이브 합병 건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냈다.
다만, 지상파와 웨이브 간 풀어야 할 숙제가 변수로 남아 있다. 웨이브와 지상파 3사의 계약 만료시점은 오는 9월로, 이전까지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웨이브의 지분을 별도 매각하는 방안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는 웨이브가 발행한 전환사채(CB) 만기일 도래와도 연관성을 갖는다. 앞서 웨이브는 2019년 11월 제3회 무기명식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미래에셋벤처투자 등 투자자로부터 20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는데 당시 5년 내 IPO(기업공개)를 조건으로 내세운 바 있다. 전환사채 만기일이 오는 11월인 만큼 해당 기한까지 투자 원금 2000억원에 연 복리 3.8%를 더한 금액을 상환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이유에서 SK스퀘어는 웨이브의 전환사채 만기일 전까지 주요 주주인 지상파 3사를 설득하는 한편, 티빙과의 합병 본계약 체결을 통해 부채 리스크를 해소할 여력을 갖춰야 하는 입장이다. SK스퀘어가 지상파 3사를 대상으로 '본계약 체결 시 웨이브와 재계약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설득에 나섰을 가능성이 여기서 나온다.
주요 주주를 설득중인 CJ ENM 입장에서는 웨이브의 부채 리스크가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티빙과 웨이브를 합병했을 때 부채 리스크를 상회하는 베네핏(혜택)이나 비전이 있어야 주주 설득과정에서 탄력을 받겠지만 현재까지 업계에 알려진 것은 합병 시 CJ ENM이 최대주주(1대 주주)에 오르는 정도에 그친다.
실제로 CJ ENM은 티빙 일부 주주들과 합병 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SK스퀘어와 CJ ENM이 주주가치 산정 비율까지 협의를 마친 만큼 올 상반기 내 본계약 체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CJ ENM 측은 주주들과의 논의를 신중히 검토하는 모습이다.
◆"합치면 커지잖아!…바보야, 문제는 중복이야"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했을 때 넷플릭스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 지 장담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주주 설득 과정의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빅데이터 리서치 업체인 아이지에이웍스의 데이터를 보면 지난달(5월) 안드로이드 OS 기준 티빙과 웨이브의 월간 사용자(MAU) 수는 각각 450만명과 278만명으로 단순 합산 시 총 728만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같은 시기 넷플릭스의 MAU(709만명)보다 높은 수치다.
다만, 국내 OTT 이용자들이 플랫폼을 중복 가입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한 합산 수치로 합병법인의 규모를 가늠키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OTT 구독 개수는 평균 2.1개로 집계됐을 만큼 국내 이용자들은 2개 이상의 OTT를 구독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웨이브에서만 지상파 3사 콘텐츠와 실시간 방송을 제공하는 만큼, 오리지널 및 종합편성채널 콘텐츠를 제공하는 티빙과 별도 가입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복 가입자를 고려했을 때 합병만으로 넷플릭스와 견주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콘텐츠 및 재무적 관점에서도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산적하다.
올 들어 티빙은 ▲이재, 곧 죽습니다 ▲운수 오진 날 ▲피라미드 게임 등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로 플랫폼 유입량을 늘린 데다 'KBO'와 '유로 2024' 생중계를 통해 스포츠 팬덤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눈물의 여왕 ▲선재업고 튀어 등 tvN 인기 프로그램까지 제공하며 락-인 효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자체 경쟁력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반해 웨이브의 경우 드라마 타입 오리지널 콘텐츠 가운데 '약한영웅'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흥행작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웨이브는 '약한영웅' 시즌2도 제작 및 투자 여건을 고려해 포기했을 만큼 재무 여건이 악화된 상황이다. 지난해 연간 기준 웨이브의 영업손실은 791억원으로 1178억원을 기록했던 전년도(2022년) 영업손실에 비해 적자폭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구조를 벗어나진 못했다.
티빙도 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티빙도 연간 141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매출 대비 적자폭이 커졌다. KBO 등 스포츠 중계권 확보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등으로 인한 비용이 일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흑자전환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플랫폼이 합병할 경우 적자폭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합병 법인 출범 시 애플리케이션 및 홈페이지 UI·UX 리뉴얼, 인력 조정, 콘텐츠 수급 계약 재논의 등 부수적으로 투입되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양사가 지난해 말 MOU를 맺은 만큼 다음달이라도 본계약을 체결할 수 있지만 아직 서명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 이행 의무는 없는 상황이다. 이해 당사자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면 관련 계약이 원점에서 재검토되거나 파기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하더라도 단기간 내 넷플릭스와 경쟁할 만큼의 규모로 발돋움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뒤따르는 실정"이라며 "적자 구조가 심화되는 것까지 감안한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하기 때문에 본계약 조건에 얼마만큼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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