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계통영향평가 결국 밀어부치기?…데이터센터업계 “현장 외면 행정” 반발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으로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전력계통영향평가에 대해 정부가 예정대로 도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지난 8일 ‘전력계통영향평가 이해관계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데이터센터 업계에선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KDCC)와 한국데이터센터에너지효율협회(KDCEA), 아마존웹서비스(AWS)·SK브로드밴드·LG CNS 등 주요 사업자들이 참석했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올해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근거로 산업부가 추진 중인 제도다. 전력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10메가와트(MW) 이상 전기 사용을 신청하는 전력계통 사업자는 사전에 이 평가서를 산업부에 제출하도록 했다.
이 제도는 시작도 전에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 업계는 평가항목 자체가 산업 특성을 반영하지 않을뿐더러 정부의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완화 정책과도 취지가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기술적 평가항목(60점)과 비기술적 평가항목(40점) 중 합계 70점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업계는 기술 항목 점수에서 만점을 받기 사실상 힘든 상황에서 비기술 항목마저 분산에너지 활성화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날 한전에 따르면 기술 항목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자가발전기 설치’를 포함한 ‘자가 발전 운전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데이터센터연합회는 그러나 “해당 항목에서 만점을 받으려면 계약전력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자가발전기를 설치해야 하며, 이는 현실적으로 달성 불가능한 수치”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업계는 ‘지역 낙후도’, ‘지역사회 수용성’, ‘직접 고용’, ‘부가가치 유발효과’ 등의 비기술 항목이 전력계통 과부하 또는 분산에너지 활성화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러한 평가 항목들이 사실상 민간 사업자의 개발사업에 공공개발 수준의 기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산업부와 한전 측은 평가항목에 대해 “대학에 용역을 의뢰해 만들어진 것으로, 용역 내 시뮬레이션 결과 지방 모 지역의 경우 충분히 85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합회 측은 “용역 수행과정에 데이터센터 전문가 또는 관계자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해 70점 이상을 획득했다 하더라도, 전력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수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중 규제’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전은 전력심의위원회의 평가기준이 공개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기준은 투명하게 마련하겠으나 공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현재 산업부가 추진 중인 전력계통영향평가는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산업부가 올해 3월 발표한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 취지와 어긋난다는 반론도 있었다. 수도권 과밀화된 데이터센터 구축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전국 모든 곳에서 똑같이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면 사업자가 지방에 데이터센터를 구축·이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부와 한전은 예정대로 전국을 대상으로 시행할 계획이며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도입 취지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승인 3개월 전 평가를 받도록 시기를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사업자들은 “전력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계통영향평가 비용 등 선투자를 하라는 것은 현장 상황에 전혀 맞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업계 측은 “모 사업자에 평가 대행 비용을 문의한 결과 13억원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으나, 산업부와 한전은 “1억원 미만으로 지도하면서 시장 과열시 직접 개입하겠다”는 정도의 방침만 표명했다. 기대 이익이 큰 부지에서 전력 수전을 받아 투기를 벌이는 악용 사례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없도록 검토 보완하겠다”는 답변만 나왔다.
산업부는 고시안 보완 후 이달 말 규제심사위원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산업부 규제심사위원회 이후에는 법제처 심사와 국무조정실 규제심사 절차 정도가 남아 있다.
데이터센터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와 한전은 모법인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이미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에, 전력계통영향평가 시행은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 강경하다”며 “사업자들이 평가항목과 시기에 대해 재검토 및 고시 반영을 요청하고 있으나, 산업부와 한전은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일 뿐 큰틀에서 내용을 손보기는 힘들어보인다”고 상황을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올 1월부터 수개월째 전기 수전 신청계획서 접수도 받지 않는 상태다. 사업자들에는 전력계통영향평가에 관한 고시 제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사실상 접수 중단을 통보했다는 전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간담회도 요식행위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한 것일 뿐, 밀어부치기식 행정으로 사업자들에 대한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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