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툴·메신저 AI가 '생성'보다 잘해야 할 것은? [스토리팩-토스랩⑤]
사람의 뇌는 단순한 정보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오래 기억한다고 합니다. 디지털데일리 테크콘텐츠랩의 '스토리팩'은 혁신기업들의 주요 기술·인재·조직 키워드를 책 읽는 듯한 재미와 인사이트로 전달하는 기업별 연재 기획물입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업무 처리와 사내 소통의 효율화를 돕는 각종 소프트웨어, 일명 '협업툴'은 안 써본 사람이 있을 뿐 한번 효용을 경험한 사람은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혹자는 "대화나 파일공유 전부 카카오톡으로 가능한데 왜 굳이 협업툴까지 써?"라고 말하는데요. 막상 실사용 후 사용자경험(UX)의 큰 차이를 경험하고 나면 이런 생각이 확 달라지거든요.
실제 지난 토스랩 스토리팩 1편에서도 이를 입증하는 실사례가 언급된 바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협업툴 도입 수요가 극대화된 2020년~2021년, 당시 토스랩의 메신저형 협업툴 잔디는 역대 최다 가입자 기록을 갱신했는데요. 예상과 달리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 이후에도 가입자 수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는 이야기였죠. 또한 잔디 앱은 최근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50만회 이상 다운로드 달성 및 다운로드 수 대비 사용자 평점은 최상위권에 오르는 등 순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경영난으로 잔디 사용 계약을 종료했던 업체가 불과 2~3개월 만에 자발적으로 재계약을 요청했던 일도 잔디 내에선 인상깊은 사례로 꼽힙니다. 해당 업체에선 대부분의 직원이 잔디 사용 이전으로 돌아가자 업무에 큰 불편을 느꼈던 건데요. 이 사례는 결국 조직 내 생산성 유지를 위한 협업툴 이용료 지출은 경영난 중에도 충분한 투자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협업툴이 제공하는 다양한 이점 중에도 실제 생산성, 근무환경 만족도 향상과 직결되는 UX 강화는 최근 잔디뿐 아니라 모든 협업툴 및 생산성 서비스 기업들의 공통된 고민입니다. 특히 UX 개선을 위해 최근 AI를 제품에 결합하는 시도도 흔히 이뤄지고 있는데요.
일각에선 이 시도를 '양날의 칼'로 봅니다. 자칫 겉만 번지르르 한 기능의 AI가 기존 사용환경에 섞여들 경우 오히려 서비스 복잡성이 증가하고 속도나 안정성, 결과물의 품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메신저용 AI의 경우 문체를 변경하거나 번역을 돕는 AI, 이미지 및 보고서 생성 기능들이 주를 이루는데요. 대부분 필수가 아닌 '부가기능'에 가까워 실제 생산성 향상은 그리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가운데 후발주자로 메신저 AI 기능 개발에 나선 토스랩도 고민이 컸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AI, 만들어 봐야 쓰이지 않는 AI 개발은 무의미하기에 '어떻게 해야 진짜 남다르고 효용 넘치는 AI로 UX 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죠. 그 결과 이들이 낸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AI라고 꼭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그보단 신뢰할 수 있는 내부 데이터를 사용자가 평소 업무의 일환으로, 더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생산성 AI의 본질이다!'라고요.
소통 데이터 활용의 자동화 AI '스프링클러'
이런 전제로 탄생한 잔디만의 메신저 AI 이름은 바로 '스프링클러'입니다. 잔디밭에서 잔디 생장에 꼭 필요한 물을 자동으로 주는 기계, 우리도 잘 아는 그 스프링클러에서 따온 이름이죠. 구체적으론 기업 성장을 위한 자동화와 AI 활용 및 확산을 촉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잔디'란 브랜드 아이콘과 어떻게든 매칭되는 이름(잔디언, 잔잘법, 잔D-day 등…토스랩 스토리팩 3편 참조)을 만들어내는 토스랩의 작명 센스와 집착(?) 또한 늘 남다른 것 같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토스랩이 스프링클러를 개발 중 방점을 둔 목표는 앞선 전제대로 ▲협업툴 내 데이터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것 ▲메신저형 협업툴의 본질인 '소통' 환경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는데요.
