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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정책' 놓고 또 엇박자 탄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에 낀 은행권은 혼란 가중

강기훈 기자

[디지털데일리 강기훈 기자] 가계부채 대책을 놓고 금융당국 사이에 이견이 생기자 은행권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장이 은행들의 금리 인상 릴레이를 비판했지만 금융위원장이 '은행 자율관리'를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몇년 동안 발생했던 양 기간 사이의 냉전이 재발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굿 캅 배드 캅(Good Cop, Bad Cop)' 전략을 내세워 은행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앞서 지난 6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가계부채와 관련된 입장을 표명했다. 최근 당국의 '갈지자' 행보 때문에 은행과 대출을 받고자 하는 차주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대출에 대해 획일적인 기준을 정하면 국민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며 "고객을 잘 아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대출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연달아 인상한 것을 이복현 금감원장이 직격했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달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저희가 바란 것은 쉬운 금리 인상이 아닌 미리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것이었다"며 "아무래도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국내 은행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올해 내내 가계 대출을 관리할 것을 압박 받아 금리를 올렸을 뿐인데 오히려 매를 맞았다는 뜻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 대출이 불어난 데에는 은행 책임이 분명 존재한다"면서도 "당국의 불분명한 메시지가 근본적인 원인인데 전부 은행 탓으로 몰아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 원장의 '거친 입'에는 명확한 기준이 담겨있지 않다는 게 금융업계 중론이다. 당국이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내리지 않아 은행들이 스무고개 형식으로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원장이 은행권을 질타한 뒤로 은행들은 금리 인상 릴레이를 중단했다. 이어 1주택자의 추가대출을 제한하는 등 후속 정책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은행마다 세부 조건이 모두 달라 차주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은행에 자율권을 부여하겠다며 달래기에 나섰지만 여전히 긴장감이 돌고 있다. 언제 또 이 원장이 이를 뒤집는 발언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 기관 간 의견이 다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 초 공매도 관련 이슈가 불거졌을 때 김주현 당시 금융위원장은 공매도 금지와 관련해 "지켜보고 있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원장은 "공매도 감독 강화뿐만 아니라 금지 또한 고려할 수 있다"고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시간을 거슬러 2018년에도 충돌이 있었다.

당시 윤석헌 전 금감원장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내세우며 금융사를 제재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이끌던 금융위는 감독의 합리성을 근거로 금감원에 제동을 걸었다.

한편으로는 김 위원장과 이 원장이 반목이 아닌 좋은 관계를 보일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원장이 '배드 캅' 역할을 맡아 은행권의 기강을 잡고, 김 위원장이 '굿 캅'으로서 은행 달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원 팀'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가계부채를 적극 관리해야 한다는 정부의 기조는 확고하다"며 "어느 부분이 강조되는지에 따라 메시지 충돌처럼 비칠 수 있지만 전체 흐름에서는 양 기관 인식 자체에 차이가 없다"고 해명했다.

두 사람이 대학 선후배 사이라는 점도 '원 팀론'을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다. 김 위원장과 이 원장은 모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는데 각각 90학번, 91학번으로 1년 선후배 사이다. 비슷한 시기에 수학을 했기에 서로 끈끈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은행들은 오는 10일 개최되는 이 원장과 은행장들이 참석하는 간담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원장이 단일 대책을 위해 중지를 모으는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까지 은행들이 제시한 가계대출 정책이 서로 달라 시장이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 원장이 제기됐던 비판을 수용하고 중재자 역할을 잘하길 은행권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기훈 기자
kk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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