이와 관련해 서준호 토스랩 CTO도 이렇게 귀띔했었죠. "말과 글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이면서 동시에 모호성을 내포합니다. 우리가 소통 중에 자주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이 때문인데요. AI 잔디의 역할은 이 모호성의 문제 해결을 돕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건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되 이해가 쉬워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소통에, 소통에 의한, 소통을 위한
실제로 토스랩이 최근 일부 고객사 대상 클로즈 베타 서비스로 공개한 스프링클러의 주요 기능들을 살펴보면 굉장히 담백하면서 버릴 요소가 없이 만들어졌다는 감상이 나옵니다.
(1) 토픽 맥락 요약
첫째는 '토픽 맥락 요약'입니다. 잔디는 대화형 협업툴 답게 수많은 주제별 소통방인 '토픽'을 지원하는데요. 시간이 지나 각 토픽에 많은 대화가 쌓일수록 필요할 때 원하는 내용을 찾는 일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물론 이 때문에 대부분의 메신저가 '대화 검색' 기능을 제공하는데요. 하지만 주로 단어 중심이기에 해당 단어가 포함된 내역을 사용자가 일일이 확인하며 필요한 내용을 찾고 정리해야 했죠.
반면 토픽 맥락 요약은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AI의 장기인 '맥락 이해'와 '분석 및 요약' 기능을 적극 활용합니다. 한마디로 사용자가 원하는 토픽과 검색 희망기간을 설정한 뒤 원하는 주제를 입력만 하면 AI가 즉시 정리해 주는 기능입니다. 이때 철저히 잔디 내 데이터만 활용하므로 AI가 거짓말을 하는 '환각'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동시에 검색과 요약에 쓰던 시간은 대폭 줄어듭니다.
특히 이런 기능은 정확한 키워드가 기억나지 않아도 AI에게 맥락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결과를 찾아내는 방법, 또는 내가 원하는 서식으로 검색과 가공을 즉시 할 수 있다는 점 등 유연한 명령문 활용 측면에서도 높은 생산성을 제공합니다.
(2) 메시지 요약
한발 나아가 파일을 열어보지 않고도 내용을 요약하고 원하는 정보로 가공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용한 기능이 아닐까 싶은데요. 실제로 업무 간 협업 중에는 다양한 문서를 서로 공유하는 경우가 많고, 시간이 지나 다시 확인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문서를 찾거나 다운로드 받아 확인하고 삭제하는 등의 작업은 정말 번거롭기 그지없죠.
이때 스프링클러의 메시지 요약 기능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주제와 연결된 대화(쓰레드) 내용 요약을 제공합니다. 또한 메시지에 포함된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 ▲이미지 등의 파일을 열지 않아도 내용 파악이 가능하며, 원하는 내용은 자연어 명령으로 쉽게 도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영상 속 예시처럼 공지사항 토픽 내 사내 건강검진 안내문에 대해서 '작년 건강검진과 달라진 점'을 입력하면 저장된 안내문서 기록을 AI가 빠르게 비교해 수 초 만에 답을 내놓는 모습을 볼 수 있죠.
(3) 다국어 메시지 변환
협업툴을 쓰다 보면 업무환경에 따라 다양한 언어를 마주할 일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해외지사 현지 직원과의 대화, 외국어 자료 발췌 메시지 등이 있겠죠. 스프링클러 AI는 기본적이지만 필수적인 메시지 변환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잔디에 따르면 LLM이 학습한 모든 언어를 영어, 중국어(간체 번체), 일본어, 베트남 어 중 한 언어로 사용자가 설정 시 모두 변환 가능하다고 합니다.
(4) AI 입력 모드
위와 같은 기능들 외에 챗GPT와 같은 질문 특화 기능도 제공됩니다. 이 부분에서도 기존 UX를 해치지 않기 위한 토스랩의 고민이 엿보이는데요. 평소 잔디의 텍스트 입력창을 AI 모드로 원클릭 전환해 즉시 활용 가능하며, AI가 답변을 마치면 AI 모드가 자동 해제되고 결과물도 메시지 창에서 즉시 활용 가능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영상의 관련 예시 또한 고객사 관리를 위한 '재계약 계약서 초안 작성'처럼 손이 많이 가는 작업도 즉시 완료해 공유하거나 직접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보여주고 있죠.
데이터가 쌓일수록 강력해지는 협업툴
이처럼 최신 AI의 화두인 '생성'은 보조적 수단으로 바라보고, 그보단 대신 쌓인 데이터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능만 제공하는 스프링클러의 접근식은 두 가지 함의를 남깁니다.
첫째는 AI가 본질적 목표인 '인간 보조'를 벗어나지 않으며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태는 바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활용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란 점입니다. 아무리 생성형 AI가 큰 주목을 받는 시대지만 지금의 AI는 전에 없던 창작의 가능성이 추가되었을 뿐, 아직 그 성능과 신뢰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반면 이들이 생성하는 데이터는 끝없는 인간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맹점이 있죠. 그동안 이를 간과한 생산성 AI 도구들은 사용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둘째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협업툴 내에 쌓이는 데이터의 부가가치 향상입니다. AI의 특성상 축적된 사용 데이터가 많을수록 사용자에게 보다 강력한 생산성 제공이 가능한데요. 동시에 기업 입장에선 기존 사용자의 타 서비스로의 전환을 어렵게 하는 락인 효과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는 모든 AI가 데이터에 기반해 작동한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잔디 같은 협업툴에 많은 대화 데이터와 자료가 공유될수록 이를 검색 및 가공하는 AI의 결과물과 효용은 당연히 더 높아집니다. 또한 그 가치가 커질수록 사용자는 기존 이용 DB가 전무한 새로운 협업툴로 이동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현재 비슷비슷한 기능으로 차별성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협업툴 시장 경쟁에서 특히 유의미한 화두를 던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자사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AI에 대해 일부 사용자들의 보안 우려가 따를 수 있는데요. 이에 관해 토스랩 측은 "폐쇄된 클라우드 환경에서 LLM 모델을 가동하므로 플랫폼 간 데이터 이동이 없다"고 안전성을 강조했습니다.
AI with JANDI, 커밍쑨
토스랩은 지난달 29일부터 스프링클러 AI 기능이 탑재된 잔디 서비스를 클로즈 베타 형태로 테스트 중입니다. 이어 일정 기간 동안 성능 만족도와 사내 시스템 연동 기반의 확장 가능성, 비용 등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유료 고객사 대상의 전면 오픈베타는 올해 4분기경이 될 예정입니다.
중장기적인 기능 고도화 계획도 드러냈는데요. 이 또한 처음의 접근 방식을 유지합니다. 앞으로 겉으로 신기해 보이는 기능보단 앞서 공개한 스프링클러 기능들처럼 ▲사용자가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UI/UX 최적화 ▲AI 자연어 검색 수준 고도화에만 집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죠.
한편, 스프링클러는 올해 1월 창사 10년 만에 첫 월간흑자 달성 등 본격 수익화 시점에 접어든 잔디 비즈니스에도 얼마나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궁금해지는데요. 토스랩은 아직 구체적인 AI 사용료를 책정하지 않았지만 고객사의 구독 사용자 수, 사용 기간 등에 따라 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입장입니다. 과연 AI의 본질과 사용자경험 개선에 집중한 토스랩의 담백한 AI 전환 시도가 향후 회사 성장성에도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기대가 커지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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